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존 출판 대행 프리랜서 아침산책입니다. 그리고 그 이전에는 중학교 1학년때부터 니체를 읽기 시작한 아마추어 철학 애호가입니다.
니체와 나의 인연
제가 어린 시절에 니체를 읽을 때만 해도 니체는 일반인들에게는 많이 읽히지 않는 작가였습니다. 니체라는 이름을 가장 자주 들었던 장소는 제가 다니던 교회였습니다. 목사님들은 종종 설교 도중에 니체의 이름을 거론하면서 이런 말을 하곤 했습니다.
“신은 죽었다”고 말하던 니체는 죽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말한 니체는 죽었고, 우리의 하나님은 살아계십니다.
주로 이런 식의 썰이 었는데, 그 당시 기독교와 현실의 괴리에 의심을 많이 품고 있던 저에게는 오히려 그런 말들이 호기심을 자극했고, 결국은 니체의 반그리스도를 읽은 그날 이후로 니체를 진지하게 읽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중학교 1학년때부터 시작된 니체 독서는 그의 주요 저작을 대학교 졸업 때까지 읽는 방향으로 전개되었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는 니체의 책, 이를테면 “선악의 피안” 같은 책을 읽다보면, 그가 독일의 선배 철학자들을 질타하고 조롱하는 문장들이 많다는 겁니다. 칸트나 헤겔을 읽지 않았던 저는 당연히 그런 문장들의 의미나 재미를 느낄 수 없었고, 니체 독서는 결국 독일 관념론 철학에 대한 관심으로 확대되었습니다.
이게 참 어떻게 보면 비생산적이라고 할 수 있는데, 저는 불문학과 학생이었기 때문에 칸트나 헤겔을 찝쩍댈 시간에 프랑스 고전을 읽었어야 하는데, 대학 시절 내내 니체의 책이나 헤겔의 정신현상학을 붙잡고 있었다는 겁니다.
이런 딜레땅트적인 독서는 사실 저의 인생 경력에 아무 도움도 안되었습니다. 불문학과 학생이 니체나 헤겔을 읽고 공부한다고 학문적인 커리어를 쌓는데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니고, 거기다가 저는 아카데믹한 직업을 가질 수 있게 지원을 해줄 만큼 집안이 풍족했던 것도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희한하게도 니체 역시 저와 비슷한, 경력과 흥미의 미스매치를 대학교수 시절에 겪었습니다. 커티스 케이트가 쓴 니체의 전기에 자세하게 나와있는 이야기를 간단히 소개하면, 니체는 라틴어와 희랍어에 탁월한 재능을 보여서 24살에 바젤 대학의 문헌학 교수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라이프찌히 대학시절에 쇼펜하우어의 철학에 푹빠진 그는 문헌학 교수가 된 이후에도 철학을 하고 싶다는 욕망을 떨쳐내지 못했습니다. 결국은 바젤 대학 당국에 철학과 교수로 옮겨 달라고 여러번 신청을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대학의 답변은 그의 경력을 보면 철학교수가 될 자격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이거야 말로 진정한 아이러니 아닐까요? 전세계의 철학과 교수들이 사골 국물처럼 우려먹는 철학서를 쓴 니체 자신은 철학교수가 되고 싶어도 되지 못했다는 게 말이지요. 그런 철학교수들이 니체와 동시대에 같은 장소에 있었다면 아마 자기들끼리 이런 말을 했을 겁니다. “저 친구는 왜 자기 분수도 모르고, 철학교수가 되겠다고 깝치는거야?”
서양 철학사에서 손꼽히는 철학자인 니체가 간절히 원했는데도 철학교수가 되지 못했다는 사실. 이건 인간 사회를 잘 설명해주는 포인트라고 저는 느낍니다. 어느 분야든 진정한 고수는 당대에는 인정 못받는 경우가 많다는 것. 그리고 그런 고수가 갖지 못한 것을 범용한 인간들이 차지한다는 것.
니체가 왜 한국에서 많이 읽히는 것일까?
사실 이 질문은 애매한 부분이 많습니다.
정말로 한국 사람들이 니체를 읽고 있는 것일까요? 아니면 니체가 아닌 엉뚱한 글을 읽고 있는 것일까요?
니체를 구글에서 검색하면, 자주 뜨는 책들은 이런 타이틀을 달고 있습니다.
“XX에 읽어야 하는 니체”, “니체가 알려주는 XXX”
소송을 당하지 않기 위해 책 이름은 자세히 쓰지는 않습니다. ^^
한국의 학자가 진지하게 연구해서 쓴 책은 당연히 니체를 읽는데 도움이 됩니다. 그러나 제 느낌에는 한국에서 니체의 이름을 달고 나오는 책 들중의 베스트 셀러는 일본에서 발간된 책들의 번역이 많은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런 책들의 내용은 니체의 정체성과는 너무 동떨어졌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문체를 중요시한 니체의 원문과는 너무 다른 희석된 문장들로 채워진 책들이기 때문입니다.
니체는 독자들에게 친절한 작가가 아닙니다. 그의 책의 원본을 보면, 라틴어, 불어, 그리스어를 그대로 넣은 경우가 많습니다. 즉, 유럽 문화에 조예가 깊은 일급 독자들만을 상대로 책을 쓴 것입니다. 절대로 평범한 독자들을 위해 친절하게 글을 써주는 작가가 아닙니다.
니체의 말을 그대로 옮기면……
“나는 많은 사람들이 나의 책을 좋아할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는다. 내 책은 다수를 위한 책이 아니다.” (선악의 피안)
그리고, 민주적이고, 공리주의적인 사고를 가진 21세기의 한국인이라면, 그리고 사회정의에 불타는 한국인이라면 니체를 멀리하는 것이 맞습니다.
헝가리의 위대한 막시스트 철학자 게오르크 루카치가 그의 저작 이성의 파괴에서 지루할 정도로 설명한 것처럼 니체는 대중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 반동 철학자입니다.
니체는 한 사람의 영웅을 위해서 한 개의 문명이, 수백만명의 평범한 인간들이 희생되어도 된다고 주장한, 그야말로 반민중적이고, 반민주적인, “사악한” 철학자입니다.
대중이란 여섯 또는 일곱명의 위대한 인간을 얻기 위해 자연이 택하는 우회로이다. (선악의 피안)
이런 철학자를 왜, 그렇게 모두가 평등하고, 가치있다고 생각하는, 21세기의 현대 한국인들이 열심히 읽고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