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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존 출판 대행: 프리랜서의 회고

by 아침산책

이 글은 제가 어쩌다 아마존 출판 대행 프리랜서라는 특이한 일을 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회고이면서, 그간 아마존에 출판 대행 해드린 책에 대한 느낌을 공유하는 글입니다. 아마존 출판에 관심이 있는 분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1. 무산된 아마존 베스트셀러의 꿈


아마존 출판을 통해서 돈을 많이 벌어 보겠다는 생각으로 아마존에 처음으로 책을 출판한 것이 2019년입니다. 벌써 5년이 지났네요.


저는 원래 책을 쓰던 작가가 아니고, 공공기관에 고용되어서 외국인 투자가들에게 한국 노동법에 관한 컨설팅을 제공하던 컨설턴트였습니다. 영어로 말하자면, In-house consultant 정도로 표현할 수 있겠네요. 그 일을 하기 전에는 공공기관과 NGO에서 10여년 가까이 국제업무를 했던 평범한 회사원이었습니다. 결국은 영어로 먹고 사는 인간이었단 얘기입니다.


2019년에 저는 다니던 회사의 사내정치의 유탄을 맞고나서, 15년 가까이 다니던 회사를 그만 두고, 영어로 된 책을 써보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비록 밥벌이를 위해서 30년간 회사를 다녔지만, 저는 뼈속 깊이 책을 좋아하는 - 술에 취해 침대에 누우면 헤세와 사르트르를 전자책으로 보다가 잠이 드는 - 문과생이자, 작가지망생이었으니까요.


그런데 제가 선택했던 주제는 한국 노동법에 관한 영문 가이드였습니다. 제 머리 속에는 시장조사라는 개념조차 없었다는 얘기입니다. (한달에 구글에서 한국 노동법을 검색하는 숫자는 전세계적으로 1백명도 안됩니다.)


팁: 책을 써서 돈을 벌어야 겠다는 생각을 하신다면, 원고의 첫 글자를 쓰기 전에 자신이 쓰고자 하는 책의 주제를 구글로 검색해보십시오. 영어책이라면 Ubersuggest, 한글책이라면 네이버 키워드 조사를 해보시고, 검색량이 없다면 주제를 바꾸십시오. 물론, 나는 “200년후에 읽힐 것이다”라고 말한 니체 같은 원대한 꿈을 가지고 계신다면 당연히 이런 키워드 조사 따위는 하실 필요 없이 그냥 책을 내시면 됩니다.^^


제가 절치부심해서 다음으로 시도한 책들은 어렸을 때부터 관심이 많았던 할일 관리 (Task management)에 관한 책이었습니다. 제가 십여년간 만족하면서 썼던 온라인 할일 프로그램에 관한 설명서였는데, 직접 그 프로그램의 개발자를 접촉해서 원고를 보여주고, OK를 받아서 아마존에 출판했습니다. 리뷰도 좀 달리고, 판매가 발생하기는 했지만, 역시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습니다. 왜냐고요? 할일 관리 분야는 이미 너무 강력한 책들 - 스티븐 코비의 “성공하는 사람의 일곱가지 습관” 같은 책이 좋은 예입니다- 이 있어서 저같은 피래미는 강력한 광고 드라이브를 통하지 않고서는 독자들에게 노출되기가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제가 말하는 프로그램은 Checkvist 입니다. 아마 한국에서는 이 프로그램을 아시는 분이 거의 없을 겁니다. 제가 1990년대 초부터 최강의 할일 관리 프로그램을 찾기 위해 수백개의 프로그램을 거쳐서 마지막으로 안착한 프로그램입니다. 아마 To Do List 프로그램 중에 이것보다 강력한 프로그램은 없을 겁니다. 정말로 훌륭한 프로그램인데, 개발자들이 자금력이 없어서, 프로그램의 성능에 비해서 큰 성공을 거두지 못하고 있습니다. 마크다운을 지원하고, 모든 할 일에 웹 링크를 달 수 있고, 여러 사람이 공유할 수 있는 할 일 목록이면서, 구글 익스텐션을 깔면 강력한 리서치 관리 툴로 쓸 수 있는 To Do List 프로그램을 찾으신다면 Checkvist를 꼭 써보십시오. 다른 프로그램과 달리 무료판도 유료 버전의 80퍼센트 정도의 기능을 제공하기 때문에 참으로 혜자스런 프로그램입니다.


