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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침산책 Jul 07. 2024

사르트르의 "구토" La Nausée

내가 많이 읽은 책

까뮈의 이방인 다음으로 내가 많이 읽었던 책은 사르트르의 "구토"였다.

불어 원본으로도 자주 읽고, 아마 그보다는 더 많이 영어 번역본을 읽었던 것 같다.


사르트르가 실존주의 철학을 발표하기 전에, 그 철학의 중심적인 주제를 소설로 쓴 것이 이 책이다.


어떤 책은 특별한 이유 없이 자꾸 읽게 되는 경우가 있다. 나의 경우에는 구토가 그런 책이다.


프랑스 문학사의 고전인 랑송 불문학사의 사르트르 섹션에 보면 이런 글이 있다. 기억을 더듬어서 써보면, "사르트르의 작품은 추악한 주제를 다루고 있지만, 훌륭한 문체 때문에 그런 주제에도 불구하고 읽게 되는 책이다."


그 책의 말대로 사르트르의 이 소설은 일반인이 즐길 수 있는 책은 아니다. 독신 남성이 프랑스의 소도시에서 과거 러시아의 한 정치가에 대한 전기를 쓰는 과정이 소설 배경의 전부다.


책상 앞에 앉아서 일기를 쓰고, 자주 가는 카페에 가서 음식을 먹고, 가끔은 카페 여주인과 섹스를 하고, 도서관에 가서 책을 읽고, 집에 와서 하루를 반추하고...


이렇다 할 사건도 없고, 인생에 깨달음을 주는 아름다운 문장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나는 이 책을 대학교 시절부터 30대 후반까지 수 십 번은 읽었다.


아마도, 내가 그랬던 이유는, 이 책은 소시민적인 질서를 혐오하고 거기서 탈출하고 싶어 하는 고독한 남자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에서 항상 내 기억에 맴도는 부분은 두 가지다.


첫째는, 주인공이 어린 시절에 친구들과 놀이터에서 놀다가 본 어떤 남자에 관한 부분이다. 머리에 종기가 나고, 부랑자 행색을 한 이 남자가 놀이터에 있는 아이들에게 인사를 하면 아이들은 기겁을 하고 도망간다. 주인공은 왜 그 남자를 보면 공포를 느꼈는지 말한다. "내가 그 남자를 보고 겁을 먹은 이유는 그 남자의 뇌는 인간의 뇌가 아니라 갑각류의 뇌라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인간의 모양을 하고 있지만, 그 남자가 하는 생각은 갑각류의 생각이라는 느낌. 그것이 나에게 공포를 느끼게 했다. (원본이 없어서 기억을 더듬어서 쓴다.)


가끔, 사회와 인간과 유리된 나 자신을 돌아볼 때, 나도 그런 갑각류의 뇌를 가진 인간이 되어가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인간사회와 멀어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한다.


두 번째 부분은, 주인공이 자신이 사는 소도시의 박물관에 가서 그 지역의 귀족들을 기리는 초상화들을 보는 장면이다. 마침 한 가족이 들어와서 벽에 걸린 귀족들의 초상화를 본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훌륭한 조상들에 대해 훈시를 한다. 주인공은 그럴듯한 세팅에 장엄한 포즈를 취하고 있는 초상화 속의 인물들을 보면서 그 그림들 뒤에 있는 나약한 인간의 모습을 꿰뚫어 본다. 그리고 박물관을 나오면서 혼잣말을 한다. "안녕. 개새끼들아." (Adieu. Salauds).


60을 바라보는 지금 이 나이가 되어서도 느끼지만, 나는 한평생을 소시민적인 질서를 혐오하고 탈출하기를 원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그 소시민적인 질서가 제공하는 정상적인 환경을 동경했다. 나의 유년시절은 안정된 소시민적 가정이 아니라, 가장의 실패로 무너진 영화 기생충 같은 환경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말한 것처럼, 나는 봉준호는 가난을 겪어보지 않은 인간이라고 생각한다. 무너진 가정에서는 그 영화에서 보이는 것 같은 가족 구성원 간의 협력은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국가든 가족이든 무너지게 되면 남는 것은 서로 물어뜯는 이리떼 밖에는 없다. )


그러나 이 소설에서 나온 "안녕. 개새끼들아"는 여전히 나에게 기억에 남는다. (어쩌면 사회생활을 하면서 개 같은 인간들을 많이 봐서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


한 가지 내가 더 이상 젊지는 않다는 걸 느끼는 이유는 이제는 더 이상 내가 읽던 책들을 다시 집어 들지 않고, 과거에 읽었던 책들을 회상하는 데 그치는 경우가 많아졌다는 거다. 마치 노인이 된 카사노바가 과거에 사랑을 나누었던 수백 명 여인들을 회상하듯이, 나는 내가 청년이었을 때 읽은 책들을 회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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