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과 밤의 궁
눈 내리는 밤의 돈덕전을 상상해본다. 아름답다.
눈이라는 낭만적인 풍경과 돈덕전이라는 역사적 전각이 만나면 어떤 느낌일까.
어쩌면 돈덕전은 낮보다 밤이 더 어울리는 전각일지도 모른다. 붉은 벽돌은 어둠 속에서 깊은 그림자를 드리우고, 창살 사이로 흘러나오는 빛은 마치 또 다른 세계의 입구처럼 보인다. 낮의 화려함이 시대의 불안과 어울리지 않았다면, 밤의 돈덕전은 오히려 그 고요 속에서 새로운 이야기를 품고 있는 듯하다.
눈은 오래된 상처를 덮듯, 전각 위에 차분히 쌓인다.
그러나 그 하얀 표면은 단순히 과거를 감추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깊은 상처를 드러낸다.
밤의 어둠 속에서 잠시 멈추어 그 상처를 바라본다.
상처는 침묵처럼 남지만, 그 안에서 희미한 숨결이 되살아나는 듯하다.
그 숨결은 형상을 얻어, 핑크빛 날개를 펼치며 전각 앞 땅 위에 천천히 서는 환영 같은 용으로 다가온다.
나는 전통 민화의 모티브를 빌려온 이 용에 현대적 감각을 덧입혀, 새로운 모습으로 그려본다.
전통적으로 용은 권위와 수호의 상징이었지만, 이곳의 용은 더 이상 권력을 지키는 존재라기보다는, 상처 위에 다시 피어나는 생명력처럼 다가온다. 과거의 용이 힘과 위엄을 담았다면, 이 핑크빛 용은 포용과 성장, 그리고 새로운 세대의 감수성을 품고 있다. 그것은 오래된 전각에 사라지지 않는 희미한 숨결을 새로운 숨결로 바꾸며, 상처 속에서도 가능성을 찾아내려는 우리의 시선과 닮아 있다.
돈덕전의 밤은 여전히 어둡다. 지난 역사를 떠올리면 차갑고 긴 겨울 같다.
상처는 침묵처럼 남아 전각에 드리워져 있다.
돈덕전은 과거 상처를 담은 채 오늘을 서 있고, 새로운 숨결을 품은 용은 조용히 묻는다.
“우리는 과거의 상처를 어떻게 바라보고, 오늘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나는 돈덕전의 밤을 보며, 역사의 무게보다 지금 이 순간에 마음을 두게 된다.
그리고 그 속에서 다가올 새로운 숨결을 받아들이며, 나 또한 함께 숨쉬어본다.
작업 후기: 저는 현재 '낮과 밤의 궁'이라는주제로 한 시리즈를 꾸준히 그리고 있습니다.
세밀한 디테일을 담아내는 작업이라 시간이 오래 걸리지만, 그 과정 자체가 즐겁습니다.
돈덕전은 아름다움을 품고 있으면서도, 동시에 시대의 상처를 떠올리게 하는 전각이었습니다.
저는 그 상처 위에 새로운 숨결을 상징하는 핑크빛 용을 그려 넣음으로써, 과거의 어둠을 안고 있으면서도 새로운 빛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이 교차하는 그림으로 표현하고 싶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