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방향은 언제나 바뀐다. 동풍이 불면 한국의 미세먼지가 중국으로, 서풍이 불면 중국의 미세먼지가 한국으로 온다. 그렇다면 한국이 중국으로부터 피해만 입는 것도, 중국이 한국으로부터 피해만 입는 것도 아니다.
이 단순한 비유가 그럴듯하게 들린다면, 바로 그 점이 문제다. 실증적 근거 없는 추론은 쉽게 과장된 결론으로 이어진다. 수능을 둘러싼 ‘물수능–불수능’ 논란도 마찬가지다. 물수능이면 변별력이 없다, 불수능이면 사교육비가 폭증한다는 말은 직관적으로는 그럴듯하지만, 통계적으로 확증된 적은 거의 없다.
실제로 2018학년도 수능은 ‘물수능’으로 불렸지만, 대학들은 여전히 학생을 선발할 수 있었다. 변별력이 약화된 것은 사실이나 입시 자체가 마비된 적은 없었다. 불수능 뒤에 사교육비가 늘어난 적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지만, 그것이 난이도 때문인지 학부모 불안, 입시 경쟁, 경제 여건 때문인지는 분리하기 어렵다. 반대로 물수능 후에도 증가한 적이 있다. 항상 증가한다. 그럼에도 이 단순한 도식은 해마다 반복되며, 사회적 압박으로 작동했다.
평가원은 이 압박 속에서 난이도 문제에 대한 ‘기막힌 해법’을 찾았다. 바로 킬러문항이다. 대부분의 문제를 쉽게 내어 평균은 높게 유지하면서, 소수의 극도로 어려운 문제로 변별력을 확보하려 한 것이다. 이렇게 하면 ‘물수능’ 비판도, ‘불수능’ 비판도 피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킬러문항의 출현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바로 개념의 축소다. 1997년과 2009년 교육과정을 거치며 출제 가능한 개념 수가 줄어들었다. 범위는 좁아졌는데 변별력은 확보해야 하니, 결국 꼬아낸 계산·추론 문제로 난이도를 올리는 꼼수에 기대게 된 것이다. 킬러문항은 난이도 압박과 개념 축소라는 두 압력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태어났다.
그 결과 나타난 부작용은 두 가지다.
첫째, 요령식 공부의 확산이다. 학생들은 킬러를 정면으로 공략하기보다 아예 버리는 전략을 택했다. 예컨대 과탐에서 20문제 중 킬러 3문항을 제외하면 17문항으로 41점을 확보할 수 있다. 여기에 하나만 찍어 맞히면 등급 컷을 넘길 수 있다. 이렇게 해서 학생들의 학습은 깊은 이해와 개념 확장이 아니라, “버릴 것과 챙길 것”을 가르는 계산으로 변질되었다.
둘째, 사교육 의존의 급증이다. 킬러문항은 정규 교육과정만으로 대비하기 어려운 방식으로 출제되었다. 계산을 꼬아놓거나 경우의 수를 변칙적으로 결합하여, 결국 사교육의 도움 없이는 공략하기 힘들었다. 그 결과 사교육비 부담은 늘어나고, 교육 불평등은 심화되었다. 결국 남은 것은 두 갈래뿐이었다. 돈을 쓰거나, 포기하거나. 전자는 가정의 경제력이 성적에 직접 반영되게 만들었고, 후자는 학생을 깊이 있는 학습에서 멀어지게 했다. 시험의 본질인 “노력한 만큼 성적을 얻는다”는 약속은 무너졌고, 수능의 제도적 목표였던 “사교육비 절감”은 물거품이 되었다.
중국의 가오카오는 난이도 논란보다 지역·계층 격차가 더 큰 문제이고, 인도의 JEE는 원래부터 극도로 어려워 사교육 의존이 구조화되어 있다. 일본의 대학입학공통테스트는 기초학력 확인 성격이 강하고, 다양한 전형이 있어 난이도 논란이 사회적 의제로 크게 부상하지 않는다.
반면 한국은 수능의 상징성이 압도적으로 크다. 대학 입학 → 직업 경로 → 사회적 지위로 이어지는 첫 관문이자, 공정성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수능 난이도 논란은 곧 공정성 논란으로 비화하고, 사회 전체가 과잉 반응하게 된다.
결국 킬러문항은 시험 그 자체에서 자연스럽게 나온 것이 아니라, 사회적 불안이 낳은 산물이었다. 만약 우리 사회가 ‘물수능–불수능’이라는 뇌피셜 담론에 매달리지 않았다면 킬러문항은 필요하지 않았을 것이다. 따라서 먼저 바뀌어야 할 주체는 언론과 교과부다. 언론은 불안을 부추기는 단순 프레임을 반복하지 말아야 하고, 교과부와 평가원은 흔들림 없이 시험의 철학을 세워야 한다.
금년 수능 후에도 누군가는 이것은 킬러문항이다. 아니 다를 논쟁할 수 있을지 모른다. 어쩌면 철 지난 이야기를 하는 것일지 도 모르는 이야기다. 그러나 왜 그런 문항이 생겨났고, 그것이 시험의 본질을 어떻게 훼손했는가를 묻는 것이 중요하다.
시험의 철학은 단순하다. 공정할 것, 그리고 노력한 만큼 성적에 반영될 것.
이 두 가지만 지켜진다면 난이도의 문제는 잠시 잊어도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