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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사가 Jan 21. 2022

나도 다시, 피아노

100일 글쓰기 - 3


몇 달 쉬었던 피아노 레슨을 다시 시작했다. 글도  쓰고 피아노도 치고, 한량 사대부의 삶이다. 100년 전만 해도 여자의 몸으론 꿈도 못 꾸었을 텐데 좋은 시절에 산다.

성인이 되곤 재작년 겨울에 첫 레슨을 받았다. 어릴 때 7년 정도 배운 덕에 악보는 볼 수 있지만 나이가 들어 그런가 눈과 손의 협응이 쉽지 않았다. 연주하고 싶은 곡들은 많고 귀도 고급이 되었는데 손은 안 움직이니 괴로움이 배가 됐다. 목마른 자가 샘 파는 격으로 집 근처 성인 피아노 학원을 찾았다.

칠 수 있는 곡을 가져오라 해 악보를 들고 갔다. 선생님의 "한번 볼까요?"라는 말이 어찌나 떨리던지. 악보를 펴고 손을 건반에 올리는데 손끝이 긴장으로 얼어붙었다. 한 장을 다 쳤는데 "좀 더 볼게요." 하신다. 어디까지 쳐야 되나, 지금은 어딜 치고 있나, 제대로 치고 있는 건가, 왜 더 치라고 하시나, 온갖 생각으로 속이 복잡했다. 제시부를 다 쳤을 쯤에야 멈췄다.

다행히 손이 잘 돌아가고 손 모양도 잘 잡혀 있단다. 앉은자리에서 주섬주섬 악보 몇 개를 꺼냈는데 흔쾌히 할 수 있다 하셔서 당장 그날부터 수업을 시작했다. 3개월쯤 지나니 신나게 건반을 두들겨대던 수준에서 지그시 누르는 데까지 발전했다. 강약도 포인트도 없이 와글거리기만 하던 곡이 노래처럼 들리는 찰나가 생겼다. 손목이 뻐근하고 팔뚝도 아팠지만 달라지는 음악이 재밌어 참 열심히 연습했다.

오랜만에 레슨을 가니 즐겁다. 집에서 혼자 치는 것과는 다른 기분이다. 새로운 곡의 첫마디부터 배울 게 가득이다. 뻐쓰가 아닌 버어-스 느낌으로 부드럽게 이어 끝음을 살짝 스치라 알려주신다. 듣는 그대로 바로 된다면 피아니스트가 됐겠지 생각하면서도 끝끝내 "오, 지금 좋아요."라는 말을 들을 때까지 다.

오늘부터 만들어 갈 곡은 쇼팽의 이별의 왈츠다. 워낙 유명하고 좋은 곡이라 잘 치긴 어렵지만, 창문을 열어도 동네 사람들이 듣기에 거북하지 않을 만큼은 됐으면 좋겠다.


레슨 받기 전 쳤던 영상이다. 100일 글쓰기가 끝나기 전 어느 날, 조금은 나아진 영상을 올리는 게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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