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유지능

인간만이 갖는 무엇

by 채현

최근 ‘고유지능’이라는 말이 자주 등장한다.
AI의 발전 속도가 그 이유다. 인간이 해오던 많은 일들이 빠르게 자동화되고, 일부 영역에서는 이미 인간을 넘어섰다. 이 변화 앞에서 인간은 불안을 느낀다. 그리고 그 불안은 하나의 질문으로 수렴된다. 인간만의 무엇인가가 있지 않겠는가.

이 질문 자체는 자연스럽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이 질문은 곧바로 하나의 믿음으로 비약된다. AI가 대체할 수 없는 능력이 있다면, 그것은 인간의 생존을 담보할 것이라는 믿음이다. 여기에는 설명되지 않은 전제가 끼어 있다. ‘대체 불가능성’과 ‘생존’ 사이의 필연적 연결이다.

그러나 이 연결은 논리적으로 성립하지 않는다.
대체 불가능하다는 사실이 생존을 보장한 적은 없다. 오히려 역사적으로 생존을 가능하게 한 능력들은 대부분 환경 변화에 따라 쉽게 무력화되었고, 그때마다 수정되고 재배치되었다. 고정된 능력은 보호되지 않았다. 보호된 것은 변화에 적응하는 구조였다.

그럼에도 고유지능 담론은 반복해서 특정 능력들을 호출한다. 창의력, 직관, 공감 같은 것들이다. 인간만의 영역, 기계가 흉내 낼 수 없는 능력이라는 설명이 덧붙는다. 하지만 이 설명은 이미 한 차례 결정적인 반례를 만났다. 알파고와 이세돌의 바둑 대국이다.

바둑은 오랫동안 인간 직관의 정수로 간주되어 왔다. 수많은 가능성 속에서 최적의 수를 직관적으로 선택하는 능력, 계산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영역이라고 여겨졌다. 그러나 결과는 명확했다. 인간 최고 수준의 직관은 계산 기반의 시스템에 의해 넘어섰다. 그 차이는 본질이 아니라 방식이었고, 대체 불가능성은 신화에 가까웠다. 결국 문제는 ‘할 수 있는가’가 아니라 ‘언제까지 인간만 할 수 있는가’였다.

이 지점에서 고유지능은 설명이 아니라 위안이 된다.
불안을 완화하기 위해 호출되는 언어, 더 정확히 말하면 불안을 지연시키는 장치다. 그래서 냉정하게 말해야 한다. 고유지능은 대부분 허구다.

그렇다면 인간에게 정말로 AI가 닿지 못하는 것이 있는가. 이 질문에 대해 흔히 제시되는 답은 ‘선택’이다. 인간은 선택할 수 있고, AI는 그렇지 않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 말은 지나치게 추상적이다. 대부분의 사람에게 “선택하라”는 말은 곧바로 되묻기를 낳는다. 무엇을, 어떻게, 왜 선택하라는 것인가.

문제는 인간이 특별한 선택 능력을 갖고 있다는 데 있지 않다. 오히려 인간은 선택에서 벗어날 수 없는 존재다. 선택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순간조차, 이미 하나의 선택을 수행하고 있다. 이 점에서 선택은 능력이 아니라 조건이다. 이 조건은 인간을 자유롭게 만들기보다, 끊임없이 불안하게 만든다.

이제 시선을 바꿔야 한다.


AI가 하지 못하는 것은 특정한 능력이 아니다. AI에게는 욕구가 없다.

AI에게는 세상이 틀렸다는 감각이 없다. 고쳐야 할 이유도, 더 나은 상태로 나아가야 할 이유도 없다. AI는 주어진 목표를 계산하고 최적화할 뿐이며, 그 목표 자체가 정당한지 묻지 않는다. AI에게 세계는 언제나 중립적이다. 그러나 이 중립성은 미덕이 아니라, 욕구의 부재다.

욕구는 오직 생물에게만 성립한다. 생물은 결핍을 느끼고, 그 결핍이 지속되는 상태를 견디지 못한다. 그래서 움직인다. 인간 역시 생물이다. 다만 인간의 욕구는 생존을 넘어선다. 단순히 더 많이, 더 안전하게 살고자 하는 욕구가 아니라, 현재의 상태가 정당한가를 묻는 욕구다.

평등, 자유, 존엄과 같은 개념은 계산의 결과가 아니다. 효율의 산물도 아니다. 그것들은 세계가 지금과 달라져야 한다는 불만에서 출발한다. 현실이 잘 작동하고 있는지와 무관하게, 인간은 “이대로는 안 된다”는 감각을 버리지 못한다.

AI는 이 질문을 하지 않는다.
왜 고쳐야 하는지 묻지 않고, 왜 더 나아가야 하는지도 요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AI에게는 더 나은 세상이 필요하지 않다.

인간에게 남은 것이 있다면, 그것은 고유지능이 아니다. 대체 불가능한 능력도 아니다. 오히려 세상이 틀렸을 수 있다는 전제를 끝내 포기하지 않는 욕구다. 이 욕구는 인간을 구원하지 않는다. 때로는 불행하게 만들고, 비효율적이며, 위험하다. 그러나 이 욕구가 사라지는 순간, 인간은 더 이상 세계를 바꾸려는 존재가 아니라 주어진 세계에 가장 잘 적응하는 객체가 된다.

그래서 인간에게 남은 것은 능력이 아니라 의지다.
그리고 그 의지는 생존을 보장하지 않는다. 다만 인간을 인간으로 남게 한다.



추신

만약 누군가 인간만의 고유지능이 존재한다고 주장하고 싶다면, 적어도 한 가지는 분명히 해야 한다.
그것이 AI가 아직 못하는 능력이 아니라, AI에게는 문제로조차 성립하지 않는 개념임을 증명해야 한다는 점이다.

창의력, 직관, 공감 같은 단어를 나열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그것들은 이미 계산되었거나, 계산 가능함이 드러난 영역들이다. 대체 가능성의 유무는 더 이상 기준이 될 수 없다.

고유지능을 말하고 싶다면, 먼저 개념을 정리해야 한다.
그것이 능력인지, 조건인지, 혹은 욕구인지.
그리고 그것이 왜 인간에게만 문제로 남는지 설명해야 한다.

그 설명이 없다면 ‘고유지능’이라는 말은 개념이 아니라 위안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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