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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침산책 Dec 16. 2023

니체 책 추천, 어떤 순서로 읽으면 좋은가?

중학교 1학년때부터 니체의 안티크리스트를 읽었으니 이제 처음 니체와 접한 지 44년이 되었습니다.


아마 철학 전공자가 아닌  일반인치고는 꽤 진지한 니체 읽기를 평생 해온 것 같습니다. 학자가 아닌 니체 애호가로서 저의 경험을 나눕니다.


1. 니체 어떤 순서로 읽으면 좋은가?


최악의 선택은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제일 먼저 읽는 것입니다. 니체의 최대 걸작이라고 많이 언급되고, 니체를 읽으면 당연히 이 책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집어드는 독자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솔직히 말하면 지루한 책입니다. 성경 구절을 패러디하고, 상징적인 구절이 많지만 그만큼 현대의 독자에게는 거리감이 느껴지는 낡은 냄새가 풍기는 책입니다. 아마 이 책을 읽다가 포기해서 니체와 영원히 헤어지는 독자도 많을 겁니다.


2. 가장 먼저 읽으면 좋은 니체의 책


개인적인 이유에서 이기도 하겠지만 니체의 안티크리스트 또는 한국어로 말하면 "적그리스도"는 니체의 폭발적인 문장 구사력을 느끼기에 최고의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항상 논쟁 거리가 되는 기독교에 대한 책이기 때문에 기독교 신자든 아니든 간에 흥미진진한 독서를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중학교 1학년때 이 책을 다 읽고 뒷산 꼭대기에 올라가 저물어가는 해를 보면서 거대한 세상을 발견한 듯한 흥분을 느낀 기억이 납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기독교에 대한 역사비평과 예수에 대한 독특한 심리학적 해석이 곁들여진 책으로 덤덤하게 평가할  있지만 아직 많은 책을 읽지 못하고 기독교 교리의 틀 안에 갇혀있던 어린 소년에게는 이 책은 커다란 충격이었습니다.


무엇보다 안티크리스트는 니체가 좋은 책의 조건이라고 말한 빠르고 활발한 "문체의 템포"가 완성된 책입니다. 각각의 문장이 격렬한 템포로 앞으로 전진해 가기 때문에 지루하다는 느낌이 전혀 없습니다.


이 책을 쓰고 일 년도 되지 않아 니체가 미쳐버린 것을 생각하면 무너지기 직전의 니체의 정신의 최고치를 보여주는 책이기도 합니다.


3. 니체를 좀 더 깊게 알기 원할 때 추천하는 책


안티크리스트로 니체를 시작한 후 니체의 철학을 좀 더 알고 싶을 때는 "선악의 피안"을 권합니다. 니체가 평생 다룬 주제가 거의 다 들어가 있으면서 초기나 중기의 어설픈 문체가 완전히 사라지고, 니체 특유의 스타일이 완성된 책입니다. 특별히 책의 초반에서 독일 관념론 철학자들을 하나씩 뭉개버리는 부분은 니체 아닌 다른 철학서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재미를 줍니다. 니체의 학위 논문을 심사한 교수가 "자네는 논문을 프랑스 소설처럼 쓰는 재주가 있어"라고 감탄했다는 니체의 문장력이 십분 발휘된 책입니다.


4. 니체를 진지하게 연구하기 원하는 분들에게 권하는 책


일반인의 독서 수준보다 더 깊이 니체를 읽기 원하시면 "도덕의 계보"를 시도해 보시기 바랍니다.  영국의 공리주의 철학의 도덕관을 비웃으면서 역사와 언어학적인 관점에서 도덕의 기원을 밝히는 책입니다  니체가 쓴 책중에서 가장 학술적인 문체로 쓰였으며, 실제로 현대의 니체 연구자들이 가장 많이 언급하고 탐구하는 책이기도 합니다.


니체의 다른 책들보다 길고 조금은 지루한 이 책을 오래전 대학시절 때 읽고 제가 얻은 이 책의 결론 중 하나는 니체가 깨달은 양심의 실체는  칸트가 말한 고매한 도덕률 같은 것이 아니라 잘못을 한 노예의 등에 채찍질 자국이 남듯이 원시적인 인간의 정신에 새겨진 채찍 자국이라는 겁니다.


