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편. AI 전쟁

by 채현

I. 또 다른 증기기관의 등장

18세기 중반 영국에서 제임스 와트(James Watt)는 증기기관을 개량하였다. 그러나 그 순간 와트 자신이 자신의 개량이 가져올 파급력을 온전히 알았을까? 아마도 아니었을 것이다. 세계 또한 그 의미를 즉시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후대 역사가들은 이 사건을 산업혁명의 결정적 분기점으로 평가한다. 하나의 기술이 단순히 생산성을 높인 것이 아니라, 사회와 경제, 정치 구조까지 뒤흔들어버린 것이다.

2025년, 우리는 또 다른 변곡점에 서 있다. 인공지능(AI)이라는 기술이 바로 그것이다. 아직은 불완전하고 시행착오가 많지만, 누구도 이 기술을 단순한 유행으로 치부하지 않는다. 증기기관이 그랬듯, AI 또한 생산과 교류의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꿀 가능성이 있다. 중요한 것은 “AI가 무엇을 줄 것인가, 우리가 그것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라는 차원이 아니다. 역사가 보여주듯, 이것이 새로운 증기기관이라면 뒤처지는 순간 곧바로 패자가 된다. 그리고 다시는 회복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과거에는 역전의 기회가 있었다. 증기기관이 뒤늦게 확산되더라도 후발 산업국이 일정 부분 추격할 수 있었고, 심지어 20세기 중반까지도 ‘추격형 산업화’가 가능했다. 그러나 디지털 기술과 AI 시대에는 이러한 기회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초기 표준을 장악한 국가와 기업이 네트워크 효과를 통해 독점적 지위를 구축하면, 후발자는 구조적으로 따라잡기 어렵다. 지금의 전쟁이 총성이 없는 전쟁임에도 불구하고 목숨을 건 전쟁으로 불리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II. 전쟁의 참가자들

이 치열한 무대 위에 서 있는 주인공들은 이미 세계 경제의 헤게모니를 장악한 거대 기업들이다. 오픈AI(OpenAI, GPT), 구글(Google, Gemini), 앤트로픽(Anthropic, Claude), 마이크로소프트(Microsoft, Azure OpenAI), 아마존(Amazon, Bedrock), 메타(Meta, Llama), 코히어(Cohere), 바이두(百度, 文心一言), 알리바바(阿里巴巴, 通義千問), 텐센트(騰訊, 混元), 화웨이(華爲, 盤古), 딥시크(DeepSeek), 네이버(HyperCLOVA X), 카카오(KoGPT), LG AI연구원(EXAONE), SKT(A.X)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단순히 기업 차원에서 움직이는 것이 아니다. 국가의 전략과 안보, 심지어 외교 질서까지 이 기술 경쟁과 직결되어 있다. 미국 정부가 오픈AI와 마이크로소프트, 구글에 우호적인 법적·정책적 환경을 제공하고, 중국 정부가 바이두·알리바바·화웨이를 국가적 프로젝트로 밀어붙이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AI 경쟁은 더 이상 기술 산업의 문제가 아니라 국제 권력 구조의 핵심이다.

이 경쟁은 또 단순한 열정과 아이디어만으로 가능한 일이 아니다. 수십兆 원 규모의 투자, GPU와 반도체 공급망, 세계 최정예 인재, 방대한 데이터 인프라가 필요하다. 한 기업의 힘만으로는 감당하기 어렵기에, 국가와 정부의 뒷받침이 필수적이다. 따라서 실제로 이 전쟁에 참여할 수 있는 국가는 미국, 중국, 그리고 일부 예외적 조건을 갖춘 소수 국가뿐이다. 한국과 일본, 유럽은 독자적 범용 AI를 만들 능력을 갖추었다 해도, 이 전쟁에서 주도권을 쥘 수 있을지는 또 다른 문제다.



III. 표준과 플랫폼을 향한 경쟁

그렇다면 이 전쟁에서 승자가 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단순히 기술에서 우위를 점하는 것 이상이다. 승자가 된다는 것은 곧 표준(Standard)이 되고, 플랫폼(Platform)이 되는 것을 뜻한다.

표준이 된다는 것은 다른 모든 기업과 국가가 그 규격을 따라야 한다는 말이다. 이는 단순한 기술적 호환성의 문제가 아니라, 새로운 산업 질서를 설계하는 힘이다. 한 번 정해진 규격은 수십 년 동안 지속되며, 산업 전체를 지배한다. 마치 전기의 콘센트 규격이 세대를 넘어 여전히 영향을 미치듯, AI의 표준도 장기간 세계의 방향을 결정할 것이다.

플랫폼이 된다는 것은 더욱 무겁다. 교육, 의료, 금융, 국방 등 수많은 특수 목적 AI가 범용 AI 위에 얹히는 운영체제가 된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범용 AI가 운영체제가 된다면, 특수 목적 AI는 그 생태계 안에서만 살아남을 수 있다. 지금의 경쟁이 범용 AI를 둘러싼 혈투가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기술적 세부 성능이 아니라, 누가 질서를 만드는가, 누가 기반 위에서 모든 것을 통제하는가가 본질이다.



IV. 치열함의 이유

따라서 이 전쟁은 단순히 ‘더 나은 기술’을 가진 기업을 가르는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앞으로 수십 년간 인류 사회의 권력 구조를 누가 설계하느냐의 문제이다. 승자가 되면 단순히 이익을 얻는 것이 아니라, 교육과 의료, 군사와 경제를 아우르는 거대한 질서를 통제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의 AI 전쟁은 총성이 없는 전쟁임에도 불구하고, 냉전(冷戰)과 맞먹는 무게를 가진다.

구체적으로 승자가 무엇을 얻게 되는지는 다음 장에서 다루겠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하나이다. 지금의 경쟁은 단순한 산업 경쟁이 아니라, 인류 문명의 미래를 규정하는 투쟁이다. 치열함을 설명할 수 있는 단어는 많지만, 그 본질은 “새로운 세계 질서의 중심을 누가 차지하는가”라는 질문으로 환원된다. 그 보상이 거대하기에, 그리고 패배가 곧 영구적 종속을 뜻하기에, 이 전쟁은 그 어느 때보다도 치열하다.






미주

¹ David Landes, The Unbound Prometheus, 1969.
² Carlota Perez, Technological Revolutions and Financial Capital, 2002.
³ Joseph Nye, The Future of Power,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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