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불안장애, 어머니는 치매 소위 이쁜 치매를 겪고 계신다.
최근 어머니가 며칠 우리 집에 머무시게 되었는데 그동안 엄마와 어머니는 식탁에서 자주 모여 앉아계시곤 했다.
하루는 점심을 먹고 나서 두 분께 커피와 카스텔라를 드렸는데, 엄마가 문득 핸드폰에서 노래 하나를 찾아달라셔서 틀어드렸다.
노래 제목은 이동원의 ‘향수’였고 예전에 엄마의 부탁으로 저장해 놓은 노래들 중 하나이다.
그런데 같은 노래에 두 분이 너무 다른 반응을 보이셔서 놀랐다.
불안장애를 겪는 사람은 현재에 머물러 있지 않음이 새삼 와닿았다.
엄마는 그리 듣고 싶어 찾으시던 노래였음에도 막상 틀으니 듣질 않으셨다.
점점 얼굴 표정이 어두워지더니 어떤 생각에 골몰하시는 것이었다.
그래서 무슨 생각하시냐고 여쭤봤더니,
“나 왜 이렇게 되었지? 예전엔 핸드폰에서 음악을 곧잘 찾아서 듣곤 했는데. 나 이제 어떡하지?”라고 말씀하셨다.
한두 번도 아니고 재차 반복하셨다. 노래는 어느새 뒷전이 되었다.
반면, 어머니는 엄마의 넋두리는 관심 없고 가만히 노래만 들으시더니 흥얼거리며 작게 따라 부르시기 시작했다.
박수까지 치며 기분 좋아 활짝 웃으면서. 절대 며느리인 내 앞에선 노래 부르시고 그러시던 분이 아니셨는데 말이다.
평소 심지어 크게 웃질 않으셨고 항상 말수 없이 조용하셨으니까.
두 분의 모습이 대조가 되기도 했고 예전의 두 분 모습 또한 알고 있기에 그 격차에 심란해질 수밖에 없었다.
나이 듦에 따라 나타나는 변화가 보여주는 ‘유한’함에 슬퍼지기도 했고..
엄마가 노래 자체에 조금만 집중하면 마음이 그나마 편해질 수 있었을 텐데, 스스로를 ‘불행‘하게 만드는 모습을 보면서 안타까웠다.
특히 요양보호사 선생님뿐 아니라 병원에서도 엄마의 무릎 관절은 연세에 비해 괜찮은 편이라고 했다. 골다공증도 없는 편이다.
그런데 엄마는 걷다가 넘어질까 봐, 넘어져서 다칠까 봐 무서워서 나가서 걸을 엄두를 못 내신다. 너무 무섭다면서 나가지도 않고 혼자서는 걷지 않으려 하신다.
반면 어머니는 잘만 걸으신다. 다만 길을 기억 못 하고 혼자 나가면 집으로 못 찾아오신다. 조금 전 점심 메뉴가 무엇이었는지도 모르신다.
옆에서 챙겨주지 않으면 그냥 가만히 앉아서 굶고 안 씻으신다. 남이 챙겨주지 않으면 아무것도 못하고 안 하신다.(대신 바닥은 틈나는 대로 닦으신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어떻게 늙어가는 게 좋을까라는 생각이 최근 들어 자주 든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그저 어떻게 하면 잘 살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많이 했었다.
이를테면 주말여행을 어디로 갈지, 작업을 어떻게 진행할지, 친구랑 언제 어디서 만나고 밥 먹을지, 찍어둔 옷이 언제 할인할지, 다음 소설로 무얼 읽을지 등 일상스럽고 평범한 고민 위주였다.
그러나 일련의 사태를 겪으면서 내 최대의 고민 중 하나는 ‘잘 늙어가기’가 되었다.
부모님과 어머니 부양은 급격하게 내 삶의 반경을 좁혀버려 힘들어지긴 했지만 사실 얻은 점도 적지 않다.
간병으로 자유로운 외부 활동이 어려워지면서 집에 있는 시간이 확 늘다 보니, ‘이 나이에 무슨’ 그러며 호기심만 가진 채 배움을 시도하지 않았던 것들을 온라인으로 배우게 되었다.
독서의 범위도 소설 위주였던 것이 심리와 건강 관련으로 상당히 넓혀졌다.
외부 사람의 접촉이 확 줄어들고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지다 보니 내 감정과 생각을 좀 더 살펴보게 되었다.
관심도 없었던 스트레칭, 플랭크와 스쾃도 약간 해보게 되었다. 소위 생존근육이라도 챙겨야 되겠구나 싶었으니까.
두 분 다 혼자 물병 뚜껑을 못 따고 약봉지를 못 뜯고 고무줄바지도 힘이 모자라 끝까지 못 올리고 화장실이 급한데도 빠르게 못 걷는 모습을 보다 보니 시도하게 되었다.
이 모든 건 결국 일종의 자기 계발일 텐데 내게는 “잘 늙어가려는” 준비 과정이 되었다.
어떤 의미에서 엄마와 어머니는 내게 많은 것을 몸소 가르쳐주신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