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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침산책 Sep 22. 2023

이방인

까뮈의 소설 이방인을 재미있는 소설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이 책은 전반적으로 상당히 우울한 책이다.


불문과 학생이었던 나는 불어능력을 높이겠다고 이 책 저 책 시도해봤지만 이방인 외에 다른 책은 거의 읽지 않게 되었다. 상당히 건조하고 간결한 까뮈의 불어는 술술 읽혀져서 나는 아마도 이 책을 열 번 이상은 읽었던 것 같다.


“오늘 엄마가 죽었다. 아니면 어제였나.” 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이 소설. 첫문장부터 삶에 대한 무관심이 배어나온다.


보통은 태양이 너무 뜨거워서 사람을 총으로 쏴죽였다는 소설의 중반부 대목을 이 책의 클라이맥스로 여기지만 나는 여러 번 읽고 나서 다른 부분에 공감을 느꼈다.


특별한 사건이 일어나기 전에 주인공이 일요일을 혼자 집에서 보내는 부분이다. 아침에 일어나 계란후라이를 먹고 베란다에 앉는다. 사람들이 지나가는 모습을 아침부터 밤까지 그냥 쳐다본다. 이렇게 단 두 문장으로 처리할 수 있는 내용을 까뮈는 여러 페이지에 걸쳐 집요하게 묘사한다. 주인공이 고독을 느꼈다는등의 문장은 전혀 없지만 그저 묘사를 따라가기만 해도 독신남자의 공허한 시간을 느끼게 된다.


이 삭막한 소설에 갑자기 피식 웃음이 나게 하는 부분이 있다. 살인죄로 기소되어 구치소에 갇힌 주인공은 너무 지루해서 침대 매트리스 사이에 낀 오래된 신문의 기사를 반복해서 읽는다.


체코에서 일어난 이 사건의 요지는 이렇다. 시골에서 여관을 하는 집에 엄마, 아들, 딸이 있었다. 아들은 도시로 가서 상인으로 성공한다.


수십년이 지나 고향을 방문하게 된 아들은 엄마와 누이를 놀래키려고 부자티가 물씬 나는 변장을 하고 여관에 투숙한다. 가족들은 그를 못 알아본다. 그가 잠들자 모녀는 돈을 훔치기 위해 도끼로 그를 죽이고 시체는 우물에 던진다.


다음날 아들의 아내와 아이가 여관을 찾아와 그의 신원을 밝힌다. 엄마는 목을 매달아 죽고, 딸은 우물에 몸을 던져 자살한다.


이 황당하면서 음울한 사건기사에 대해서 주인공이 내뱉는 단 한마디가 나를 갑자기 웃게 만들었다. “장난을 함부로 치면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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