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분이라도 나가서 걷기, 그러려니 하고 다 괜찮아하고 말해보기
입원 이틀째 엄마는 오전 약을 드시더니 졸리다고 내리 낮잠을 오래 주무시다가 밤에 잘 못 주무셨더랬다. 간호사선생님께 이 증상을 말씀드렸더니 다음날 오전 약의 종류와 용량이 조절되었다. 그런데 여전히 낮에 졸려하셔서 넷째 날 용량을 더 줄였다. 1시간 정도의 낮잠과 낮 활동에 지장 없을 정도가 오전 약 조절의 목표였기 때문이다. 참, 보호자인 나도 30분 정도 낮잠을 자라는 권유를 받았다. 잠시라도 제대로 눈 붙이는 것이 체력 관리와 피로 해소에 생각보다 많이 도움 된다는 것이었다.
새벽에 2-3번 화장실 가시는 날 다음날에는 저녁 식사 후 약 먹는 것 외에 물을 많이 못 마시게 하라는 얘기를 들었다. 저녁 늦게 한 컵 이상 마시면 어떤 사람이라도 밤에 화장실 가느라 깨게 된다나.
저녁 약과 밤 약의 섭취 시간이 2시간 정도 차이가 나는데 저녁약을 드시고 나서 졸음이 오는 걸 못 참아서 꾸벅 졸 정도라면 역시 종류와 양을 조절했다. 너무 일찍 잠들면 새벽에 깨서 또 불안해하게 되니까. 밤 약의 경우 수면을 도와주는 호르몬 분비약이었는데 먹고 나서 1시간 지나도 잠이 안 온다면 용량을 더 늘리거나 종류를 바꿨다. (일반 수면제는 내성이 생기기 마련인데 호르몬 분비를 도와주는 약의 경우 내성이 없다고 한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열흘간 반복하다 보니 점차 낮에 1시간 정도 적당히 주무시고 밤에 잠이 곧잘 드시게 되었다.
잠을 잘 주무시게 되니까 덜 예민해지시는 것이 느껴졌다. 좀 더 웃으시고 식사 양도 더 늘었다. 퇴원 전날엔 그리 입원 첫날부터 거부하시던 인지 프로그램에 용기 내어 참여해서 퍼즐을 맞춰보고 수제비누도 만들어보셨다. 진작 입원 기간 동안 자주 가시면 좋았을 텐데.. 한 번이라도 가셔서 다행이지 싶었다. 혼자 절대 안 가시려 해서 나도 동행해야 했지만 말이다. 엄마는 나이 들어가면서 혼자 뭔가를 시도하는 것에 불안해하고 겁이 많아지셨다. 열흘 입원으로 이런 문제까지 해결될 수 있다면 좋았겠지만 이런 바람은 욕심인지라 아쉬움은 접었다.
퇴원하기로 결정된 날 아침 일찍 의사 선생님이 오셔서 인사를 나눴다.
엄마는 퇴원할 수 있게 되었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그리 좋아하시더니만 막상 나가려니 겁이 나시는 모양인지 선생님을 보자마자 질문을 연달아하셨다.
“또 걱정되고 불안해지면 어떡해요?”
“또 잠이 못 들면 어떡해요? “
“걷다가 또 넘어져서 다치면 어떡해요?”
마지막 질문은 정신과 계열의 질문이 아니었지만 어지간히 걱정되신 모양이었다. 올해 초 뒤로 비틀거리며 넘어지신 적이 있었는데 그때 요추 골절되시는 바람에 6개월여 허리보호대를 차고 고생하셨기 때문이다. 용변 문제 때문에 깁스를 할 수 없는 부위였고 하필 앉을 때 직접 닿는 부위였는지라 의자나 침대, 변기에 앉으실 때마다 너무 아파하셨던 일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자 선생님은 차례로 대답해 주셨다.
“걱정되고 불안해지면 일단 그러려니 하시고 ‘다 괜찮아’하고 소리 내서 여러 번 말씀해 보세요.”
“잠이 못 들면 어때요? 낮에 모자란 잠 주무시면 돼요. 그냥 눈만 감고 가만히 누워 계셔도 괜찮아요”
“넘어지면 어때요. 다치시면 치료받으면 되지요. 지금은 안 아프시죠? 그런데 어머니, 걸으셔야 돼요. 5분이라도 아침에 늦어도 낮에 집 밖으로 나가서 햇빛 받으며 꼭 걸으셔야 해요. 그래야 밤에 잘 주무실 수 있어요."
선생님의 대답 중에서 와닿은 말이 2가지 있었다.
불안해지면 그러려니 하고 “다 괜찮아”하고 말해보라는 것과 5분이라도 밖에 나가서 햇빛을 받으며 걸으라는 것.
