언젠가 헬렌 켈러 이야기를 모티브로 한 영화 <블랙>을 본 적 있다.
설리반 선생 역으로 여자가 아닌, '사하이'라는 이름으로 남자가 연기했다.
거기서 선생이 미셸(헬렌 켈러를 상징하는)에게 물의 개념을 알려주기 위해 분수대에서 흐르는 물에 아이의 손을 갖다 대는 장면이 나온다.
흐르는 물의 감촉을 손바닥으로 느끼게 하면서 선생이 손바닥에 water을 계속 적는데
어느 순간 아이가 물의 개념을 깨닫고 희열에 차서 그 단어를 어눌한 발음으로 반복해서 외친다.
나는 그 아이가 깨닫는 순간의 느낌을 너무 잘 알았다. 나 역시 비슷한 경험을 많이 했으니까.
그래서인지 그 장면이 감동스럽고 눈물이 난다는 평이 있었지만 내 경우 오히려 덤덤했던 것 같다.
어린아이가 희열의 순간을 정말 잘 표현하는구나 하고 배우의 연기를 판단하는 식으로.
어린 나이에 세상의 소리를 듣지 못하고 지내다 보면 안 들림에 너무 익숙해있어서, 본인이 세상과 ‘단절‘되었고 소통의 부재에서 오는 '외로움'을 알아채기 어려웠다. 안 들리는 것과 소통의 부재에 이미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다.
대여섯 살 때 나는 내 뜻대로 안 되면 원인 모를 억눌린 답답함으로 괴성을 질러댔고 물건을 던져댔다.
식사할 때 주변 상황(식사 예절과 분위기 파악)은 눈에 전혀 안 들어왔고 막 집어서 쩝쩝 먹곤 했다.
배고픔을 해결하느라 바빴으니까.
안 씻어도 편한데 자꾸 나를 씻기려고 하니 화장실로 끌려갈 때마다 온갖 짜증을 부리고 화를 내곤 했다.
안 졸려서 자기 싫은데 자꾸 눕히고 방 불을 끄니까 너무 짜증 나서 소리 지르곤 했다.
내 앞에서 사람들이 입을 벙긋거리면서 뭐라 하는데 뭐라 하는지 모르겠어서 그냥 눈빛만 봤다.
대부분 곱지 않은 눈빛이었던 것 같다.
눈빛이 사나우면 가만히 있어야 안 혼난다는 걸 경험으로 알았고
눈빛이 부드러우면 내가 원하는 대로 해도 된다는 걸 알았다.
어떤 의미에서 솔직히 말하면 동물에 가까웠던 듯하다.
그런데 어느 날 한 단어가 살아있는 생물처럼 내게 갑자기 뛰어들었다.
엄마는 나를 비 올 때마다 보청기를 빼게 하고 밖으로 내보내곤 했다.(보청기는 물이 들어가면 고장 나기 쉽다)
당시엔 밖에서 놀게 해주는 줄 알았는데 돌이켜보니 비의 개념을 몸소 경험하게 하고 싶으셨던 듯하다.
나는 비 맞고 노는 게 너무 좋아서 비 오는 낌새를 눈치채면 알아서 보청기를 빼고 나갔다. 비가 며칠 내리 오면 매일 나갔다.
그런데 나갔다 들어올 때마다 엄마가 내 손바닥에 ‘비‘를 여러 번 쓰셨다. 머리를 말리고 보청기를 켜면, 엄마는 이 단어를 말씀하실 때 본인 입을 짚어서 입모양을 보게 하고 내 손을 본인 목에 갖다 대셨다.
발음할 때 울리는 성대 느낌, 입모양, 손바닥 글씨, 그리고 조금 전에 맞았던 비의 감촉 경험.
한동안 이들은 따로 겉돌았다. 이게 어떻게 서로 연관 있는 건지 쉬이 알아채지 못했으니까.
그러기를 반복하다가 어느 순간 이들이 한 몸처럼 갑자기 연결되어서 영감이 떠오르듯 퍼뜩 이해가 되었다.
내가 밖에서 맞은 게 비라는 것을. 하늘에서 떨어지는데 나를 젖게 하는 게 비라는 것을. 그리고 이걸 ‘비‘라고 발음한다는 것을.
제 딴에 “비”라고 제대로 발음한 것 같은데 엄마 말씀으로는 입모양은 맞았지만 많이 새는 바람소리에 가까웠다고 한다.
그럼에도 엄마는 정말 방방 뛰며 좋아하셨고 나는 나대로 나를 둘러싼 모든 것에 이름이 있고 부를 수 있다는 것에 놀랐다.
그 순간 정체 모를 혼란과 동시에 어떤 희열 역시 느꼈던 것 같다.
보이지 않는 울타리 너머 존재하기만 하던 무채색 세상이 갑자기 온갖 색을 뒤섞어 입으면서 나에게 확 다가왔다. 심지어 그 일부와 연결된 듯했다.
그때부터였다. 미친 듯이 모든 것을 짚어서 이게 무엇인지, 어떻게 발음하는지, 그 발음을 어떻게 쓰는지 하나하나 엄마를 비롯해서 아는 사람들에게 다 물어본 것이. 돌이켜보니 그들은 무척 귀찮았겠다.
내 이름도 궁금해졌고 엄마 이름이 무엇인지도 궁금해졌다. 나에게 닿는 것, 먹는 것, 입는 것, 보이는 것 모두 다 말이다. 그러다 보니 어느샌가 온 집안에 이름을 적은 종이들이 붙여졌고 가족들도 이름표를 옷에 달게 되었다. 이를테면 가족 명칭과 이름 석자를 적어서, '언니 ***'처럼.
어린 나이였는데도 어렴풋이 기억나는 건 너무 쓰라렸던 내 손바닥과, 엄마의 누렇게 된 두 번째 손가락 손톱 끝이다. 누렇게 된 건 발음을 할 때마다 일일이 내 손바닥에 수십 번 쓰셔서 그랬던 모양이다. 그래서 내 손이 쓰라렸던 거고. 그 느낌이 진저리 나서 나중엔 수첩과 펜을 가지고 다니게 되었다. 그때엔 나 조금이라도 잘 들리라고 크게 발음하느라 엄마의 목소리도 아마 많이 쉬었겠지.
헬렌 켈러 혹은 미셸에겐 세상과의 연결 시작은 물이었다면 나에겐 "비"였던 셈이다. 그리고 그 연결 다리는 엄마가 놓아주신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