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50대 중반이 될 때까지도 내가 인생에서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를 알지 못했다. 내가 아무 것도 못하는 인간이라는 말은 아니다.
한국 성인의 평균 이직 숫자인 4.2회 보다도 훨씬 더 많이 회사를 옮겼다. 마치 무엇에 홀린듯이 유럽 전역을 방황하고 다녔던 독일의 작가 클라이스트처럼 나는 이 회사, 저 회사를 바꾸면서 살아왔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건 결국 내가 인생에서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모든 회사에서 맡은 일은 해냈지만, 항상 일반 직원에서 관리직으로 올라가게 되면 벽을 느꼈다. 관리직으로 올라가면 능력 뿐만 아니라 사내 정치의 능력이 그 다음 단계로 가기 위한 필요조건이었기 때문이다. 솔직히 말하면, 그 사내정치라는 것. 수천 마리의 원숭이들이 줄에 매달려서 바로 자기 위에 매달린 원숭이에게 Ass-Kissing을 해야 하는 그 구조를 나는 극단적으로 혐오했다.
나는 그런 의미에서는 아직도 한국사회에서 어른들이 말하듯이 "철이 들지"는 않았다. 위계에 대한 나의 혐오는 아마도 죽어도 사라지지 않을 것이고, 죽을 때까지 "철들지" 못할 것 같다. 어쩌면 이런 위계에 대한 혐오를 고치라고 신이 나를 전세계에서 위계에 대한 압력이 가장 심한 이 나라에 태어나게 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나는 이번 생애에도 교훈을 배우지 못하고 낙제한 셈이다.
어쨌든 나의 그런 성향 때문에 나는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는 일을 하기를 갈망했다. 그리고 아마존 출판에서 그 일을 찾았다고 생각한다. 아마존 출판대행은 내가 평생에 관심을 가졌던 모든 분야가 섞여 있는 일이다.
1. 영어로 된 책과 번역에 대한 관심: 중학생 때부터 영어로 된 각종 소설과 다양한 판본의 영문 성경을 찾기 위해 헌 책방을 돌아다녔다. 번역이론에 대한 시중에 나온 거의 모든 책을 닥치는 대로 읽었다.
2. 문과 출신으로서는 괴이할 정도로 nerdy한 응용 소프트웨어에 대한 정열: 윈도우 98이 출시되었을 때, 나는 다음 날 아침 유럽으로 출장을 가야하는데도, 택배로 CD를 받아서 새벽까지 새로운 윈도우 버전을 컴퓨터에 깔고 있었다. 아내에게는 출장 준비 때문에 야근한다고 거짓말을 하고서.. 글을 쓰기 위한 소프트웨어를 하도 많이 테스트해봐서 나중에는 책쓰기를 위한 소프트웨어에 관한 책을 썼을 정도였다.
3. 아무런 실체적인 결과가 없지만 기록에 남기기 위해서 해야 하는 무의미한 일에 대한 혐오: 높은 자리에 있는 어떤 인간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해야 하는 문서 작업. 거리를 깨끗하게 하는 청소부들의 일에 비교하면 실질적인 가치는 100분의 1도 안되는, 어린 왕자에 등장하는 사업가가 별의 숫자를 장부에 적는 것과 비슷한 공허한 일들에 대한 혐오.
이 모든 분야에 대한 나의 관심을 결합하고, 내가 싫어하는 일과는 정반대의 성격을 갖고 있기 때문에 나는 아마존 출판대행업을 좋아한다.
- 한글 원고를 받아서 영어로 옮겨야 한다. 영어와 번역에 대한 흥미를 물릴 정도로 충족시킨다.
- 종이책을 만들기 위해서는 Affinity Publisher라는 편집 소프트웨어를 사용하고, 전자책을 만들기 위해서는 Atticus라는 전자책 편집 프로그램을 사용한다. 그 밖에도 원고에 들어가 있는 사진을 개선하기 위해서 다양한 사이트를 이용한다. 다양한 소프트웨어를 사용하는 것을 좋아하는 나의 성향을 만족시킬 수 있다.
- 마지막으로 이 일을 하고 나면, 실제로 인쇄되어 누군가의 손에 들어가 읽힐 수 있는 책이 만들어진다. 전자책 역시 하나의 화일로 전 세계의 독자들에게 읽힐 수 있다. 하루 종일 앉아서 (내가 세상에서 가장 극혐하는) 아래 한글 프로그램으로 작성해서 올리면, 높은 자리에 앉아 있는 인간이 한번 보고 그 후에는 아무 의미도 없는 쓰레기가 되는 보고서를 만드는 작업과는 비교할 수가 없는 구체적인 결과물이 생기는 것이다.
나는 가끔 생각한다. 내가 하는 아마존 출판대행 서비스에 대한 수요가 많아서, 이 일만 해도 먹고 살 수 있다면, (지금처럼 다른 일들을 병행할 필요가 없다면), 정말로 좋을 것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