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지품 검사, 주의 사항, 특별실
개방병동에 입원할 때 소지품 검사를 받아야 했는데 반입금지 물품이 생각보다 많아서 놀랐다. 환자들의 자해나 타해의 위험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 검사하는 것이라고 한다. 긴 줄이 달린 드라이기, 핸드폰 충전줄이나 샤워타월, 벨트, 가방끈 같은 긴 물건은 반입 금지 1순위였다. 어쩐지 간호사실과 연결된 공동거실에 줄이 아예 고정된 드라이기와 화장대가 따로 있나 싶었다. 사실 엄마가 몸이 아파서 입원하는 게 아닌지라 잘만 하면 내 시간을 그래도 가질 수 있겠다 싶어서 가방에 노트북과 충전줄, 텀블러 등을 챙겨 왔는데 가방 끈과 더불어 충전줄과 텀블러를 제출해야 했다. 하필 노트북이 워낙 오래되어서 배터리가 금방 닳는지라 계속 충전해야 했기 때문에 입원기간 내내 노트북 대신 작은 핸드폰 화면으로 볼일을 볼 수밖에 없었다.
검사 당시 간호사실 근처에 물건 반납함들이 여러 개 있어서 슬쩍 보니 손거울부터 눈썹칼, 면도칼, 유리컵, 머그컵, 어깨줄이 달린 작은 가방, 양장본 책, 펜 종류, 텀블러 여러 개 등 생각보다 다양한 물건들이 보였다. 물론 오전 9시에 핸드폰 충전줄은 밤 9시에 다시 제출하는 조건으로 받을 수 있었다. 그래서 아침마다 환자들 모두 아침부터 일제히 핸드폰을 충전하고 저녁엔 미리 충전을 다해놓곤 했다.
각 병실 화장실엔 수건걸이가 없었고 샤워기 거는 장치는 무릎높이에 달려있었다. 샤워기 줄조차 50cm 정도밖에 안 되었다. 그래서 옷과 수건을 변기 뚜껑 위에 올려놓아야 했고, 머리를 감을라치면 낮은 의자에 앉아 허리를 한껏 구부리고 감아야 할 정도였다. 어릴 때 엄마와 같이 가곤 했던 동네 목욕탕의 추억이 뜻하지 않게 소환되기는 했다. 불면증 환자의 경우 수면을 돕는 호르몬제나 수면제를 처방받기도 하는데 그러면 새벽에 깼을 때 정신이 몽롱해서 화장실에서 미끄러져 넘어지기 쉽다고 한다. 그래서 샤워 후 바닥의 물기를 닦아야 했다.
그곳은 소리에 민감한 불면증 환자들을 위해 밤 9시 반 이후 샤워나 공동 거실의 텔레비전 시청, 복도에서 소리 내서 걷거나 말하는 것을 금지했다. 첫날 이러한 주의 사항을 미처 알아듣지 못해서 9시 반쯤인가 엄마가 잠드신 걸 보고서 샤워하는 실수를 저질렀다. 문 열고 나오니 간호사선생님이 멋쩍게 웃으며 서있어서 얼마나 깜짝 놀랐는지. 샤워하면 안 된다고 문을 두드렸을 것 같은데 나는 보청기에 물이 들어가면 안 되기 때문에 빼놓고 들어가는지라 노크 소리를 못 들었던 것 같다.
“오늘은 어쩔 수 없지만 내일부터는 적어도 9시 전에 샤워를 끝내시면 좋겠어요. 환자분들이 물소리나 문소리, 발소리에 민감하세요.”
그 말을 듣고 주위를 슬쩍 돌아보니 가만히 누워있길래 자는 줄 알았던 사람들은 눈을 뜬 채 누워있는 것이었다. 너무 당황스러웠고 죄송했다.
밤에는 간호사가 불면증 환자들의 적절한 약 처방을 위해 밤새 수면 상태를 관찰할 필요가 있고 우울증 환자의 경우 자해의 위험이 있어서 침대에 설치되어 있는 커튼을 하루종일 아예 치면 안 되었다. 주사를 맞거나 옷 갈아입을 때는 제외되었다. 사실 나는 잠자리가 바뀌면 적응하는데 시간이 걸리는 편이다. 첫날밤엔 갑자기 사람들 있는 공간에서 커튼을 안치고 그냥 자려니 신경이 너무 쓰여서 밤샜더랬다. 그래서 다음날 남편에게 시간 될 때 내 베개를 가지고 와달라고 부탁했다. 긴 입원 시간이 될 텐데 빠른 적응이 쉽게끔 익숙한 베개라도 베고 자야 도움이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다행히 개방 병동이더라도 외출은 자유였다. 대신 병원 내부에 한해서 이름, 행선지와 나가는 시간을 간호사실에 설치된 보드판에 적어놓고 나가야 했고 돌아오면 지워야 했다. 보호자의 도움이 필요한 환자라면 보호자 외출 시 환자가 아니더라도 역시 적어놓아야 했다. 단 개방병동을 나가는 문은 자동이 아니었고 간호사실에서 확인하고 수동으로 열어주었다. 물론 외부에서 아무나 들어오지 못했고 보호자만 별도의 출입용 팔찌를 받아서 들어올 수 있었다.
