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비, 역사의 두 얼굴

돈덕전의 낮

by moroberry

돈덕전의 낮은 유난히 찬란하다. 붉은 벽돌 위로 햇살이 스며들고, 민트색 창살과 꽃들은 눈부시게 빛난다. 그러나 이 건축물 앞에 서면 나는 한 여인의 이름을 떠올리게 된다. 그녀는 죽은 뒤 ‘명성(明成)’이라는 존호를 받았다. 밝을 明, 이룰 成. 고종이 황후의 존엄을 되살리고, 국모로서 기리고자 붙인 이름이었다.


하지만 생전의 그녀는 ‘민비’였다.

열다섯의 어린 나이에 왕비로 간택된 소녀 민씨는 부모를 일찍 여의고 친척 집에서 자라며 배움을 이어갔다. 두려움과 단단함이 공존하는 인물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권력을 손에 쥔 이후, 민비는 또 다른 어두움을 드러냈다.


민비는 친정 세력, 민씨 외척들을 가까이 두어 권력을 나누었고, 이 과정에서 정국의 균형은 무너졌다. 권세를 이용해 재물을 축적하고, 백성들의 세금을 사치와 미신에 썼다는 비판은 끊이지 않았다. 실제로 궁궐에는 외국 가구와 값비싼 장식품들이 채워졌고, 미신과 점술에 기대어 국사를 논하는 일이 잦았다는 기록도 전해진다. ‘조선 재정의 70퍼센트를 탕진했다’는 말은 과장된 표현일 수 있지만, 기록에 남아 있는 70만냥, 오늘날 수천억 원에 해당하는 거액이 움직였다는 점은 분명하다. 심지어 ‘영남도적’이라 불린 조카의 횡포조차 외면했다는 사실은 그녀의 또 다른 어두운 그림자였다. 그런 모습이 과연 ‘명성’이라는 이름과 어울리는가.


그러나 객관적인 시선으로 볼 때, 민비는 일본의 침략을 막기 위해 청과 러시아, 서양 열강과 줄타기 외교를 펼친 정치가였다. 외세의 힘을 빌려서라도 나라를 지켜내려 했다는 점은 존중받아야 한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외세 의존 속에서 조선이 주체성을 잃었다는 비판 또한 피할 수 없다. 일본이 끝내 그녀를 제거하려 한 사실은, 일본을 견제하기 위해 활발히 외교정책을 펼치던 그녀가 일본에게 두려운 존재였음을 보여주는 것일지도 모른다.


돈덕전의 낮은 화사하지만, 그 화려함은 시대의 불안과는 맞지 않는다. 마치 민비의 삶과 닮아 있다.

사후에는 ‘명성’이라는 이름으로 국모의 존엄이 세워졌지만, 겉은 화려하지만 속은 어둡게 느껴진다. 그러나 그녀의 비극적인 죽음은 민심을 크게 동요시켰고, 항일 의병과 대한독립운동의 불씨로 이어졌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다만, 독립운동의 정신은 특정 인물의 희생만으로 설명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늘 일어서려 했던 민족의 힘에서 비롯된 것이라 생각한다.


돈덕전의 낮은 여전히 빛난다. 그러나 그 빛 속에서 드러나는 민비의 두 얼굴은, 역사가 우리에게 남긴 질문처럼 다가온다.

“권력을 쥔 어린 소녀는, 결국 무엇이 되었는가.”




14.기억되는 숨결-명성황후 사진.jpg
14.기억되는 숨결-명성황후.png



작업 후기:

민비를 저는 황후로서 그렸습니다. 실제 전해지는 사진을 참고하되, 현대적인 이미지로 재구성해 보았습니다.

돈덕전은 문화재로서 매우 아름답게 다가왔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그 시대의 불안함과 외세의 영향 속에서 겉모습의 화려함으로 이를 가리려 했던 모습이 민비와 닮아 있다고 느꼈습니다.

그 시대가 지닌 불안과 모순을 건축의 아름다움 속에서 마주하게 되었고, 저는 그 겹침을 그림 속에 담고 싶었습니다.



작가의 이전글내가 만난 어린 명성황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