2. 로우 컨텐츠 출판으로 거둔 애매한 성공


Checkvist에 대한 가이드 이후에도 저는 책쓰기 프로그램인 Scrivener에 대한 전자책과 몇 권의 책을 더 아마존에 출판했습니다. 그러나 어느 책으로도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습니다. 원인이 무엇일까 생각해보면, 기본적으로 저는 자신이 좋아하는 주제에 대해 책을 쓰려고만 했지, 시장이 원하는 책이 무엇인지를 깊게 고민하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미국의 자기개발서 분야의 작가 데일 카네기의 책에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당신이 낚시를 하러가면 미끼는 무엇을 달아야 하나? 당신이 비스킷을 좋아한다고 비스킷을 미끼로 쓰면 고기를 잡을 수 있는가? 당연히 한 마리도 못 잡을 것이다. 당신이 좋아하는 비스킷이 아니고 고기가 좋아하는 지렁이를 미끼로 써야 고기를 잡을 수 있다. 이런 간단한 원리를 모르고, 비즈니스를 시작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기억에 의존해서 쓰기 때문에 원본과는 좀 다를 수 있습니다.)


제가 직접 쓴 책으로는 성공하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고, 아마존 출판에 성공하기 위한 다른 방법이 있을까 리서치를 하다가 찾은 것이 Low Content Book 입니다. 저급한 내용의 책이 아니고, 소설이나, 논픽션 처럼 글이 많지 않고, 독자가 실생활에 활용할 수 있는 다양한 종류의 저널이나 노트북을 의미합니다.


Low Content Book의 대표적인 2가지 예는 컬러링 북과 감사저널입니다.


아마존 랭킹 7위인 이 컬러링 북은 한달 매출이 4억 4천만원 정도입니다.


2019년과 2020년은 아마존에 이런 대박을 꿈꾸는 사람들이 엄청난 물량으로 Low Content 북을 출판하던 시기였습니다. 저도 이 2년 동안 2천여권의 로우 컨텐트 북을 출판하고, 월 백만원 정도의 괜찮은 수익을 달성했습니다.


이렇게 2천여권의 종이책을 만들면서 아마존 출판을 위한 키워드 리서치와, 내지 및 표지 디자인, 아마존 출판의 메커니즘을 익혔습니다. 그러나……


3. 아마존의 철퇴를 맞은 로우 컨텐츠 출판


로우 컨텐츠 북은 태생부터가 변태적인 장르였습니다. 아마존이 POD (주문형 인쇄)를 아마존에 도입해서 종이책을 작가들이 쉽게 출판하도록 한 것은 소설이나 논픽션 같은 제대로 된 내용의 책을 많이 보유하기 위해서 였습니다.


그런데 누군가가 이 시스템을 이용해서 컬러링 북이나 감사저널, 표지만 달랑 붙인 줄친 공책을 아마존에 출판하기 시작했고, 너도나도 이 흐름에 편승해서 수많은 로우컨텐트 북이 올라오기 시작했습니다. 2019년만해도 하루에 출판할 수 있는 책 숫자의 제한이 없었기 때문에, 일부 로우 컨텐트 북 제작자들은 프로그램을 이용해서 하루에 수백권을 올리기도 했습니다.


