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덕전

낮과 밤의 궁- 기억되는 숨결

by moroberry

나는 일러스트레이터이다. 아니 다시 일러스트레이터가 되기로 했다. 혼돈 같았던 지난 작업들을 지나, 이제는 진심과 진실을 품고 그림을 그리기로 했다.

한복과 전통 장신구같은 화려한 색과 문양이 그저 예뻐보여서 한국문화를 좋아하기도 하지만, 역사를 바라보며 여러 감정들이 뒤엉키는 나를 보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역사학자는 아니므로 그저 일러스트레이터로서 바라보는 시각으로 그림을 그리고 글을 써본다.


첫번째, 나는 돈덕전을 다시 들여다보게 되었다. 어느시대였기에 우리의 전통적 기와나 한옥이 아닌, 서구식의 건물일까? 무슨 이야기가 있고 그곳에서의 시간은 어떤 시간이었을까..

돈덕전의 빨간 벽돌 사이로 스며든 화려함, 창문에 걸린 그림자, 그 아래를 스쳐간 사람들의 발걸음과 표정.

돈덕전의 섬세한 장식과 붉은 벽돌은 한눈에 아름답지만, 그화려함은 일제강점기전 외세의 압박과 내부의 분열 속에 위태롭게 서 있던 대한제국의 공기와는 어울리지 않았다. 시대는 변화하기를 요구하고 있었으나, 왕권 중심 체제는 시대의 흐름을 따라가지 못했다. 고종이 의지하던 명성황후를 보내고, 대한제국의 국제적 위상을 대외적으로 보여주기 위함이었을까? 형식과 체면을 중시하는 상징물로 보였다. 화려한 외관은 불안정한 나라를 외형으로 버티려는 마지막 몸부림 같았다. 1902년, 고종 즉위 40주년을 기념하는 칭경 예식을 위해 세워진 이 영빈관은, 외세의 압박 속에서 찬란한 겉모습으로 서 있었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건축물에서 묘한 씁쓸함을 읽는다.

그리고 명성황후가 생각이 났다. 한 인간으로서, 그저 작은 한 여인으로서 말이다.

그림으로 돈덕전을 담을 때, 처음엔 건물정도를 표현하고싶었다. 한국문화재이고, 아픈 역사가 있는 시대와 걸맞지 않는 이 돈덕전에 나는 한 여인을 상상하며 그림을 그려보기로 했다.

돈덕전은 실제로 회색 지붕이지만, 창살에는 선명한 민트색이 들어가 있다. 이 민트색 창살은 코랄색 벽돌과 강렬한 대비를 이루어, 한눈에 시선을 사로잡는다. 두 색이 주는 대비감은 거칠지 않고 오히려 조화롭다. 완성된 돈덕전의 인상은 마치 젊고 아름다운 여인이 지닌 기품과 생기, 그리고 숨겨진 결연함까지 담고 있는 듯 하다.


작은 체구였지만 가장 큰 그림을 그렸던 여인, 명성황후. 다음 글에서는 그 여인의 그림자와 숨결을 찾아가려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