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교육비와 사고력의 역설
사교육비는 매년 신기록이다. 통계 안 봐도 된다. 한국에서 살아봤다면 지갑이 증인이다.
반대로 사고력은? 국제 시험 PISA는 2010년 이후 정체, 아니 하락이라고 말한다. 대학 교수도, 교사도, “애들이 생각을 못 한다”라고 고개를 젓는다. 이건 저출산율만큼이나 확실한 사실이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사교육비가 늘어서 사고력이 떨어진 거 아냐?”
아니다. 거꾸로다. 사고력이 떨어졌으니 자기주도학습이 안 된다. 그러니 학원과 과외 없이는 버틸 수 없다. 돈이 들어가는 건, 결국 머리가 멍청해졌기 때문이다.
사고력은 개념과 개념을 잇는 순간에 자란다. 그런데 교육과정 개편은 “줄여라”라는 구호에 목숨을 걸었다.
화물선에 차를 싣는다고 치자. 무게가 문제라면 차 몇 대를 내리면 된다. 남은 차는 온전하게 굴러간다.
하지만 교육은 모든 차에서 바퀴 하나씩을 빼는 기묘한 방법을 선택했다. 무게는 줄었을지 몰라도, 이제 그 차들은 단 한 대도 굴러가지 못한다.
왜 이런 선택을 했을까? 교육적 계산의 결과가 아니다. 교과서를 집필한 이들이 사고력 단절의 위험을 몰랐을 리 없다고 믿고 싶다. 그러나 윗선에서 “학습량을 줄이라”는 정치적 구호가 내려왔고, 교사 수급과 행정 효율성 논리가 얹히면서, 결국 교육과정은 개념 축소와 단편화로 흘러갔다. 교육의 전문성은 정치적 합의와 행정적 편의에 밀려난 것이다.
과학을 보자. 전기 단원은 직렬·병렬만 남았다. 혼합회로는 없다. 학생들은 “직렬은 전류 일정, 병렬은 전압 일정”만 읊조린다. 원리? 없다.
수학도 다르지 않다. 기하는 선택 과목으로 밀려났다. 증명 과정은 실종됐다. 공식은 외우지만, 왜 그런 공식이 나왔는지는 아무도 묻지 않는다.
국어는 긴 글을 잘라냈다. 문학은 감상이 아니라 포인트 암기, 독서는 비판이 아니라 키워드 찾기.
줄이기는 줄였는데, 깊이는 증발했다. 남은 건 얕은 암기뿐이다.
사고력 저하가 본격적으로 관찰되는 시점과 1997년(7차 교육과정)·2009년(개정 교육과정)의 개념 축소 정책은 시기적으로도 맞물려 있다. 만약 누군가 이것을 우연이라 말한다면, 그는 아마 2010년 이후 학교 교육을 받았던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여기에 스마트폰이 합세했다. 검색창에 두세 글자만 치면 답이 나온다. 유튜브는 몇 초 안에 설명을 때려준다. 아이들은 기다리는 법을 모른다. 사유하는 훈련? 그건 옛말이다.
끊임없는 알림과 짧은 영상은 주의력을 잘게 조각낸다. 사고력이란 집중과 인내의 산물인데, 지금 세대는 태생적으로 훈련 기회를 빼앗겼다.
결국 교육은 얕아지고, 환경은 산만해졌다. 이 두 칼이 함께 휘둘러진 결과, 사고력은 사라졌다.
정책은 이렇게 약속했다. 학습량을 줄이면 아이들의 부담이 줄고, 사고력이 늘고, 사교육비가 줄 거라고.
그러나 줄이고 보니 남은 건 폭증한 사교육비, 무너진 사고력, 여전히 찌든 아이들뿐이었다.
나는 학습량 축소 자체를 반대하지 않는다. 사회적 여건상 불가피할 수도 있다. 그러나 깊이만큼은 남겨야 했다. 학습량은 줄일 수 있어도, 개념의 연결은 유지해야 한다. 사고력 훈련은 남겨두었어야 한다.
그걸 놓친 대가가 지금이다. 돈은 돈대로 쓰는데, 아이는 멍청해진다. 이보다 더 짜증 나는 것이 또 있을까. 아마 후대 사회 교과서에 ‘자원의 바보 같은 낭비’ 편에 기록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