거기다가 아마존 출판시에 넣는 키워드에 책의 주제와 상관없지만 검색량이 많은 키워드를 로우 컨텐트 북 제작자들이 넣기 시작하면서, 아마존에 어떤 키워드를 넣어도 엉뚱하게 로우 컨텐트 북이 검색결과 상위에 뜨는 상황이 벌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아마도 이런 아마존 생태계 교란 등의 이유로, 2021년부터 아마존은 로우 컨텐트 북을 올리는 작가들의 계정을 폐쇄하기 시작했습니다. 대부분의 이유는 저작권의 침해였지만, 이게 말이 안되는게 백지에 줄을 친 공책에 저작권을 따진다는 건 참 웃기는 거니까요. 어쨌든, 이 거대한 로우 컨텐트 말살 정책의 여파로 저의 아마존 계정도 닫혔습니다.


저의 계정이 닫힌 이유는 제가 올린 플래너의 내지가 다른 작가의 저작권을 침해했다는 거였습니다. 실제로 제가 만든 내지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실제 편집 작업을 한 캡처 화면을 보내고, 수십번의 이메일을 보냈지만, 결국에는 계정이 폐쇄되었습니다. 더 웃기는 건, 그리고나서 아마존에서 자기들의 착오였다고 하면서 계정을 다시 열어주었다가 다시 닫아버리는 과정이 2번 정도 있었습니다. 로우 컨텐트 출판에 대해서 아마존도 명확한 정책을 확정하지 못했기 때문에 벌어진 해프닝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결론은.. 현재 로우 컨텐트 북에서 살아남은 분야는 컬러링 북입니다. 왜일까 생각을 해보면 로우 컨텐트 북이라고 죽여버리기에는 아마존 입장에서도 너무 수익성이 좋은 분야이거든요. 한달에 4억 이상의 매출을 올려주는 책을 내리는 것은 아마존이 보기에도 아까울겁니다. 지금도 아마존의 페이퍼백 (종이책)의 매출 랭킹을 보면 탑 순위에는 항상 몇 권의 컬러링 북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로우 컨텐트 출판으로 아마존에서 성공하시려면, 컬러링 북을 하시기를 권해드립니다..라고 말씀드리면 좋겠지만 미드저니 같은 이미지 생성 AI의 등장으로 아마존의 컬러링 북 시장은 과거보다 더 경쟁이 치열해졌습니다. 이제는 누구나 아이디어만 있으면 전문가 수준의 컬러링 북 내지를 만들 수 있는 상황이 되어버렸습니다.


4. 아마존 출판 대행 프리랜싱의 시작


아마존 계정이 닫히고, 고민을 했습니다. 이제 뭘 해야 하나?


한 가지 확실했던 것은 제가 좋아하는 주제로 아마존 출판을 성공하기는 어렵다는 깨달음이었습니다. 할일 관리라는 주제로 책을 써도 무명 작가로 성공하기는 불가능하고, 스티븐 코비 급의 책을 쓸 능력도 없고…


그런데 아마존 출판 메커니즘과 책표지, 내지 디자인의 스킬은 익혔고….


그래서 생각한 것이 아마존 출판 대행이었습니다. “내가 좋은 책을 쓸 능력은 없지만, 아마존에 책을 내고 싶어하는 다른 작가들의 책을 만들어주자.”


그래서 2022년부터 아마존 출판 대행 서비스를 시작했습니다. 지금은 구글과 네이버로 검색을 하면 모든 검색결과는 저의 페이지로 채워져있습니다.


그래서 대박을 냈을까요? 전혀 아닙니다. 이번에도 검색량 조사를 안하는 실수를 저질렀지요^^ 대한민국에서 아마존 출판 대행을 한달에 검색하는 사람은 40명 밖에 안됩니다.


제가 훌륭한 키워드를 선택해서 지난 2년간 비즈니스를 했다면 지금은 모히또 에서 몰디브 한 잔을 하고 있겠지요. ^^


결론은 “키워드, 즉 수요조사 없이 하는 비즈니스는 결코 성공할 수 없다” 정도가 되겠습니다.


