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 챗GPT가 나오자 마자 일주일 만에 쓰기 시작한 나는 한국에서는 챗GPT에 관해서는 소수에 속할 거라고 생각한다.
챗GPT가 나오자 마자 나는 내가 하고 있던 다양한 온라인 프로젝트들 - 주로 영어권 사용자들을 대상으로 한 제휴 마케팅과 컨텐츠 비즈니스- 에 이 새로운 인공지능을 많이 활용했다.
작년 12월말부터 금년 초까지 모든 매체는 챗GPT에 대해서 엄청난 글들을 쏟아냈다. 그러나 실제로 자신의 직업이나 개인생활에 챗GPT를 활용해서 엄청난 생산성의 향상을 본 사람들은 그렇게 많지 않다는 느낌이 들었다.
어떻게 보면 그게 당연한 것인데, 챗GPT는 기본적으로 영어 데이타를 기반으로 만든 인공지능이기 때문이다. 영어로 된 문서작업을 할 때는 정말로 기가 막힐 정도라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자주 있다. 그러나 한국어 데이타를 많이 배우지 않은 챗GPT에게 한국어로 된 작업을 시키면 실망감을 느낄 뿐이다.
챗GPT를 한국에서 가장 잘 활용하는 방법은 한국어를 영어로 번역하거나, 영어로 된 문서를 만들게 하는 것이다.
유료 4.0으로 업그레이드 된 챗GPT의 한영번역 능력은 경이롭다. 전문용어가 많이 들어가서 영어로 옮기는 데 최소한 서너시간은 걸리는 한글 유튜브 스크립트를 챗GPT가 30분안에 번역해내는 것을 보고 나는 생각했다. 한영번역가가 살 길은 이제 프롬프트 엔지너어가 되는 것 뿐이라고.
구글번역이나, 파파고도 챗GPT의 번역능력에는 못 미친다. 기존의 번역기는 문맥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네이버가 야심차게 인공지능을 발표했지만, 오히려 기대에 못미치는 성능 때문에 주가만 하락했다는 뉴스를 본 기억이 난다. 나는 안다. 아니 추측한다. 분명히 설익은 프로젝트를 조직 상단의 꼰대의 지시로 서둘러 발표했기 때문에 그런 사단이 났을 거라는 걸.
아프리카의 저임금 근로자한테 낮은 임금으로 엄청난 노동을 시켜서 데이타를 만들어 낼 정도의 무지막지한 자본가적 스케일이 없다면 인공지능은 만들 수 없다. 불쌍한 프로그래머 수 십명을 야근시켜서 만들어 낼 수 있는 결과물이 아니라는 거다.
어쨌든 미국인들이 자주 쓰는 단어인 level playing field, 즉 정말로 공평한 경쟁을 할 수 있는 토대를 인공지능은 만들어 줄 것이다.
글을 못써도, 그림을 못 그려도, 내가 좋은 아이디어만 있다면 인공지능에게 소설의 초안을 잡아달라고 할 수 있고, 블로그 포스팅을 써달라고 할 수도 있고, 동화책을 쓰게 할 수도 있고, 다양한 장르의 디자인을 시킬 수도 있다.
영국에서 증기기관차가 처음 나왔을 때, 기관차의 속도가 너무 빠르기 때문에 질식해서 죽을 수 있다고 경고하는 인간들이 있었다. 챗GPT, 미드저니 같은 인공지능에 대해서 반감을 갖거나, 무시하는 사람들은 결국 산업혁명 초기의 러다이트 같은 존재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