엄마와 나는 햇빛을 직접 쬐는 것도 불면증에 도움 된다는 말을 들어서 4층에 있는 야외정원에 오전 1번, 오후 1번 산책하러 나가곤 했는데 보아하니 오래 나가있으면 안 되는 모양이었다. 한 번은 정오 햇빛이 너무 따뜻하고 좋아서 점심 식사 후 엄마를 야외 정원 벤치에 모시고 나와 앉아 계시게 한 다음, 커피를 사 와서 기분 좋게 있었다. 그런데 생각보다 오래 있었는지 보호자인 내게 위치를 확인하는 연락이 와서 당황했더랬다.
그리고 간호사실에서 약 먹을 시간임을 알려주면 간호사실까지 환자가 직접 가서 눈앞에서 약을 먹고 입을 벌려서 보여주어야 했다. 안 먹고 혀 밑에 숨기거나 삼킨 척하고 몰래 버리는 환자가 더러 있는 모양이었다. 개방병동의 경우 그런 일이 별로 없지만 폐쇄병동에선 비일비재하다고 한다. 불편하지만 원칙적으로 해야 된단다. 선생님들이 매번 어떤 약인지 자세히 설명해 주는 걸 보니 환자의 상태에 따라 하루에도 약이 조금씩 달라지는 듯했다.
사실 설명은 열심히 들었는데 멜라토닌, 세로토닌 등 몇몇 단어 빼고는 듣자마자 약 이름이 헷갈렸다. 아무튼 엄마의 상태가 좋아졌다고 하면 다음 2번 정도를 같은 약으로 처방하되 용량을 조절하는 것 같았다. 약 설명 후 저녁엔 낮동안 약 먹고 기분이 어땠는지, 낮잠을 얼마나 잤는지, 일상 대화나 움직임에 지장이 없었는지 물어보았고 다음날 아침에는 지난밤에 약 먹고 얼마 만에 잠들었는지, 중간에 몇 번 깼는지, 잠들기 힘든 정도가 어땠는지 매번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질문하는 식이었다. 몸이 아프면 차도가 있는지를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지만 이쪽 문제는 그럴 수 없기 때문에 그러는 모양이었다.
입원 기간 동안 엄마는 낮동안 4인실을 일종의 1인실처럼 쓰실 수 있었다. 낮에는 다들 개방병동 프로그램을 들으러 가거나 야외 정원을 산책하고 복도를 왕복하면서 걷기 운동을 하고 외출하느라 자리를 대부분 비웠기 때문이다. 그런데 밤에는 다들 계속 뒤척이면서 자려고 너무 애쓰니까 낮동안 안 봤던 눈치를 밤에 한꺼번에 보는 기분이었다. 침대 커튼을 치지 못하다 보니, 잠이 안 온다고 자꾸 간호사실로 가는 사람들이 눈감았는데도 다 느껴졌다. 심지어 간호사 선생님들이 환자 수면 상태를 수시로 봐야 해서 병실문을 활짝 열어놓고 간접조명 겸 복도에 불 켜놓는 바람에 입원실이 불 껐는데도 다소 밝아서 잠들기가 더 어려웠다. 그래서 처음 이삼일은 아예 뜬눈으로 밤샐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다행히 인간은 적응하는 동물이라더니 나흘째 밤에는 엄마가 날 부르는 소리를 못 들을 정도로 깜박 깊게 잠들었다. 물론 그 대가는 컸다. 나도 못 듣고 가끔 엄마를 도와주시던 아주머니도 못 들으셔서 엄마는 참고 참다가 그만 침대에 소변을 지리셨다. 평소 새벽에 두어 번 화장실에 가시곤 했는데 집에서는 혼자 화장실 가기 편했지만, 병원에선 환자용 침대에서 낙상방지용 바를 내려서 슬리퍼를 일일이 신기에는 거동이 불편하셔서 내 도움이 필요했다. 당시 요실금 팬티보다 주로 패드를 착용하셨는데 참고 참다가 소변 양이 많아져서 패드가 모두 흡수를 못한 것이다. 엄마가 막 나를 흔들어 깨워서 일어나 상황을 파악하고 얼마나 당황했던지. 새벽에 간호사 선생님들께 죄송하다면서 새 이불과 새 환자복, 매트커버를 달라고 했더니 눈꼬리 접히게 웃으시면서 괜찮다고, 본인이 다 갈 테니 얼른 엄마를 씻기고 옷 갈아입히라고 하시는 것이었다. 그 배려가 너무 고마웠는데 정작 큰 문제는 어렵게 잠든 같은 방 환자들이 다 깨버린 것이었다.
그 난리통에 엄마는 잠이 다 깨셨는지 도저히 다시 못 자겠다고 잠을 못 자서 어떡하냐고 불안해하시며 자꾸 말씀하시는 바람에 다른 환자의 수면에 방해되어 결국 특별실로 이동할 수밖에 없었다. 그곳은 간호사실 안이라는 위치의 특성상 간호사들이 24시간 특별관찰이 필요한 환자를 관리하는 곳이었는데 어쩌다 보니 엄마와 나는 그 방으로 가게 되었다. 처음엔 특별실이라는 거창한 이름 때문에 둘 다 겁먹었다. 그런데 막상 들어와 보니 화장실이 있는 작은 1인실 느낌이었다. 게다가 선생님들이 우리를 배려해서 문을 닫아준 덕분에 엄마와 나 둘 밖에 없어서인지 병원에 온 이래 제일 조용하고 편하게 잘 잘 수 있었다. 보호자용 침대가 더 좋았던 것도 한몫했다. 당시엔 분명 비극이었는데 새삼 돌아보니 잠도 잘 잤던 것 같고 하나의 해프닝이었구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