5. 아마존 출판 대행을 하면서 기억에 남는 작가님들


아직 많이 알려지지 않은 탓에, 그리고 작은 시장 규모 때문에 대박은 치지 못했지만, 아마존 출판의 손쉬운 방법을 찾으시는 작가님들은 대부분 저에게 오시기 때문에 다양한 장르의 책을 만드는 경험을 했습니다. 그 중에서도 기억에 남는 작가님들을 소개합니다.


1. 환경 비평 학술서: 정선영 작가님

Eco-criticism 계열의 영미 작가들에 대한 책을 내시는 작가님입니다. 제가 중학교 때부터 푹 빠졌던 Thoreau 도 포함된 여러 작가들에 대한 학술서적을 많이 출판하셨는데, 이분의 책을 만들 때는 마음이 흐믓합니다. 제가 원했지만, 환경과 용기 부족으로 가지 못했던 학자의 길을 꾸준하게 추구하시는 모습에 대한 부러움도 있고, 아마존 출판 대행이라는 역할로 간접적으로나마 학문의 전파에 기여한다는 뿌듯함 때문이겠지요.


2. 한시 번역 및 주석: 문세화 작가님

이분의 원고를 받아보고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전혀 아카데믹한 배경을 가진 분이 아닌데, 왠만한 대학교수도 할 수 없는 김삿갓 시의 전문 번역을 하시고 기존 주석을 다 검토하고 본인만의 주석을 다신 학적인 깊이에 감탄했습니다. 이런 책은 국가에서 지원을 받아서 출판을 해야 할 가치가 있는데, 자비출판으로 저를 통해 아마존에 출판하셨다는 것도 아이러니컬 하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3. 쌩 떽쥐뻬리 해설서와 동화: 이명경 작가님

이 작가님의 동화책을 영어와 불어로 아마존에 출판해드렸을 때는 그냥 평범한 동화책 출판 프로젝트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출판후 얼마 후에 하루에 2백부가 팔렸다는 말씀을 전해 듣고, 아마존 생태계는 정말 특이한 소재의 책도 팔리는 거대한 시장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특히 불문과를 졸업했지만, 평생을 영어로 먹고 살았던 저에게, 이 작가님의 불어 동화와 불어로 된 쌩떽쥐페리 해설서를 편집해드리면서, 불어를 배운 것이 전혀 소용없는 것은 아니었다는 생각을 한 것도 기억에 남습니다.


4. 루마니아 문화, 역사 해설서: 박정오 교수님

합치면 600 페이지가 넘고 수백개의 사진이 있는 2권의 책을 편집하면서 엄청 고생을 한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이미지가 많은 책은 텍스트만 있는 책보다 작업량이 2-3배 된다는 것을 피부로 느끼게 해준 책이기도 합니다. 아마존 출판이 된 후에, 식사라도 대접하고 싶다고 하셔서 작가님을 만났는데, 20대 후반부터 오로지 학문에만 전념해서 세계적인 루마니아학 전문가가 되셨다는 말씀을 듣고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이런 책을 만드는 경험을 할 수 있다는 것도 아마존 출판 대행의 좋은 점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5. 투자전략서 & 자기계발서: 언더독 작가님

표지 디자인을 할 때, 대부분의 경우에는 어떤 컨셉으로 가야 할지 아이디어가 쉽게 떠오르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작가님의 원고를 봤을 때, 로마 검투사의 실루엣에 배경은 흑백으로 하고, 스토익하면서 공격적인 느낌의 폰트를 써야 하겠다는 생각이 한번에 들었습니다. 브런치에서도 활발하게 활동하시는 이 작가님의 책은 원고도 포인트가 명확해서 작업을 하면서 거의 피곤한 느낌이 없었다는 좋은 기억이 있습니다.


해외 출판, 30일 안에 끝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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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MarkedBrunch를 이용해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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