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난 어린 명성황후

낮과 밤의 궁- 기억되는 숨결

by moroberry

돈덕전을 그리면서 명성황후가 생각이 났다. 왜일까…

대한제국 시대에 이렇게 아름다운 건축물을 왜 만들었을까?

역사적 기록은 어디서든 찾을 수 있지만, 나는 일러스트레이터로서, 그리고 한 인간으로서 바라보고 싶다.

작은 체구였지만 시대의 가장 큰 무게를 지고 살아야 했던 여인, 명성황후.


1851년, 여흥 민씨 가문에서 태어난 그녀는 여성이었음에도 아버지로부터 글을 배우며 철학과 가치관을 접했다. 그러나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여의며 짧은 보호와 긴 결핍 속에서 성장해야했고, 그 결핍은 그녀를 오히려 단단하게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열다섯 살에 국모의 자리에 오른 순간, 또래 소녀들과는 반강제적으로 다른 선택을 해야만 했을지도 모른다. 그녀에게는 따뜻한 감정보다 냉철한 판단력과 날카로운 감각이 먼저 요구되었을테니까.

어린 명성황후는 빛과 그림자를 동시에 지닌 인물이 아니었을까. 친정 세력을 가까이 두어 권력을 유지했지만, 이는 또 다른 분열을 낳았다. 외세의 압박 속에서 러시아와 손을 잡기도 했으나, 사실 그녀가 걸을 수 있는 길은 처음부터 좁고 험난했다. 조선의 500년 전통은 무너져 가고, ‘개화가 나라를 망친다’는 환상은 오히려 쇠퇴를 가속화했다. 다만, 흔들리는 조선을 일본의 세력아래 두는것만은 받아들일 수 없었던것이다.


일본의 가장 큰 장애물이었던 그녀는 을미사변으로 비극적인 죽음을 맞았다. 그녀의 부재는 곧 나라의 균형을 무너뜨렸다. 명성황후는 조선 말기의 중심축이었고, 그 무게를 끝까지 감당했던 작은 여인이었다. 그 비극적인 죽음 앞에서 나는 가슴이 아프다. 감히 조선의 국모를...


그러나 나는 한 인간으로서 그녀를 ‘국모’라는 상징으로만 바라보진 않는다. 화려한 장신구보다 고독이, 위엄보다 결연함이 먼저 보이는 얼굴. 두려움과 용기를 동시에 품었던 한 사람의 얼굴로 바라본다.


명성황후가 죽고 난 뒤, 고종은 즉위 40주년을 기념하며 새로운 영빈관, 돈덕전을 세운다. 화려한 붉은 벽돌과 서양식 건축 양식은 불안정한 현실과는 너무도 어긋나 보인다. 그러나 어쩌면 그것은, 무너져가는 나라를 화려한 외관으로라도 버티려 했던 마지막 몸부림이었을지 모른다.


다음 편에서는, 돈덕전의 낮 풍경을 이야기하려 한다.

아름다운 근대 건축물과, 그 뒤에 겹쳐 서 있는 여인의 잔향을 함께 담아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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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기억되는 숨결-명성황후 어린시절.png


작업 후기:

명성황후의 어린 시절을 상상하며 그린 작업입니다.

현재 전해지는 명성황후의 사진(추정)은 흐릿하고, 그것이 정말 그녀인지조차 확실하지 않습니다. 저는 그 흑백 사진을 바탕으로, 제 상상력을 덧붙여 명성황후의 ‘어린 시절의 얼굴’을 현대적으로 재구성해 보았습니다.


지적이고 총명해 보이지만, 두려움과 망설임을 함께 품은 소녀의 얼굴.

역사 기록에 따르면 명성황후는 어린 나이에 부모를 잃고 친척 집에서 자라며 학문과 철학을 배우며 성장했다고 합니다. 그 불안한 환경 속에서도 지적 호기심과 의지를 놓지 않았을 소녀의 내면을 떠올리며 그렸습니다.


이 작업은 ‘역사 속 인물의 초상’을 복원하려는 시도가 아닙니다. 기록의 빈틈 속에서, 작가의 상상으로 이어 붙여 보는 과정입니다. 2025년의 제가 바라본 한 인간으로서의 명성황후, 그리고 한 소녀의 초상을 그려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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