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가 속한 클래식 감상 모임에서 다음주 화요일 정기연주회가 있습니다. 프로그램북 작성을 부탁받아 오늘 썼는데요, 100일 글쓰기의 80일차를 이것으로 대신합니다.
1. 쇼팽 왈츠 A minor 19번 - 쇼팽 사후에 발견된 왈츠 19번은 단순하지만 쇼팽의 우수어린 감성을 듬뿍 느낄 수 있는 아름다운 곡입니다. 쇼팽의 왈츠들은 크지 않은 소품 형식을 띄고 있지만, 슈만이 “쇼팽의 왈츠에 맞춰 춤을 춰야 한다면 상대의 절반 이상이 백작 부인이어야 할 것이다”라고 말할 정도로 우아하고 고귀한 느낌을 지니고 있습니다. 유작인 19번 역시 그러한 분위기를 잘 보여주고 있는 작품입니다.
2. 쇼팽 녹턴 E flat major op.9-2 - 쇼팽의 녹턴 하면 가장 먼저 떠올릴 수 있는 곡이 아닐까 싶습니다. 왼손의 반복된 리듬에 맞춰 노래하는 오른손의 멜로디가 우리에게 담담히 말을 건넵니다. 마지막에 도달하자 마음 속 깊숙이 감춰두었던 감정을 내보이고, 다시 잦아들며 이어지는 트릴에 마치 한 명의 인생을 엿 본 듯합니다. 어떻게 이런 곡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3. 마르티니 사랑의 기쁨 - 아마 언젠가 한번쯤은 들어보았을 법한 익숙한 곡입니다. 원곡은 가곡으로, 제목과 달리 변함없는 사랑을 맹세한 애인의 허무한 변심을 슬퍼하는 비련의 노래라 합니다. 평온하게 시작하는 앞부분과 달리 전조된 이후의 곡 진행이 비통한 느낌을 가져오는 듯 합니다.
4. 슈만 다비드동맹무곡 op.6-14 - 18곡으로 이루어진 피아노 연작집인 다비드동맹무곡의 14번째 곡입니다. 무곡이라 되어있지만 실제 무곡 형태라기보다는 슈만의 두 자아간 대화라고 보는 편이 더 좋을 듯 합니다. 이 곡은 조용하고 명상적이며 약간은 우울한 성격의 오이제비우스적인 음악으로 “아름답게 노래하면서”라는 제목이 붙어있습니다. 제목처럼 부드럽고 자연스럽게 노래하는 듯한 멜로디가 매우 인상적입니다.
5. 가곡 봄처녀, 님이 오시는지 - 이은상의 시조를 홍난파가 작곡한 봄처녀는 학창시절 가창 시험의 단골곡이었던 듯 합니다. 또한 박문호의 시에 김규환이 곡을 붙인 님이 오시는지도 귀에 익숙한 가곡입니다. 두 곡 모두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을법한 애수의 정서를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6. 그리그 서정적 소품 중 아리에타 op.12-1 - 북유럽의 차가운 햇빛이 짙푸른 북해 바다에 반사되어 반짝이는 풍경이 연상되는 아름다운 곡입니다. 처음 들었을 땐 슈만같기도 하지만, 서정적이고 낭만적인 선율 속에서 느껴지는 차가움과 정돈된 느낌은 노르웨이 출신 작곡가인 그리그의 작품에서만 만날 수 있는 감성이 아닌가 싶습니다.
7. 쇼팽 이별의 왈츠 A flat major op.69-1 - 쇼팽의 왈츠는 기본적으로 춤을 추기에 좋은 곡들이 드물고, 이 곡도 역시 그렇습니다. 마리아 보진스키와의 사고 같은 만남과 불 같은 사랑을 뒤로하고 파리로 돌아오는 아쉬움을 담은 이 곡은 69-2의 애절함과는 달리 사랑의 기쁜 순간들을 담고 있습니다. 재회의 기대감으로 마냥 슬프지만은 않은 곡이 된 듯 합니다. 여러분 기억 속 누군가와의 진한 첫만남을 상상하시면 감상이 배가 될 듯 합니다.
8.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3번 1악장 C major op.2-3 mov.1 - 베토벤의 다장조 소나타 3번입니다. 처음부터 3도 중음의 트릴로 시작하는 고난이도의 소나타로, 입시곡으로도 유명합니다. 웅장하고 화려한 느낌으로 베토벤 특유의 경쾌하며 자신 있는 분위기를 물씬 느낄 수 있습니다. 청중 입장에선 멜로디가 명확해 쉽게 들리지만 상당한 테크닉의 소유자가 아니라면 도전하기 어려운 곡입니다.
9. 쇼팽 폴로네이즈 A flat major, op.53 - 폴란드의 화려한 시대를 연상시키는 웅장하고 힘찬 구성으로, 영웅 폴로네이즈라는 이름으로 더욱 잘 알려져 있는 곡입니다. 쇼팽이 이런 곡을 작곡했다는 것이 믿기 않을 정도로, 쿵쾅거리는 발걸음으로 다가오는 용감한 군대를 상상하게 만듭니다. 하지만 와글거리는 음들 속에서도 뚜렷하게 들리는 멜로디는 역시 쇼팽이라는 생각이 들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