속으로 생각하는 것보다 입 밖으로 긍정적인 말을 직접 말하면 좋다고 하셨다. 누구 들으라는 것도 아니고 내가 하는 말을 내가 직접 들어보라는 걸 텐데, 이 과정은 실제로 본인의 마음가짐에 영향을 가지는 건 맞다. 긍정적인 말을 하게 되면 긍정적이 되고 부정적인 말을 하면 부정적이 되는 것도 맞는 듯하다.
이제 엄마가 퇴원하신 지 1년이 되어간다. 여전히 걱정이 많으시고 불안해하시기도 하지만 그래도 그 정도가 훨씬 좋아지셨다. 한참 심할 때엔 30분 정도 장 보러 간 동안에도 7번인가 전화하셨고 집에서도 나를 수십 번 부르셨더랬다. 새벽에 부부 방에 들어와서 내 코 밑에 숨 쉬나 안 쉬나 손가락을 대보신 적도 여러 번 있었다. 내가 다치거나 없어지거나 죽는 꿈을 꿨다시면서. 자다가 인기척이 느껴져 눈떴는데 바로 옆에서 검은 실루엣이 얼굴을 바짝 대고 서있으니 얼마나 혼비백산했었는지 모른다. 때로는 저녁에 불 꺼진 베란다에 세워져 있는 빨랫대를 어떤 사람이 몰래 서있는 것으로 알고서 놀라셨고, 밤에 물 마시러 나오시다가 불 꺼진 부엌 천장에 달린 화재경보기에 빨간 불이 깜박거리는 걸 보고 무서워하기도 하셨다. 그런데 이제는 전화하시는 횟수도 상당히 줄었고 밤에 잘 주무시고 무엇보다 놀라시는 횟수와 날 부르시는 횟수도 줄었다. 특히 나랑 외출하거나 요양보호사 선생님의 도움을 받아 낮에 1시간가량 걸으시면 밤에 더 잘 주무시게 되었다.
물론 엄마의 불안 증세는 정도가 덜해졌어도 다시 도지곤 한다. 그런데 사실 사람이라면 정도의 차이일 뿐 누구나 마음 한구석에 걱정과 불안을 품고 살지 않나? 티가 안 나다 뿐이지 나처럼 자기만의 방식으로 움직이면서 불안을 가라앉히지 싶다. 일상에서 책상 5분 정리와 같은 아주 작은 목표를 정하고 움직이고 달성하고 내심 혼자 뿌듯해보는 식으로 말이다. 물론 엄마가 이리 생각하고 행동하시기엔 거동도 불편하고 인지력과 판단력이 이미 많이 떨어지셔서 어렵다.
이에 엄마의 불안 상태에 대해서는 2가지 관점으로 바라보려고 애쓰는 중이다. 칼로 종기를 도려내듯이 형태 없는 불안을 싸악 없앨 수는 없다는 것, 그리고 나이 때문에 자연스럽게 안 좋아진 것이니 회복할 수는 없고 더 나빠지지만 않으면 되는 것으로 말이다. 이보다 나아지리라는 기대도 버리고 예전 '좋았던' 엄마의 기억도 접어두는 것도 필요하다. 그리하면 재차 심하게 불안해하시더라도 속상해하거나 화내는 대신 '또 그러시네'하고 넘어갈 수 있으니까.
물론 매번 덤덤하게 반응하긴 힘들다. 사실 오늘 아침에 엄마에게 화를 냈다. 며칠 째 식사 때마다 자꾸 어떤 일(보통 별거 아닌 것으로 치부하는)을 불안해하셨는데, 비슷한 상황이 계속 반복되다 보니 어느 순간 소화 안되기도 하고 답답해져서 제발 그만하시라고 언성을 높였던 것이다. 그러고서 그냥 방에 들어와 버렸는데 시간이 좀 흐르니까 점차 후회되었고 괜히 못할 짓 한 것 같아 죄송했다. 그래서 마치 아침 약을 가지러 들어간 척하고 다시 방을 나왔다. 사실 멋쩍었지만, 딸이 왜 화내는지 모르겠다고 섭섭해하는 엄마에게 가서 아무렇지 않은 듯이 약통을 내밀고서 말씀드렸다. “엄마, 약 안 드세요? 다 괜찮다니까요, 네? 불안하실게 뭐 있어요. 다 괜찮다니까.” 그래도 입을 꾹 다무시길래 내 눈을 보시게 하고서 손을 잡아드리면서 계속 달래 드려야 했다. 마치 삐진 아이를 달래는 듯한 기분으로 말이다. 어쨌든 결국 화는 푸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