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양과 Feb 15. 2019

밀리언 달러 베이비

곱게 나이 든 영화

 탄자니아에서 해외 봉사단원으로 지낸 적이 있었다. 비슷한 시기에 나이가 많으신 할아버지 선생님도 봉사단원으로 오셨었다. 나이 때와 상황이 달라 단원을 부르는 명칭은 달랐지만 실제론 하는 일은 동일했다. 이렇게 느지막이 나이 드셔서 해외봉사를 오시는 경우가 꽤 있었는데 대부분 어느 국가든 시니어 분들과 젊은 단원들 간의 세대 간의 갈등이 심했다. 그런데 나와 같은 동네에서 일하셨던 선생님은 조금 달랐다. 탄자니아 봉사 단원 모두가 이구동성으로 이 분은 정말 선생님이시라며 극진히(?) 다들 선생님을 모셨던 것 같다. 눈가에 깊은 주름이 파이고 머리가 새하얗게 되신 선생님 앞에선 예의를 늘 차리게 되지만 불편함 감정을 느꼈던 적은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이따금씩 선생님에게 가 전래동화의 옛 어른에게 배움을 받는 것 마냥, 인생의 어려운 일들에 대해 결혼이나 죽음, 나이 들어감에 대해서 묻곤 했다. 


 이 영화는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이 70세가 넘어서 만든 영화이다. 본인이 배우이자 감독으로 연출했으며 일부 음악까지 직접 작곡하고 촬영에도 깊게 개입한 이 영화는 젊은 사람들에게서 느낄 수 있는 화려함이나 부산스러운 느낌이 없다. 그저 묵묵히 일흔이 넘는 노인이 젊은이들에게 잔잔하게 이야기를 건네는 느낌이다. 그런데 이 노인의 이야기가 지루하거나 고리타분하지 않다. 오히려 나이 든 사람만이 부릴 수 있는 멋이 한 껏 느껴진다. 영화는 짜릿하고 롤러코스터 같은 감정선을 특별히 그리지는 않는다. 하지만 영화가 끝나면 젊은 영화에서 느낄 수 없는 이질적인 감정이 느껴진다.


이스트우드 감독만이 해낼 수 있는 연기


 영화의 주인공인 복싱 선수는 짧은 기간에 챔피언전에 도전하는 최고의 영예의 순간에 올라간다. 하지만 시합 중 불의의 사고로 중환자실로 실려가게 된다. 인생의 최고의 순간에 늘 이면에 도사리고 있는 최악의 순간. 최고로 좋은 순간에 늘 최악의 순간이 함께 있다는 것은 사실, 삶의 이면엔 죽음이 있다는 삶에 대한 기본적인 통찰과도 같다. 젊은 시절엔 최고의 순간만이 있을 것 같아 자주 놓치고 사는 이 사실을 그저 노인들은 더 자주 겪고 잘 알 뿐인 것이다. 아주 이 단순한 인생의 모순을 자신의 인생을 빌려 담담하게 들려주고 있다. 그래서 인터뷰어들이 물었다. 도대체 당신은 이 할리우드 영화 산업계에서 어떤 연유로 이런 인생의 통찰을 얻으셨습니까? 이스트우드는 그저, 오래 살면 알게 되는 것뿐이라고 말한다.


 누군가는 오래 살며 삶의 통찰을 얻어가고, 누군가는 오래 살며 삶의 통찰이 빚을 바란다. 그렇기에 곱게 나이 든다는 것, 인생의 선배로서 누군가에게 귀감이 된다는 것은 그저 삶과 죽음을 오랫동안 관조한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영예가 아닐까 싶다. 어르신 선생님은 봉사 일정을 마치고 먼저 귀국을 하셨었다. 귀국을 앞두고 밥을 잘 안 챙겨먹는 내게 1주일 넘게 본인의 집으로 데려와 밥을 해 먹이셨다. 옆에서 장조림 담그는 법이라도 배우라며 작은 잔소리를 해주셨었다. 


 Copyright 2019.양과.All right reserved.

매거진의 이전글 몬스터 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