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지적 계층화

민주주의의 위협

by 채현

“AI를 배운다”는 말은 여전히 납득하기 어렵다. 무엇을 배운다는 것인가. AI 챗봇을 단 한 번이라도 사용해 본 사람이라면, 그 사용법이 특별한 학습을 요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안다. 프롬프트 창에 친구에게 말하듯 입력하면 된다. “설악산 1박 2일 여행 코스를 짜줘”, “최근 나온 소설 중 읽을 만한 책을 추천해 줘.” 머지않아 우리는 음성으로 “피자를 12시까지 주문하고 결제해 줘”라고 말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대체 무엇을 배운다는 것인가.


아마도 ‘사용법’이 아니라 ‘잘 사용하는 법’을 말하고 싶을 것이다. 문제는 이 ‘잘’이라는 단어가 거의 항상 오해된다는 점이다. 대부분은 더 빠르게, 더 편하게, 더 정확하게 사용하는 것을 ‘잘’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AI는 기존의 도구와는 성격이 다르다.


일반적인 도구는 인간의 능력을 연장한다. 망치는 팔의 힘을, 자전거는 다리의 이동 범위를 확장한다. 반면 AI는 인간의 결핍을 대신 수행한다. 다리 근육이 약한 사람에게는 다리의 역할을, 팔 근육이 약한 사람에게는 팔의 역할을 한다. 범용적이고 효율적이다. 겉으로 보면 매우 이상적인 도구처럼 보인다.


그러나 결정적인 차이가 하나 있다.
AI는 근육을 만들어주지 않는다.


다리 근육이 약한 사람은 AI 덕분에 걷지 않아도 되지만, 그 결과 다리 근육은 더 이상 발달하지 않는다. 이 구조를 인간의 사고 능력에 그대로 대입하면 문제가 분명해진다. AI는 사고가 약한 사람에게 사고를 대신해 주지만, 그 사고 능력을 길러주지는 않는다.


발달심리학에서 사고 능력은 지식의 축적이 아니라 사고의 형식이 형성되는 과정으로 이해된다. 아동과 청소년기는 추상화, 가설 설정, 오류 수정, 자기 사고 점검과 같은 메타인지적 구조가 완성되지 않은 단계다. 이 시기에는 무엇을 생각하느냐보다, 어떻게 생각하느냐의 틀이 만들어진다.


이 단계에서 AI는 보조 도구로 작동하기 어렵다. 질문을 구성하기 전에 답을 접하고, 가설을 세우기 전에 결론을 확인하며, 오류를 경험하기 전에 수정된 결과를 받아들이게 된다. 이는 사고를 빠르게 만들지만, 사고 구조 자체의 형성을 방해한다. 사고를 돕는 것이 아니라 사고의 형성을 대체하게 된다.


반대로 성인 초기 이후에는 상황이 달라진다. 이 시기에는 개인의 인지 구조, 즉 문제를 정의하는 방식, 타당성을 판단하는 기준, 오류를 다루는 태도가 비교적 안정화된다. 사고의 방향과 검증 기준이 내부에 자리 잡은 이후의 AI 사용은 사고를 대신하지 않는다. 오히려 사고를 정밀하게 만들고, 사고의 범위를 확장한다. 이 단계에서 AI는 보조근이 아니라 헬스기구로 기능한다.


이 차이는 시간이 지날수록 누적된다.
AI를 사고의 대체물로 사용한 사람과, 사고의 증폭기로 사용한 사람 사이의 격차는 단순한 정보량의 차이가 아니다. 그것은 사고방식의 차이이며, 인지 구조의 차이다.

결국 사회는 점차 두 계층으로 분화된다.
사고를 외부 도구에 위임한 계층과, 사고의 기준을 내부에 유지한 채 AI를 사용하는 계층. 이것이 ‘인지적 계층화’다. 사고를 외부에 맡긴 계층과, 사고를 내부에 유지한 계층은 같은 언어를 쓰더라도 같은 수준의 판단에 도달할 수 없다.


이 두 계층은 점점 대화가 어려워진다. 문제를 정의하는 방식이 다르고, 타당성을 판단하는 기준이 다르며, 오류를 인식하는 지점이 다르기 때문이다. 같은 언어를 사용해도 같은 의미에 도달하지 못한다. 설득이 아니라 해석과 번역이 필요한 관계가 된다.


따라서 “AI를 배운다”는 말은 정확하지 않다. 배워야 할 것은 사용법이 아니라 올바른 사고다. 사고의 전제가 잘못된 상태에서의 AI 사용은 편향을 강화하고, 스스로 사고하지 않아도 되는 습관을 학습시키는 과정이 된다.

AI는 사고를 대신해 주는 도구가 아니다.
사고할 수 있는 사람만이 제대로 사용할 수 있는 도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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