5. 아직도 니체가 쓴 책이라고 팔리고 있는 가짜 책


"나의 누이와 나"라는 책은 니체가 쓴 것이 아닙니다. 니체의 책을 몇 권이라도 읽어 본 사람이라면 그 허접한 문체는 아무리 니체가 정신병원 시절에 몰래 쓴 책이라고 주장해도 절대 니체와는 상관이 없다는 걸 직관적으로 알 수 있습니다. 니체 연구자 발터 카우프만이 그의 유명한 니체 연구서에서 밝힌 바로는 "나의 누이와 나"는 독일어 원본이 발견되지 않고 영문 번역본이라고 주장하는 원고 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책의 곳곳에 니체가 살았던 시대 독일에는 알려지지 않았던 지명이 들어가 있습니다.


최근에 니체의 정신병원 시절에 쓰여진 의사의 소견 같은 자료가 공유되면서 "나의 누이와 나"가 가짜라는 결론은  이미 외국의 니체학자들 사이에서는 확정된 사실인데 유독 한국에서는 아직도 이 책이 버젓이 니체의 책으로 팔리고 있습니다. 정신병원 입원 말기의 니체는 자신의 인분을 먹을 정도로 정신이 피폐해졌다고 합니다.  그런 상태로 책을 썼을 가능성은 없습니다. (사실 "나의 누이와 나"는 정상적인 니체에게 인분을 억지로 먹였으면 나왔을 수준의 책이기는 합니다.)

  

6. 나머지 책들은 어떻게 읽을 것인가?


"비극의 탄생",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등등 그 밖의 니체의 책들은 제가 보기에는 그가 죽기 몇 년 전에 쓴 걸작들을 위한 준비 단계의 책들입니다.


스타일의 완성이나 정제된 내용으로 따지면 그의 말기 작품들보다 못하고, 결정적으로 앞에서 언급한 책들을 읽고 난 후에는 아마 별로 재미가 없을 겁니다. 공부를 위해서가 아니라 즐거움을 주는 니체 읽기를 원하시 독자들에게 제가 마지막으로 추천하는 책은 "이 사람을 보라"입니다. 이 책에 대해서는 제가 이전에 쓴 아래 글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이 사람을 보라


P.S. 니체에 관한 입문서는 그 자체가 하나의 시장이 되었습니다. 수많은 책들이 니체 입문서라는 제목을 달고 출판되고 있지만 정말로 좋은 책은 많지 않습니다. 제가 읽어본 니체 입문서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두 권을 소개합니다.


1. 알랭 드 보통이 쓴 "철학의 위안"의 한 챕터인 "어려움에 처한 존재들을 위하여" (Consolation for Difficulties)는 제가 지금까지 읽어본 니체 입문서 중에 최고입니다. 책의 한 챕터에 불과하지만, 웬만한 입문서보다도 훨씬 더 훌륭하게 니체의 철학의 핵심을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니체가 쓴 책을 읽지 않고, 니체를 이해하기 위한 가장 빠른 지름길을 찾으신다면 이 책의 이 챕터 하나만 읽으시기를 권합니다.


2. 젊은 니체 (Young Nietzsche)는 니체의 저작을 다 읽으시고, 니체에 관한 책들은 거의 다 섭렵하신 분들, 그리고 영어 독해가 가능하신 분들에게 권합니다. 이 책은 니체의 유년기부터 니체가 철학자로서 입지를 다지기 직전까지의 시기를 다룬 책입니다. 다시 말하면 니체의 생애의 초반을 현미경처럼 들여다보는 책입니다. 일반적인 니체 입문서를 찾으시는 분에게는 권하지 않지만, 니체라는 인물에 대해서 모든 것을 알고 싶어하시는 분들은 한번쯤 읽어보실만한 책입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상당히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니체에게 이것이 있었다면 그의 말년은 달랐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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