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능이 나쁜 번역기

by 날다람

마음을 말로 번역하는 게 힘들다면 믿을 사람이 있을까. 내 번역기는 고물 매킨토시라서. 마음을 말로 변환시키는 데 꼬박 하루가 걸린다. 일단 나조차도 몰라서 손톱 밑 살이 시큰해질 때까지 매듭을 끌러봐야 조금 알게 되니까.


가지고 놀던 슬라임에 싫증이 나서, 버리기 직전에 이리저리 뭉치면 색깔이 이상해진다. 사람들과 대화할 때 내 마음이 이렇다. 뭔가 복잡한데, 이상한데, 뭐라고 말해야 될지 모르겠다. 뻥긋뻥긋 잘만 속 얘기를 하는 사람들을 보면 신기하다. 말할 때 과연 안전한 말인지를 생각하다 보면 말할 타이밍은 저 멀리 멀어져 가던데.


그래서 쉬운 길을 택했다. 그냥 가만히 있어야겠다. 굳이 얘기하려고 애쓰지 말아야지. 언제나 수긍하고 싫은 소리 하지 않는 포지션이 편해서 그렇게 살아왔는데, 사람들과 헤어지고 나면 그제야 내 생각이 불쑥 튀어나오더라. 번역이 다 끝난 것이다. 뒤늦게 ‘그러지 말았어야지.’하고 울컥울컥 솟아오르더라고.


사람들이 말을 할 때면 머리 위로 말풍선이 두둥실 떠오른다. 떠오른 말풍선은 5초 뒤에 사라진다. 나는 대화의 말풍선이 카카오톡처럼 대화방에 오래도록 남아있기를 바랐다. 붙잡지 못한 말풍선이 걷잡을 수 없이 불어나면, 나는 그 자리에 있어도 없는 것 같았다.


누군가에겐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좋은 친구였으나, 정작 내 안은 남의 이야기로 가득 차서 미칠 지경이었다. 전국 쓰레기를 인천 쓰레기 매립지로 들고 오면 인천 쓰레기는 어디로 가야 하나. 그 짝이다. 내 생각은 시큼하고 썩은 내가 난다.


사회성이 없는 어른이란 이런 거구나. 나를 설명할 자신이 없다. 얘기를 않는 것은 이 자리에 흥미가 없어서가 아니라 정말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서라고. 밥 먹는 속도는 맞출 수 있지만 생각의 속도는 맞출 수 없는 것 같아.


오은영 선생님을 붙잡고 하소연하고 싶다. 우리 애는 왜 결함이 있는 건지, 유년기의 어떤 결핍이 애를 이 지경으로 만들었는지에 대해. 이미 답을 알고 있지 않냐고 되묻는다면 이렇게 답할 것 같다. 어릴 적 종종, 때때로, 자주, 혼자였다고.


그때의 일은 선명하지 않지만. 혼자여도 자존심은 있어서 최대한 자연스럽게 있으려 노력했다. 쉬는 시간이면 붙박이처럼 자리에 앉아 노트에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린다. 있어도 없는 사람. 심지어는 나조차도 그렇게 느끼는 게 편했다. 힘들어도 내 생각을 뭉쳐서 삼킨다. 감정은 음미하면 할수록 비참해지니까. 그래서 바라던 대로 희미해졌다. 내 번역기는 살기 위해 망가졌다.


잘 묻어놨다고 생각했는데.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묻어두었던 열두 살의 나, 열네 살의 나, 열일곱 살의 내가 발목을 꼭 붙들고 있다. 존재했지만 존재한 적 없는. 차갑고 축축하고 억센 손들.


이미 지나간 일 앞에서 할 수 있는 일은 글로 줄줄줄 써 내려가는 것뿐. 말보다 글이 편하다. 글을 잘 써서도 아니고 내 마음의 지랄맞은 시차를 묵묵히 들어줄 독자가 나뿐이라서. 내 글을 보고 비로소 나를 이해한다. 그게 위로가 된다. 그래서 글을 쓴다.


쓰다 보면 언젠가 나를 용서하고 발목을 놓아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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