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의 문화적 불평등

by 채현

I. 문제 제기: 다수 담론의 시대

AI(人工知能)는 단순한 정보 제공자가 아니다. 방대한 데이터를 학습하여 다수의 언어와 문화가 반복하는 패턴을 평균화해 답을 만들어낸다. 이 과정에서 소수 문화의 기록은 희미해지고, 결국 역사와 정체성의 지도가 재편된다. 다수의 언어가 곧 기준이 되고, 다수의 서술이 곧 진실이 되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II. 소수 언어·소수 문화의 소멸 과정

AI는 기록을 흡수하는 기계이다. 그러나 그 흡수는 균등하지 않다. 예를 들어, 한푸(漢服) 논쟁에서 보듯, 인터넷과 출판에서 “한푸=중국 전통의상”이라는 언설(言說)이 압도적으로 많이 등장하면, AI는 이를 사실처럼 답변한다. 한국의 한복은 ‘변형’으로 처리될 위험에 놓인다. 더 작은 문화일수록 이 압력은 훨씬 강하다. 기록되지 않은 문화는 아예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지워진다.

이 문제는 단지 가상의 가능성이 아니라, 이미 현실에서 일어나고 있다. 구글 번역은 주요 언어 간에는 정교하지만, 몽골어·라틴아메리카 원주민 언어·아프리카 방언에서는 기본 문장조차 제대로 옮기지 못한다. 위키백과 역시 언어별 데이터 격차가 극심해, 어떤 문화는 온라인 지식 체계에 ‘부재’한 것처럼 보인다. AI는 결국 이러한 불균형한 지식 지형을 고스란히 재현한다.



III. 데이터 양이 곧 힘

문화적 불평등의 핵심은 데이터의 비대칭성이다.

영어권: 글로벌 지식·학술·산업 데이터의 60% 이상을 독점.

중국: 15억 인구가 만들어내는 검색, SNS, 콘텐츠 데이터가 폭발적으로 축적.

소수 언어권: 고유문화가 존재하지만, 기록의 양이 적어 AI 학습 데이터에서 비중이 미미하다.


결국 AI는 영어와 중국어로 쓰인 자료를 중심으로 세계를 재현한다. 데이터의 양이 곧 힘이 되는 구조 속에서, 언어와 문화의 격차는 기술을 매개로 더욱 심화된다.

역사를 돌아보면, 문자 기록을 가진 문화가 그렇지 않은 문화를 지배했던 전례가 있다. 식민지 시기의 언어 말살 정책은 단순히 소통의 차원이 아니라, 기록 없는 문화가 곧 존재하지 않는 문화로 취급되는 과정을 낳았다. 이는 곧 오늘날 AI 데이터 편향과 닮아 있다.



IV. 글로벌 플랫폼에의 종속

문화적 불평등은 단순히 데이터의 양 문제를 넘어 플랫폼 종속으로 이어진다. 구글, 메타, 오픈AI, 텐센트 같은 거대 기업이 무엇을 학습할 것인가를 결정한다. 그 결과, 작은 문화는 ‘알고리즘적 비가시성’ 속에 묻힌다. 기록이 있어도 검색·추천·요약에서 배제된다면, 결국 그 문화는 세계의 기억에서 사라진 것이나 다름없다.

한국의 한류 콘텐츠 역시 예외가 아니다. K-pop과 드라마는 세계적으로 소비되지만, 글로벌 플랫폼에서 제공되는 정보와 번역은 영어권 시각을 중심으로 편집된다. 한글 가사는 영어 자막으로 단순화되고, 설화·풍속의 맥락은 자주 생략된다. 판소리나 방언, 민속신앙처럼 맥락적 해석이 필요한 문화 요소들은 AI의 추천 체계 속에서 ‘낯설고 비효율적인 것’으로 취급된다. 결과적으로 한국은 세계적 문화 생산자로 인정받으면서도, 여전히 영어·중국어 중심 플랫폼에 종속되는 모순에 놓여 있다.



V. 한국의 방어와 선택

한국은 중간 지점에 서 있다. 영어권도, 중국처럼 압도적 인구를 가진 나라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비교적 방대한 데이터와 활발한 디지털 생산 문화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한국은 두 가지 전략을 동시에 추구해야 한다.

자국 데이터 주권 강화: 교육, 의료, 행정, 문화유산 데이터의 공공 저장·공유 체계를 확립해야 한다.

국제 공조: 유럽연합(EU)과 함께 ‘투명성·책임성’ 기준을 만들고, 일본·동남아 등과 소수 언어·문화 보존 컨소시엄을 형성해야 한다.


이 과정은 단순히 기술 경쟁이 아니라, 문화 생존의 전략이다. 푸코가 말했듯 지식은 곧 권력이다. 기록의 장악 여부는 곧 미래 권력의 분포를 좌우한다. 나아가 AI를 둘러싼 데이터 독점은 단순한 산업 경쟁을 넘어, ‘디지털 식민주의’라는 새로운 권력 구조를 만들어낼 위험이 있다. 소수 문화가 침묵당한 채 배제된다면, 이는 단순한 기술 문제가 아니라 권력 작동의 문제이다.



VI. 작은 문화의 기록을 지켜야 한다

AI 시대의 불평등은 경제적 격차를 넘어 문화적 생존의 격차로 확장된다. 다수의 언어와 문화가 역사와 지식을 재정의하는 순간, 작은 문화는 이름조차 남기지 못한 채 사라질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기술 발전의 속도를 추종하기보다, 어떤 기록을 남길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

발터 벤야민²이 지적했듯 역사는 기록자의 시선에서 재편된다. 기록되지 않은 자는 목소리를 잃고, 기억에서조차 배제된다. 오늘날 AI는 새로운 기록자이며, 그 기록의 필터는 다수 담론의 손에 쥐어져 있다. 푸코적 관점에서 보자면, 데이터 독점은 곧 지식 권력의 독점이며, 이는 침묵을 강제하는 새로운 형태의 규율 사회를 낳을 수 있다.

따라서 기록의 다양성을 보장하고, 디지털 아카이브를 강화하며, 국제적 규범을 만들어야 한다. 작은 언어와 문화의 존재를 디지털 세계에서 보장하는 것은 단순한 보존 작업이 아니라, 미래 세대의 역사적 상상력을 지키는 일이다.

AI는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도구가 아니다. 그것은 역사를 다시 쓰는 권력이다. 이 권력이 다수만을 위한 것이 되지 않도록, 지금 이 순간 작은 문화의 기록을 지키는 것이 우리의 책무이다.






미주

¹ Shoshana Zuboff, The Age of Surveillance Capitalism, 2019.
² Walter Benjamin, Illuminations, 1968.
³ Jack Goody, The Logic of Writing and the Organization of Society, 1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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