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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침산책 Sep 22. 2023

황야의 이리

헤르만 헤세는 나의 청춘기에 잊을 수 없는 책을 선사했다. 그 책의 제목은 데미안. 기독교 도덕과 사춘기에 나타나기 시작하는 성에 대한 호기심. 이 양립하기 어려운 두 가지 영역을 해결하는 방향을 데미안은 나에게 보여주었다.


물론 나는 더 이상 데미안을 읽지 않는다. 그 책은 청년을 위해 쓰여진 책이고, 나는 이제 청년이 아니기 때문이다.


황야의 이리는 50대 독신남을 주인공으로 하고 있다. 다시 말해 바로 나에게 직접적으로 관련된 책이라는 말이다.


여러 도시를 전전하며 하숙집에 자리를 잡고,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읽으며 밤에는 선술집에서 식사를 하는 주인공 할러는 외로운 중년 지식인이다. 50대를 중년이라고 부를 수 있는가? 노년이라고 부르는 것이 더 적당할 지도 모르겠다.


소설은 할러가 기거하는 하숙집을 떠난 뒤 그의 책상에서 발견된 “황야의 이리”라는 제목의 수기가 주된 부분이고, 앞부분은 그 수기를 발견한 하숙집 주인의 조카가 할러에 대해 쓴 일종의 서문 이렇게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독립적이고, 반사회적인 아니 비사회적인 지식인이 유럽문명에 대해서 보내는 비판. 이것이 이 수기의 내용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가족도, 연인도 없는 외로운 남자가 자신의 인생에서 어떤 의미를 찾는지도 중요한 내용이다.


환상과 현실이 섞여 있는 이 책에서 뚜렷한 줄거리, 현실에 근거한 내러티브를 찾는 것은 무의미하다. 종잡을 수 없는 전개에 처음 읽는 사람은 이 책을 던져버리고 말 것이다. 나도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때 그랬으니까.

그러나 내가 주인공과 비슷한 나이가 되어서 이 책을 다시 읽었을 때는 분명 느낌이 달랐다. 아주 간단하고 통속적으로 말하면 이 책은 50대 남자가 20대 여자와 사귈 때 벌어지는 일에 관한 책이라고도 부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책은 연애소설은 아니다.


황야의 이리는 헤르만 헤세의 다른 소설에서 나왔던 모든 주제, 청년의 방황, 고독, 정신적 이상의 추구, 육체와 정신의 갈등, 이상적이고 신비적인 여성의 이미지. 이 모든 주제가 조금씩은 들어가 있는 헤세 문학의 종합판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책 하나만 읽으면 이 모든 것을 접할 수는 있지만, 이전의 다른 책을 읽지 않았다면 이 책의 그런 종합적인 성격을 이해할 수는 없을 것이다.


어쨌든 주인공은 카페에서 헤르미네라는 젊은 여자를 만난다. 이 여자와 주인공의 대화에서, 우리가 50대 남자와 20대 여자 사이에서 일어날 수 있는 사회적 관계 – 물론 사회에서 용인하는 부부관계는 아니다 – 에 대한 다양한 정보와 해석을 볼 수 있다.


결국은 돈을 가졌지만 젊지 않은 남자와 돈은 없지만 젊은 육체를 가진 여자 사이의 관계는 영어에서 말하는 Sugar Daddy와 젊은 여자의 구도로 갈 것이다. 소설안에서 실제로 헤르미네는 그런 여자들의 삶이 어떠한지 짧게 묘사하고 있기도 하다.


이 소설의 아이러니는 헤르미네가 분명 주인공의 젊은 애인 노릇을 하기도 하지만, 이야기가 전개될 수록 그녀는 주인공의 노리개가 아니라 그에게 삶의 엄숙한 진실을 알려주는 존재로 묘사된다는 것이다. 20대의 그녀는 주인공의 지적 허영심을 비웃고, 책벌레의 삶에 매몰되어 진정한 인간적 쾌락, 인간 본연의 관능의 세계에 관해서는 어린 아이에 불과한 주인공이 다시 한번 인생을 제대로 향유하도록 가르치고 지도하는 선생같은 모습으로 묘사된다.


헤세는 독일 소설가 답게, 독일 문학과 예술의 중요인물에 대한 코멘트를 소설 곳곳에 뿌려놓았다. 모짜르트, 괴테, 브람스의 예술에 대해서 말하는 부분이 소설의 여러 부분에 보인다. 극도로 이성적인 지식인으로서 생각하고 느끼는 50대 독신 남자에게 그가 언급하는 철학적 문제에 대해서, 삶과 지식의 갈등에 대해서, 괴테라는 위대한 인간이 어떻게 독일문화에서 그 야생성은 길들여지고, 그저 위인전의 인물중의 하나로 변질되었는지에 대한 불만에 대해서, 20대의 헤르미네는 그가 하는 말을 모두 이해하고, 오히려 그의 엘리트주의를 비웃는 촌철살인적인 답을 던진다.


평생을 책을 읽고, 삶과 지식의 분리에 대해서, 인간의 야만성과 유럽문화라는 양립하기 어려운 현실에 대해서 고민하는 지식인의 말을, 댄스홀과 찰나적 쾌락이 주된 삶인 20대 여자가 모조리 이해하고, 오히려 그가 놓치고 있는 부분을 지적하는 심오한 충고를 한다?


어쩌면 이 헤르미네라는 여자는  나름 지식인라고 생각하는 중년남자들이 만나면 그 자리에서 혼을 빼았길 사이렌 같은 인물로 보인다. 헤세가 그렸던 매력적인 여성의 에센스를 담은 여자일 수도 있다.


물론 현실에는 이런 여자는 없다. 현실에 황야의 이리의 주인공 같은 남자도 거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삶에 대해서 고민을 하는 50대의 지식인? 이런 종류의 동물이 지구상에 남아 있을까? 전혀 없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아마도 거의 멸종되었을 것이다.


황야의 이리는 책을 지나치게 많이 읽어서 현실과 이상을 구분하기 어렵게 된 50대 남자를 위한 책이다. 이 책에는 이런 책벌레 남자가 꿈꾸는 이상적인 세계가 다 들어가 있다. 독일 고전음악, 모짜르트의 초인적인 웃음, 괴테의 현실을 초월한 지혜, 그리고 너무나 아름답고 날씬하고 중년 지식인의 어두운 지식을 비웃을 수 있는 지혜를 가진 20대의 헤르미네.


헤르미네 같은 여자가 있을까. 그녀와 같은 미모를 가졌는데, 이 소설을 읽고 이해하는 여자가 있다면, 그런 여자는 헤르미네와 같은 류의 여자라고 생각해도 될 것이다. 나는 황야의 이리와 마찬가지로 그런 여자도 존재하지 않거나, 아니면 멸종했다고 생각한다.


니체가 흠모했고, 릴케와 사랑을 나누었으며, 프로이트의 동료였던 루 살로메 같은 여자가 그런 여자에 가깝다고 생각되지만, 그런 여자는 참으로 희귀한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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