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세 소년 구스타프 야누흐는 문학소년이었다. 시를 쓰고 책을 읽었다. 그의 아버지는 카프카의 직장동료였다.
카프카가 작가라는 사실을 안 야누흐의 아버지가 두 사람을 소개시켰고, 상당히 나이 차이가 나지만 (아마 스무살 정도라고 생각된다) 문학에 대한 관심을 공유하는 작가와 소년은 친구가 된다.
나는 카프카의 변신 이외의 다른 작품은 끝까지 읽지 못했다. 아무리 노력을 해도 그의 책은 읽혀지지 않는다. 물론 변신은 예외였다. 직장을 한번이라도 다녀본 인간이라면 가족의 생계에 보탬이 되는 직장인 이었다가 갑자기 벌레로 변하는 순간 찬밥이 되는 그 소설의 상징성을 놓칠 수 없을 것이다.
벌레로 변하는 것은 직업을 잃거나, 병이 들거나, 어떤 이유에서건 가족에게 짐이 되는 존재가 되는 모든 상황에 적용된다. 이런 비슷한 상황을 겪고 난 후의 가족구성원의 행동을 관찰하고 변신의 내용과 비교하면 소름끼치는 유사성을 발견하게 된다.
변신 얘기는 그만하고, 야누흐가 카프카와의 대화를 기억해서 쓴 이 책은 카프카의 그로테스크한 소설과는 달리 카프카라는 인간의 매력을 보여주는 책이다.
17세 소년과의 대화 속에서 카프카는 삶의 진실, 자본주의 사회의 잔인함, 예술에 대한 존경심 등의 무거운 주제에 대해서 전혀 나이를 내세우지 않고 자신도 방황하는 인간임을 감추지 않고 생각을 나누고 충고를 해준다.
현실에 묶여있지만 보통 인간은 갖지 못한 심오한 통찰력을 가진 인간. 이 책에서 보이는 카프카는 그런 존재다. 상업적 또는 사회적인 의미에서 카프카는 성공하지 못했고 아예 그런 것을 원하지도 않았다. 죽기전에 친구에게 자신의 원고를 모두 없애버리라고 부탁했지만 친구는 그에 따르지 않았고 그 결과 사후에 세계문학에 이름을 올린 작가가 된 것이다.
문학의 역사에서 자신의 생각, 작품을 다른 인간이 알아주는 것에 대해서 이렇게 무관심했던 작가는 카프카 말고는 없었을 것이다.
어쩌면 카프카에게 그의 작품은 일기 같은 것이었는지 모른다. 누구나 일기를 없애버린 경험은 있다.
카프카와의 대화는 구석구석에 마치 노자나 장자에 나올법한 심오한 비유가 있다.
내가 기억하는 가장 기억에 남는 문구가 있다. 내가 아끼던 이 책의 번역본은 몇년전에 독서라는 행위의 무용함을 느끼게 한 개인사 이후로 갖고 있던 수백권의 책을 전부 버리는 과정에서 사라졌다. 아마존 전자책에서 그 구절을 번역해본다.
“인생은 우리 위의 방대한 별들처럼 무한하게 거대하고 심오하다. 인간은 자신의 개인적 존재의 좁은 열쇠구멍을 통해서만 인생을 볼 수 있다. 그러나 그 구멍을 통해 인간은 눈에 보이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이해할 수 있다. 그래서 인간은 무엇보다도 그 열쇠구멍을 깨끗한 상태로 유지해야 한다.”
“Life is as infinitely great and profound as the immensity of the stars above us. One can only look at it through the narrow keyhole of one’s personal existence. But through it one perceives more than one can see. So above all one must keep the keyhole cle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