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연해지는 과정
아주 어릴 때, 산등성이에 걸린 구름을 바라보면 늘 그곳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저 하얗게 뭉게구름처럼 펼쳐진 곳은 어떤 곳일까. 그곳에 닿는다면 무엇이 있을까. 하는 호기심과 상상들, 구름 속에 들어가는 일이 환상처럼 오랜 시간 느껴졌다. 그리고 언제였을까 등산을 하며 안갯속인지 구름 속인지 모르는 곳으로 들어갔을 때 느꼈다. 내 상상과 다르구나.
그렇게 내가 상상한 세계가 현실과 다르다는 것을 마주치며 어른이 되어가는 듯싶었다. 작게 상상 속 여행지부터 시작해서, 사랑과 인생까지 모든 것이 내가 꿈꾸는 것과 다르다는 것을 알아가는 것은 마치 뭉게구름 속으로 들어가 투명한 수증기들을 마주하는 것과 비슷했다.
영화의 주인공 율리에는 끊임없이 구름 속이 궁금한 듯, 직업을 옮겨가며 사랑을 옮겨가며 인생을 마주한다. 별 것이 없는 수증기를 마주하더라도 몇 번이고 다시 또 다른 구름 속으로 율리에는 찾아간다. 마치 그 구름 속을 찾아가는 여정 자체가 삶의 목적이듯 젊음을 바쳐 구름을 찾아간다. 꿈꾸던 것과 다르게 펼쳐지던 에밀리의 세계에 암으로 투병하는 전 남자 친구는 에밀리에게 마지막이 담긴 말들과 사랑으로 선물을 한다. 네가 얼마나 멋진 사람인지, 나의 어린 시절의 기억이 얼마나 선명하고 평생에 영향을 미쳤는지, 평생 멋진 구름처럼 느껴지던 곳이 얼마나 볼품없는 곳인지,
작은 자전거 하나를 타기 위해서 무릎에 몇 번의 멍과 상처들이 아물어야 하는 것처럼 인생이라는 것을 탄다는 것은 평생에 멍이 들어야 하는 행위인지, 더 이상 멍들 곳이 없어진 것 같은 율리에는 이제야 자전거를 타는 소녀처럼 차분히 앉아 내가 감당해야 하는 하루의 일들을 해낸다. 다른 사람들을 차분히 바라보고 일상의 노동을 시작하는 율리에, 영화 현장에서 어떤 여배우에게 무작정 눈물을 흘리라는 감독의 연기 지도보다 율리에가 스틸컷을 찍으며 여배우에게 건네는 대화가 여배우의 더 깊은 감정을 끌어낸다. 이제 의연하게 인생을 타게 되는 것일까.
예술가는 얼마나 자신의 은밀하고 솔직한 이야기를 펼쳐야 하는지, 요아킴 감독은 쉬지 않고 자신의 이야기들을 속삭이며 인생에 대해 속삭인다. 우리에게 의연해지는 날은 올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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