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체의 자서전의 제목 “ 이 사람을 보라(Ecce homo)” 는 성경 구절에서 따온 문구이다. Ecce homo 는 예수를 지칭하는 문장이다. 말하자면 예수와 자신을 동일한 수준에 둔 문장이니 기독교인들이 보기에는 신성모독이라고 할 만한 도발적인 제목이다.
그러나 이 책의 핵심은 니체가 외부환경에 이끌려, 스위스 바젤 대학의 문헌학 교수라는 일상적인 생활을 하다가 자신이 해야 할 일을 깨닫고, 그 모든 환경에서 벗어나 독립을 찾는 과정을 회고하는 것이다.
상식적인 관점에서 보면 니체가 자신의 인생을 관리한, 또는 망가뜨렸다고도 볼 수 있는 방식은 참으로 한심하다. 스물네살에 천재성을 인정받아, 대학교수가 되고, 당대 최고의 예술가 바그너와 우정을 맺고, 바그너의 오른 팔이라고까지 할 수 있을 정도의 신임을 받았던 니체. 그러나 니체는 자신의 철학을 위해 그런 안정된 직업과 소중한 우정을 모두 버렸다.
문헌학이라는 고루한 학문을 견디지 못하고, 삶과 세계에 대해서 자신이 발견한 진실에 대해서 책을 쓰기 위해 교수직을 던져버리고, 유럽 각지를 돌아다니면서 하숙집에서 책을 썼다. 바그너의 예술과 자신의 철학은 양립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스스로도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인연이라고 생각했던 바그너와의 우정을 포기하고, 죽을 때까지 바그너에 대한 신랄한 비평을 책에 담았다.
니체는 세련된 사교매너를 가진 섬세한 인간이었고, 많은 친구를 가진 지극히 정상적인 인간이었다. 피아노 즉흥연주로 숙녀들의 혼을 빼놓기도 하고, 세련된 옷차림과 매너, 훌륭한 교수법으로 학생들을 매료시키는 스타 교수였다. 수염을 기른 외로운 철학자라는 니체의 모습은 후대의 창작이다. 그는 결코 골방에 갇혀서 책만 쓰는 괴짜철학자가 아니었다.
그러나 니체가 자신의 철학을 발견하고, 자신의 사상에 집중하면서, 그는 세상과 점점 멀어져갔다. 자신의 철학에 전념하기 위해 교수직을 그만 두고 10여년간 외로운 집필생활에 전념하던 니체. 결국 46세가 되는 해 정신착란을 일으켜 이태리 토리노의 광장에서 쓰러졌으며, 그후 10년 동안 정신병원에서 껍데기만 남은 채로 연명하다가 죽었다.
니체가 정신착란으로 붕괴되기 1년전에 쓴 “이 사람을 보라”는 이처럼 많은 것을 희생하고 자신을 찾기 위해 그가 지나가야 했던 자기변화의 과정을 설명하는 책이다. 철학사적인 의미에서 그의 철학이 어떤 가치가 있는지, 이런 식으로 이 책을 읽을 수도 있겠지만, 나에게는 이 책은 자신의 신념을 위해 사회와의 불화를 아랑곳하지 않고, 모든 소중한 것을 희생하는 과정을 그린, 정신적인 자유의 추구를 위한 필드 매뉴얼로도 읽힌다.
니체는 자신에게 가장 맞는 기후를 찾기 위해 유럽 각지를 돌아다닐 때마다 습도계로 그 지역이 자신의 신진대사에 맞는지 점검했다. 음식에 대해서도 각별한 주의를 기울였으며, 그것은 인간과의 교제, 독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그 모든 노력과 섬세한 주의는 오로지 책으로써서 남겨야할 진실에 대한 헌신을 위해서였다.
다시 말하지만, 그의 행위는 철학사적인 의미에서, 진리의 추구라는 점에서는 영웅적인 노력이지만, 상식의 관점에서보면 완벽한 또라이 짓이었다. 대대로 목사집안이었던 니체의 가문에서, 니체는 반기독교의 대표적인 인물로 역사에 남았으니, 가문을 배반한 자였다. 다섯살에 목사였던 아버지가 죽고, 홀어머니와 누이만 있는 집안에서 유일한 남자로 책임이 무거웠지만, 멀쩡한 교수직을 버리고 철학서를 쓰겠다고 부랑자처럼 여러 나라를 헤메고 다녔으니, 엄청난 불효자요 무책임한 오빠였다.
마지막으로 정신병자가 된 후 니체의 어머니는 그를 병간호하다가 죽었으며, 나중에 그 짐은 누이에게 넘어갔으니 끝까지 민폐였다. 다만 니체의 누이는 니체가 유명해졌을 때 그의 모든 저작에 대한 권리를 가지게 되어, 돈도 벌고, 나치 독일이 그의 철학을 왜곡하여 국가 철학자의 반열에 올렸을 때는 히틀러의 방문까지 받을 정도로 유명세도 얻었으니 본전치기는 한 셈이다.
니체라는 인간이 주는 교훈은 무엇인가? 인간이 자신의 신념을 진실하게, 외부의 시선을 개의치 않고, 올곧게 극단적으로 추구하는 경우, 그의 인생은 파괴될 수 있다는 것이 그 교훈이다. 그렇지만 한편으로 이런 판단 자체가 결국 니체가 경멸했던 현대인에게 어울리는 생각이다.
극한의 추위를 자랑하는 알프스 산기슭의 하숙집에서 불도 잘 안펴지는 난로 옆에 앉아 지독한 근시로 잘 보이지도 않는 눈으로 자신의 책을 한글자씩 써내려간 니체, 하루에 몇시간씩 알프스를 산책하면서 향후 2백년 동안 전세계의 철학자, 문학가, 교수들이 사골처럼 우려먹게 될 시대를 앞서나간 사상을 떠올렸지만, 죽을 때까지 인정을 받지 못하고, 인정을 받기 시작할 때 쯤에는 이미 정신병자가 되어 자신의 변을 먹을 정도로 망가진 상태로 10년을 살다가 죽은 니체.
니체의 일생은 무미건조한 철학서를 통해서 보면 그럴듯한 영웅적이고 고독한 철학자의 일생처럼 보이지만, 하나의 개인으로 보았을 때는 참으로 서글프고 비참한 인생이다.
그러나 나는 니체 자신은 스스로를 행복한 인간이라고 여겼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이 사람을 보라’의 서문은 자신의 모든 철학을 발견하게 만들어준 자신의 인생에 대해서 감사한다는 문장을 담고 있다. “세계와 인간을 뛰어넘은 6천 피트”라는 문장으로 그가 표현한, 진리를 발견한 행복감은 범인은 도달할 수 없는 경지다.
모든 인간은 자유를 추구한다. 니체 역시 그런 욕망을 가지고 있었고, 그런 자유에의 욕망을 철저하게 추구했다는 점에서는 여느 인간과 다를 바 없다. 그러나 그가 추구한 자유, 그가 추구한 자유의 대상 – 진리의 추구 – 은 결국 니체 자신을 불살라버린 화염이었다. 자유에 대한 절대적인 추구는 분명히 인간을 행복하게 만들 것이다. 다만 그 행복의 정점이 지나고 난 후에는 그 인간의 육체와 정신은 철저히 파괴되고 불타버린다. 바로 니체의 말년처럼.
니체에게 이것이 있었다면 그의 말년은 달랐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