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기생충"이 불편했던 관객의 변명
가난은 경제적으로 빈곤한 상태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가난은 올바른 사고를 배울 수 없는 상태이며, 삶의 롤모델이 부재한 상태이다. 이러한 환경은 결국 경제적 궁핍으로 인한 기회의 상실과, 그 기회를 붙들 능력의 상실을 동시에 낳는다.
영화 〈기생충〉 속 기택(송강호)과 그의 아들 기우(최우식)의 행동은 이를 잘 보여준다. 기택은 수많은 실패를 겪는다. 그는 그 이유를 “운이 없고 자본이 부족해서”라고 생각하지만, 관객은 다른 원인을 본다. 그는 작은 일—피자 박스를 접는 단순한 노동—에도 성실하지 않다. 더디더라도 꾸준히 성공할 수 있는 방식을 알지 못한다. 머리가 나쁜 것이 아니라 사고의 틀이 비뚤어져 있는 것이다.
그는 부도덕하다. 그러나 그 부도덕함을 가난 탓으로 합리화한다. 스스로도 그것이 타당하지 않다는 걸 알지만, 그 자각은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이렇게 가난은 도덕적 무지를 정당화하는 일상의 문화가 된다. 그의 가족은 자신들이 비윤리적이라는 사실조차 모른다. 하지만 이런 사고방식과 생활문화는 결국 더 큰 비극으로 귀결된다.
빈곤에서 탈출하기 어려운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잘못된 사고와 잘못된 문화는 오직 ‘행운’에 의해서만 바뀔 수 있기에, 계획하지도, 노력하지도 않는 삶을 낳는다.
세계는 오랫동안 빈곤 퇴치를 위해 노력해 왔다. 단순한 경제적 지원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행동, 문화, 심리적 개입을 함께 시도했지만, 대부분의 정책은 실패했다. 경제적 지원은 단기 생존에는 유리하지만 장기적 변화에는 한계가 있다. 반면 문화적 개입은 장기적 변화를 만들 수 있지만, 막대한 비용과 시간이 들어 지속이 어렵다. 대부분의 국가는 이 두 극단을 오가며 방향을 잃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수의 사람들은 가난의 굴레를 벗어난다. 이 예외적인 사람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우연처럼 스며든 하나의 자극, 그것이 있었다는 점이다. 누군가의 말 한마디, 우연히 읽은 책의 한 줄이 그들의 사고를 바꿔놓는다. 그리고 그 변화는 일생의 궤도를 바꾼다.
가난한 자가 부도덕해지는 것은 어쩌면 가난의 속성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부도덕함이 그를 다시 가난으로 되돌린다는 사실도 진실이다. 그럼에도 희망은 있다. 가난한 사람에게 따뜻한 시선과 존중의 언어를 건넬 때, 그는 자신의 삶을 바꾸는 단 한 사람—그 예외적인 사람이 될 수도 있다. 그때 그는 당신의 얼굴은 잊더라도, 당신이 건넨 말은 잊지 않을 것이다. 단, 이 말은 정직해야 된다는 것이다. 약자에게 강자로서 보이는 도덕적 우월의 표현은 의미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