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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과 May 15. 2021

돈키호테를 죽인 사나이

철의 시대에잊혀진기사도


 고다르는 나는 영화를 통하지 않고서는 삶을 볼 수 없다고 말했다. 영화에 평생을 헌신하고 살아간 한 사람의 고백 같지만, 사실 대부분 우리들(관객)들도 다를 바가 없을 것이다. 우리들의 신념과 가치관 속에 영화가 차지하고 있는 비율은 얼마 정도 될까? 아마 영화에 대한 특별한 마니아가 아니더라도, 차지하고 있는 크기들은 어마어마할 것이다. 영화가 가진 이미지의 힘과 영향력은 너무나 커서 영화를 만든 이들이 크게 고심하지 않은 생각들과 신념들을 대충 던져놓기만 해도 관객들에게는 그 파급력이 너무나 크게 마련. 토비와 함께 영화를 촬영했던 사람들은 계속해서 영화 중간중간 네가 만든 무책임한 영화에 대해 언급한다. 그 영화가 얼마나 우리 삶을 망쳤고, 네가 만든 영화의 영향력에 대해 너는 어떻게 책임을 질 건지 끊임없이 추궁한다. 마치 테리 길리엄 감독은 아무렇게나 영화 산업을 벌려 놓은 할리우드와 돈과 명예와 허영들에 묶여 대책 없이 만들어진 영화들에게 쏟는 비난이 아닐까 싶기도 하고, 자기 자신을 향한 자조섞인 목소리이기도 한 것 같다. 


 다큐멘터리 공부를 하며 다큐멘터리에 나오는 주인공분들을 배우로 여기게 되었다. 카메라로 즉흥적으로 사람들을 훔쳐 담겠다는 일념, 빠른 속도와 순발력만이 중요하다 생각하며 공부를 할 쯔음, 카메라 앞에 선 모든 사람들은 연기를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책에 나온 단어에 깊은 동의를 보냈다. "사회적 배우".  다큐멘터리 주인공들은 일종의 연기를 하고 있는 사회적 배우인 것이다. 넓은 의미에서 우리는 직장, 가족, 어떤 모임, 심지어 sns에서까지 모두 일종의 연기를 하고 있는 셈이 아닐까. 연기한다는 개념이 희미해져 갔다.


  영화의 또 다른 주인공 돈키호테 하비에르 할아버지는 여느 평범한 마을에서 구두 수선공으로 살다가 토비의 제의에 의해 비전문 배우로서 즉흥적으로 연기를 하다 돈키호테로 살아가는 광인이 되어버린다. 자신에게 숨겨진 광기를 감추고 마을 사람들에게 인자한 할아버지로서 구두 수선공으로 살아가는 삶이 하비에르의 진짜 모습일지, 자신에게 있던 광기를 뽐내며 구두 수선공을 그만둔 돈키호테의 삶이 진짜일지, 어느 것이 삶이고 연기일지 우리는 구분할 수 없지 않을까.  토비(감독)가 할아버지에게 당신은 미쳤다고 소리치자 할아버지는 기뻐하며 말한다. 한번 더 말해주지 않을래? 내가 미쳤다고. 나의 광기에 대해 칭찬해달라고.


 이 영화는 이런 광기가 가득하다. 도대체 영화에서 꿈과 현실, 과거와 현재 미래, 연기와 비연기 그 어느 것도 마지막에 구분이 가질 않는다. 마치 감독 자체가 돈키호테가 되어 미쳐가는 과정을 그린 영화가 아닐까 싶다. 그럼에도 이 영화를 끝까지 보게 되는 사람들은 이미 돈키호테의 유전자가 있고, 돈키호테의 삶에 동의를 보낸 관객들일 수도 있다.  분명 할리우드 산업의 한 복판에 있던 감독이자, 노년의 할아버지가 마지막까지 이런 광기 어린 영화를 만들었다는 것에 대해 존경을 표한다. 결국 마지막에 함께 미쳐(?) 가버리는 토비처럼, 우리는 영화를 보며 점점 광인이 되어가는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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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의 오프닝은 이러한 모습들과 어울리게 "마침내 완성되다" 라는 크레딧으로 시작한다. (듣기로는 우여곡절 끝에 30년만에 완성된 영화라고 한다)


풍차가 괴물로 보이는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게 느껴지는 영화의 마지막쯔음.



철의 시대에 잊혀진 기사도를 다시 세우려는 광인들

모험을 떠나는 기사는 천천히 거닐고

방랑하며 찾는다 절대 뒤따르지 않아

(영화 속 하비에르의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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