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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침산책 Oct 19. 2023

미래는 정해져 있는 건가?

아침산책 이야기 1

아내가 2012년에 뇌종양으로 죽었으니 이제 10년이 넘어버렸다.


아내가 죽고 나서 나는 사후세계, 양자물리학, 불교, 고독에 관한 책을 아마존에서 수 십 권 주문해서 읽었다. 답을 찾고 싶었기 때문이다.


왜 나보다 더 착하고, 친절하고, (시어머니만 빼고) 모든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았던 나의 아내가 먼저 가고, 냉소적이고, 염세적이고, 까칠한 나는 살아남았는지 답을 알고 싶었다.


물론 책에서 답을 찾는 것은 불가능하다. 인생은 책으로 설명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양자물리학에 대한 책을 많이 읽으면서 나는 아인슈타인이 제시한 시공연속체 (space and time continuum)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그리고 물리학자 브라이언 그린이 쓴 책에서 식빵 같은 우주에 대한 설명을 읽었다.


내가 기억하는 그린의 설명대로라면 우주는 거대한 식빵과 같은 것이다. 그 식빵이 곧 시공연속체다. 과거, 현재, 미래는 그저 한 덩어리의 식빵에 불과한 것이다. 하나의 벌레가 그 식빵을 야금야금 먹어 들어가면서 앞으로 전진한다. 그 벌레는 앞에 있는 식빵을 아직 먹지 않았기 때문에 그 존재에 대해서 모르지만 아직 벌레가 먹지 않은 식빵은 존재한다. 미래는 이미 존재하는 것이다. 아직 우리가 거기 도달하지 않았을 뿐이다.


이런 얘기를 하는 이유는 신혼 초에 아내와 보기 위해서 비디오 대여점에 가서 빌려온 영화가 기억나기 때문이다. 브래드 피트와 기네스 펠트로우가 등장하는 그 영화의 첫 장면에서 기네스 펠트로우 (영화에서는 브래드 피트의 아내)가 나오자마자 아내는 내게 말했다. "여보, 저 여자 죽을 것 같아." 나는 그 말을 듣자마자 소름이 끼쳤다. 나도 모르게. 물론 영화의 결말에서 기네스 펠트로우는 연쇄 살인마에게 목이 잘려 죽는다.


아내가 죽고 난 후, 나는 그 일을 기억했다. 영화에서처럼 나의 아내는 죽었다.


또 다른 기억이 있다. 아내가 야근을 하고, 나는 휴가를 내서 집에 있는 날이었다. 첫째 아들은 그때 다섯 살쯤이었는데, 나는 밥은 하기 귀찮아서, 인터넷에서 냉라면 끓이는 법을 찾아서 요리를 시작했다. 아들은 옆집 친구가 놀러 왔을 때 자랑하듯이 말을 했다. "우리 아빠가 냉라면 끓여준데." 아내와 비디오를 봤을 때처럼 소름이 끼쳤다. 왠지 내가 죽을 때까지 두 아들의 밥을 매일 차려야 하는 게 아닌가라는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내가 예감했던 그대로 아내는 죽고, 나는 10년 동안 두 아들의 식사를 챙겨야 했다.


미래가 정해져 있지 않다면, 아직 내가 먹지 않았지만 이미 존재하는 식빵이 저 앞에 있지 않다면, 어떻게 이런 미래에 대한 이상한 예감을 느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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