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급제는 최선인가?
인형의 눈을 붙이는 공장 두 곳이 있었다.
두 공장 모두 100명의 직원이 있었지만, 임금 지급 방식은 달랐다.
한 공장은 매일 직원의 작업량에 따라 보상이 정해졌다.
1등은 100개의 빵, 2등은 99개의 빵, 마지막 100등은 단 1개의 빵만 받았다.
다른 공장은 구간제로 운영됐다.
1등부터 10등까지는 똑같이 95개의 빵, 11등부터 30등까지는 똑같이 80개의 빵, 91등부터 100등까지는 균일하게 5.5개의 빵을 받았다.
두 공장 모두 하루에 정확히 5050개의 빵을 임금으로 사용했다.
첫 번째 공장은 살벌하다.
옆사람보다 단 하나라도 더 많은 눈을 붙여야 빵을 더 받을 수 있다.
노동자들은 하루하루 고된 경쟁에 시달리고, 일찍 포기하거나 그날의 운에 맡기는 이들도 적지 않다.
두 번째 공장도 편하지만은 않다.
어느 날은 옆사람보다 눈 하나만 덜 붙였을 뿐인데, 임금은 40개나 줄어들었다. 무려 40개다.
평소 58등이던 노동자가 돈이 급해 열심히 일해도 35등에 그쳤기에 받은 빵의 수는 예전과 똑같았다.
당신은 어느 공장에서 일하고 싶은가?
어느 공장의 노동자가 더 행복할까?
두 공장 중 어떤 공장이 경쟁에서 살아남을까?
당연히 이 이야기는 단순한 공장의 이야기가 아니다.
지금 아이들을 평가하는 방식에 대한 은유다.
첫 번째 공장은 냉혹하지만 정밀한 평가를 제공한다.
평가가 정밀할수록 공정해 보이지만, 동시에 압박도 커진다. 내가 더 잘하는 것보다 남이 못할 때 유리한 구조가 만들어진다.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으로 변질될 수 있다.
두 번째 공장은 각자의 위치를 모호하게 만든다.
겉으로는 심리적 안정감을 주고 경쟁이 덜한 듯 보이지만, 입시라는 마지막 관문 앞에서는 그 모호함이 힘을 잃는다.
단점도 뚜렷하다.
첫째, 비범함을 드러낼 수 없다.
압도적 우수함조차 여러 명의 1등급 중 하나로만 표시된다. 결국 특출 난 능력보다 전반적인 관리 능력이 더 높은 평가를 받게 된다.
둘째, 그 관리 능력이 대부분 부모의 능력에 기초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통계적으로도 내신은 다른 전형보다 SES(사회경제적 지위)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방식은 정밀한 평가가 주는 냉혹함을 일정 부분 가려 준다. 평가가 정밀할수록 결과는 한낮의 태양처럼 분명해지고, 그만큼 많은 아이들이 불안과 좌절을 경험한다.
등급제는 이 냉혹함을 완전히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가려 주기에 여전히 옹호될 수 있다.
그러나 이 공장 이야기는 현실의 비유지만, 동시에 잘못된 현실을 전제로 한 비유이다. 이건 제로섬 게임을 전제한 구조다. 누군가의 빵이 늘면 다른 누군가의 빵은 줄어든다.
하지만 교육은 다를 수 있다. 무엇을 어떻게 경쟁시키느냐에 따라 패자가 없는 경쟁으로 바꿀 수 있다.
인형 눈 붙이기가 아니라, 자아를 실현하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경기라면 조금 더 쉬운 선택이 가능해질 것이다.
9등급제를 할 것인가, 5등급제를 할 것인가? 절대평가로 갈 것인가, 상대평가를 유지할 것인가?
쉽게 답할 수 없다.
수많은 자료와 연구를 살펴봐도 명확한 결론은 나오지 않았다. 어떤 선택을 해도 반대할 수 있을 만큼, 단점은 늘 존재한다.
결국 유일한 답은 이것일 것이다.
최선이 아니더라도 차선이라도, 아이들에게 도움이 되는 것으로 학교에선 졌어도 세상에선 이길 기회를 만드는 능력을 갖는 경쟁을 하도록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