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폭력에 단호히 대응해야 한다는 데 이견은 없다.
중대한 폭력과 지속적 괴롭힘은 지금보다 더 강하게 제재할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의 논의는 핵심을 벗어났다.
문제는 처벌의 강도가 아니라, 그 처벌을 결정하는 절차가 공평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 공평성을 담보할 제도적 기반이 현재 구조에 존재하지 않는다.
학폭위는 교사·학부모·지역 인사 등으로 구성된다.
이 구성은 ‘따뜻한 공동체’에는 적합할지 몰라도, 증거 판단·법리 해석·절차 검증 같은 준사법적 기능을 수행하기에는 구조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들의 선의와 성실을 의심할 필요는 없다.
문제는 그들에게 맡긴 임무가 원래 전문가조차 실수하는 난이도 높은 판단이라는 점이다.
절차와 법리를 정확히 이해하기 어려운 기관에 학생의 미래를 좌우하는 판단을 맡긴 것이 애초에 모순이다.
이 실수 가능성은 실제 수치로 드러난다.
최근 3년간 판례를 보면, 학폭위 처분의 약 25%가 법원에서 취소되거나 변경되었다.
법원도 완벽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법률 전문가로 구성된 기관이 이 정도 비율을 뒤집는다는 것은 학폭위의 문제가 “개별 위원의 실수”가 아니라 절차·증거·구조 자체가 안정적으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증거다.
그러나 여기서 진짜 문제는 따로 있다.
이 25%는 ‘전체 사건’이 아니다.
소송까지 갈 수 있는 정보력·시간·경제력을 가진 가정만이 이 25%에 진입한다.
억울해도 대응할 능력이 없는 학생들은 잘못된 판단을 바로잡을 기회조차 얻지 못한다.
공평하지 않은 절차는 자연스럽게 능력이 있는 가정과 없는 가정을 갈라놓는 장치가 된다.
학폭위의 판단은 실수 가능성이 크고, 그 실수를 정정할 수 있는 기회는 사회적 약자에게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이 구조에서는 ‘정의’가 아니라 계층 재생산이 일어난다.
이런 상태에서 학폭 결과를 대입에 연동하는 것은 처벌 강화가 아니라 인생 박탈을 공평하지 않은 절차에 연결하는 결정이다.
전학·정학·기록·대입 불이익은 성인 사법 절차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강한 제재다.
그렇다면 최소한 그 판단은 법률적 전문성·절차적 권리·증거 기준을 갖춘 곳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나 지금의 학폭위는 이 조건을 충족하지 못한다.
문제는 간단하다.
“공평할 수 없는 기관이 학생의 인생을 결정하는 판단을 해도 되는가?”
이 질문에 답하지 않은 채 학폭–대입 연동을 밀어붙이는 것은 정의로 보일 뿐, 실제로는 심각한 불공정의 확대다.
학교폭력 처벌은 강화될 수 있다.
그러나 그 판단을 맡길 기관은 공평성을 담보할 수 있어야 한다.
지금의 구조는 그 최소 조건조차 갖추지 못했다.
따라서 문제는 처벌이 아니라, 절차의 정당성 그 자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