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체가 한국에서 인기를 끄는 한 가지 이유를 저는 요즘 온라인에서 일어나고 있는 “숏폼” 현상에서 찾습니다.
1분 남짓의 동영상에 익숙해진 한국인들은 더 이상 긴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책을 읽지 않습니다.
유튜브의 숏폼에 익숙해져, 시간을 들여서 길고 어려운 책을 읽는 것을 버거워하는 한국인들에게 니체의 글은 커다란 매력을 가집니다. 니체의 글들은 대부분 짧은 잠언이거나 길어야 A4 한 페이지 정도의 패러그래프이기 때문입니다.
성인이 1년에 한 권의 책도 안 읽는 한국의 척박한 독서문화에서 그나마 니체의 책이 인기를 얻는 이유는 그의 짧고 임팩트있는 문장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신은 죽었다.
나를 죽이지 않는 것이 나를 강하게 만든다.
깊은 구멍을 오래동안 들여다보면 그 깊은 구멍이 나를 들여다본다.
이렇게 간결한 문체 때문에 니체는 할리우드 영화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는 철학자라는 타이틀을 얻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니체는 대중음악계에도 진출했습니다.
켈리 클락슨: Stronger (What Doesn't Kill You) (나를 죽이지 않는 것이 나를 강하게 만든다.)
서양철학사에서 니체에게 꿀리지 않고, 어찌보면 더 큰 위상을 차지하는 칸트나 헤겔이 한국인들에게 널리 읽히는 날이 올까요? 절대로 그런 날은 안 올겁니다.
왜냐하면 칸트나 헤겔의 책을 죽어라고 뒤져도 니체가 수없이 쏟아낸 자극적이고, 폭발적인 짧은 문장을 하나도 찾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칸트의 대표작 순수이성비판의 첫 문장입니다.
인간의 이성은 그 인식의 한 영역에서, 자신의 본성에 의해 제기되는 질문들을 고찰하도록 요청받는다. 이 질문들은 이성이 거부할 수 없는 것이지만, 모든 정신적 능력을 초월하기 때문에 답할 수도 없는 것들이다.
헤겔의 대표작 정신현상학의 첫 문장입니다.
철학적 저작의 경우, 서문에서 저자가 염두에 둔 목표나 그가 글을 쓴 상황 등을 설명하는 것으로 시작하는 것은 단지 불필요할 뿐만 아니라, 주제의 성격을 고려할 때 부적절하고 오도하는 것처럼 보인다.
니체의 자서전, “이 사람을 보라”의 문장을 보십시오.
나는 인간이 아니다. 나는 다이너마이트다.
이런 간결하고 폭발적인 문장을 구사하는 니체가 숏폼에 익숙한 한국인들에게 - 왜곡된 짜집기 책들을 통해서라도 - 읽히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결과입니다.
니체의 우상의 황혼에서 인용한 문장으로 이 글을 끝마칩니다.
내 야망은 다른 사람들이 한 권의 책으로 말하는 것을 열 문장으로 말하는 것이다.
21세기의 한국식으로 고치면.
내 야망은 다른 유튜버들이 한 개의 비디오로 말하는 것을 한 개의 숏폼으로 말하는 것이다.
그러고보니 내일 (10월 15일)이 니체의 생일이네요. 니체의 생일 전날에 이런 글을 쓰게 된 것도 재미있는 우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