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는 어른이 된다
어릴 적 춘천에서 교회를 다녔었을 때의 기억이다. 그땐 율동과 노래가 대중문화와 비슷하게 세련되게 표출되는 공간이기도 했었다. 이름에 '걸' 자가 들어가는 선생님이 계셨는데 애석하게도 우리는 선생님을 걸레라고 놀렸던 것 같다. 털털했던 선생님께선 80년대 잡지 모델처럼 큰 통 청바지에 통기타를 매곤 우리들(아이들)과 함께 노래를 자주 부르곤 했다. 그날도 힘찬 율동과 함께 선생님이 앞에서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는 중이었다. 나는 갑자기 앞으로 뛰쳐나가 손을 앞으로 바닥에 짚고 무릎을 꿇은 후, 물개 흉내를 내며 고개를 좌우로 반원을 그리며 왔다 갔다 했다. 아마 그때 나는 물개가 되었던 것 같다. 다행인 건, 물개가 된 나를 아무도 말리지 않았다. 덕분에 무사히 그 노래가 끝날 때까지 나는 물개로서의 일을 마치고 자리로 돌아갔던 것 같다.
외할머니댁이 부산이어서 춘천에서 부산까지 가는 길은 참으로 멀었다. 옛날 지도책을 보며 주변 사람들에게 길을 물어가며 찾는 부지런한 부모님 뒤에 앉아선 교회에서 배웠던 노래를 목청껏 불렀었다. 아마도 부모님은 어린 아이가 아무 생각 없이 즐겁게 부른 것이라고 생각하실 것 같다. 실은 나는 안전한 여정을 위해 내 나름의 노력을 했었었다. 좁은 차 뒷좌석에 누워서 멍하니 있다 보면 아버지가 브레이크를 밟을 때 마다 차 사고가 날 것 같은 비극적인 생각이 끊이지 않는 것이다. 그럴 때면 잠을 들지 않기 위해서도 그랬고 운전하는 아빠에게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기 위해 일부러 목청껏 노래를 불렀던 것 같다. 사고는 없었고 노래를 부르다 잠들면 부산에 무사히 도착했었다.
그렇게 할머니 집에 무사히 도착하고 나면, 뒤늦게 새벽에 잠이 깬 나는 깜깜한 어둠 속에서 문득 아빠 엄마 코에 손을 얹어 호흡이 나오는지 자주 확인하곤 했다. 가만히 숨소리가 멈추지 않은 것을 확인한 후에 다시 잠이 들곤 했었다.
영화 속 주인공 아이에게 꿈에서인지 환상에서일까 나무 몬스터가 찾아온다. 몬스터는 아이를 불러선 우화 같은 이야기를 하나씩 들려준다. 그리곤 마지막에는 너의 이야기를 들려주어야 한다고 말한다. 몬스터는 아이가 이해할 수 없을 법한 세상의 모순과 아픔이 들어있는 괴랄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렇지만 실은 우리가 유년시절에 온몸으로 인지하고 있는 이야기들, 나무 몬스터와 함께 이러한 이야기를 들으며 현실에서 아이의 감정은 과잉되기도 하고 집안의 물건을 부수기도 하고, 친구를 때리기도 하는 실수를 저지른다. 그럴 때마다 아이 곁에 있는 주변 어른들의 표정이 클로즈업된다. 저 안 혼내요?라고 겁에 질린 아이를 향해 어른들은 처연한 표정으로 " 혼내서 뭐하겠니 "라는 알쏭달쏭한 말만 남긴다.
결국 몬스터는 마지막 이야기를 마친 후, 아이에게 너의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요구한다. 속마음을 보이려 하지 않는 아이를 향해 몬스터는 매섭게 "콜"을 한다. 이제 너도 이야기를 들려줄 차례야, 아이는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게 될까.
아이는 어떻게 어른이 되는지 우리는 설명할 수 없다. 그 수많았던 기억들을 망각한 어른들에겐 아이들은 추상적인 존재이다. 그러니 대부분 학교에는 아이의 시절이 없었던 어른과, 어른이 되지 않을 것 같은 아이들만 있으니 우리가 겪은 교실들은 부조화스럽다. 물개가 되었었던, 부모의 코에 손가락을 가져가 호흡을 확인했던, 처음으로 욕을 내뱉으며 이상한 감정을 느꼈던 어른이 되어가는 길 가운데서 잃어버린 기억이 떠오르는 영화이다.
"혼내서 뭐하겠니, 나는 네가 어른이 되는 과정을 알 수가 없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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