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바이러스로부터 우리를 보호하고 지켜줄 수 있는 힘은

코로나로 인해 생각하게 되는 우리네 정치와 믿음들

by 코알라맘

국민학교 2학년 때, 사람 좋던 할아버지 담임 선생님은 어느 날 종례 시간에 아이들에게 이런 질문을 하셨다. “야들아, 길에서 너거 아부지하고 옆집 아저씨하고 무슨 일인가 몰라도, 갑자기 막 큰 소리 내고 싸우고 있으면 너거들은 누구 편을 들어야 되노?” 아이들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아무도 대답을 하지 못했다. 나는 ‘누가 잘못했는지 먼저 물어봐야 되지 않을까?’ 하고 속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선생님은 “짜식들이 와 이래 답답하노. 당연히 너거 아부지 편을 들어야지. 일단 너거들은 너거 아부지 자식이니까 아부지 편을 드는 게 맞는 기라. 그다음에 싸움이 다 끝나거든 잘잘못을 가리고 혹시 너거 아부지가 잘못했거들랑 같이 옆집 아저씨한테 사과를 하면 되는 기라. 다들 알긋나?” 하셨다. 아이들은 학교를 마치고 빨리 집에 가고 싶은 마음에 모두 “예!” 하고 큰소리로 대답을 했다.

그해 겨울 대한민국 제14대 대통령 선거가 있었다. 후보들은 8번까지 있었지만 그때만 해도 1번 후보가 당연히 대통령이 되던 시절이었다. 그리고 우리 경상도에서만 대통령이 나오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우리 엄마가 난데없이 3번 대통령 후보의 선거 캠페인을 돕는 아르바이트를 한다고 했다. 대한민국에서 일이등 부자라던 그 후보의 선거 캠페인이 돈을 가장 많이 준다고 했다.

엄마는 투표일까지 일을 하고 늦게 집에 돌아왔다. 나는 엄마가 누구에게 투표를 했는지 아무도 없는 곳에서 조용히 물어보았다. 학교에서 투표는 비밀로 해야 하고 자신이 투표한 후보를 아무에게도 말해서는 안된다고 배웠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엄마는 내가 깜짝 놀랄 만큼 큰소리로 말했다. “야는 참 그걸 질문이라고 하고 있나. 당연히 1번 찍었지! 당연한 거 아이가.”

그다음 해 엄마는 암 판정을 받았고 3년 동안 2번의 수술을 받았다. 엄마가 자궁을 들어내는 첫 번째 수술을 하고 병원에 입원해 있었을 때, 가톨릭 신자였던 우리 이모들은 병실로 신부님을 모셔왔다. 그리고 무교인 (사월초파일에는 절에 가고 아버지가 가끔 접촉 사고 내면 어디서 부적을 사 와서 방에 붙이곤 하던) 엄마에게 병자 세례를 받게 했다. 그래서 우리 엄마는 ‘마리아’ 세례명을 가지게 되었다.

위까지 잘라내는 두 번째 수술을 받고도 병원에서 더 이상 방법이 없다며 그만 집에 돌아가라고 했을 때, 엄마는 몸무게 40킬로가 채 나가지 않아서 몸은 해골인데 배에만 복수가 차서 ET처럼 배만 볼록했다. 이모들은 이번에는 엄마를 어느 교회로 데리고 갔다. 장님이 눈을 뜨고 앉은뱅이가 걸음을 걷게 만드는 기적과 성령이 그곳에 있다고 하였다. 그 교회에서 밀가루를 사 와 반죽을 해서 엄마 배에 붙이면 복수가 빠질 거라고 했다.

그래서 평생 종교가 없던 우리 엄마는 가톨릭 세례를 받고 개신교 절차로 장례를 치렀다. 엄마의 영혼이 천국을 갔는지는 보지 못해서 알 수 없으나, 엄마의 육신이 땅에 묻히는 것은 내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 그리고 나는 투표를 할 수 있는 나이가 되어 내가 나고 자란 도시를 떠났다. 정치에는 별 관심도 없었지만 나를 낳아주고 키워주신 어른들과는 다른 후보에 표를 던졌다. 비싼 돈 처들여 서울 유학시켜놨더니만 전라도 내기 다 되었단 말 듣기 딱 좋았다.






지난번 ‘코로나로 인해 세워진 ‘우리’라는 장벽​’​ 글을 쓴 지 2주가 지났다. 그 보름 만에 우리가 사는 세상은 너무 큰 변화를 겪고 있다. 단 하나의 극적인 예로 이탈리아에서는 이천 명이 넘는 사람들이 죽었고, 전 세계는 국경을 봉쇄하고 사람들은 물건을 사재기하고 연일 주가는 폭락하고 있다. 다행히 한국은 이제 조금 안정세를 찾았지만, 호주 정부는 한국 여행을 금지하였다.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그들’이 만든 ‘우리’ 안에서 아직까지는 제일 안전하게 일상의 평화를 유지하며 지내고 있다. 인스타에 여행도 가고 매일 놀이터도 가고 즐거운 우리의 일상을 포스팅할 때마다, 마치 육첩방 남의 나라에서 혼자 쉽게 시를 쓴다던 윤동주 선생이 생각날 판이었다.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는 이 코로나 사태가 과학이나 의료에 앞서 자꾸 전 세계의 정치 문제로 보였다.


국민에 대한 개념 자체가 없는 나라가 있는가 하면, 국민을 최고로 생각하지만 최고의 국민을 더 최고로 생각하는 나라가 있다. 국민보다 국가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나라가 있는가 하면, 작은 국가지만 국민들이 더 큰 힘을 낼 수 있는 우리나라가 있다. 코로나로 전쟁 중인 나라들 중 어느 나라가 좋은 나라인가 나는 혼자서 점수를 매겨본다.



우리는 호주에 살고 있는 외국인으로서 보수파인 현 호주 정부를 지지하지 않지만, (사실 지지하고 말 것도 없다. 우린 호주 참정권이 없으니까!) 어느 나라보다 빠르고 강력하게 중국발 비행기를 막고, 코로나 전쟁 시작도 전에 $2.4 billion (약 2조 원) 예산을 전 국민 의료보험에 증액하고, 국민들에게 실업 급여 예산도 충분히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는 단호한 말투의 현 호주 총리에게 현재까지 나는 가장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호주는 지금 코로나보다 휴지부터 시작된 물건 사재기 대란이 더 심각하긴 하다...)


만약 우리가 지지하는 사회적 약자와 외국인을 배려하는 노동당이 현 호주를 집권하고 있었다면, 아마도 그렇게 빨리 중국발 비행기를 막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코로나가 터졌을 때 한국처럼 빨리 기술력을 동원해서 확진자를 찾고 막는 일도 해내지 못했을 것이다. 역사에 ‘만약’은 없다지만 지난번 글에도 썼듯이 여러 가지 정황으로 미뤄볼 때, 호주는 중국 다음으로 제일 먼저 코로나 홍역을 치를 수도 있었을 가능성이 아주 높다.






이번 주 성남의 모 교회에서는 신도들에게 분무기로 입 가까이 소금물을 뿌리다가 50명 이상 집단 감염되는 사례가 나왔다. 한나라가 신천지로 한바탕 홍역을 치르고 있고, 전 국민이 그들을 때려잡겠다며 사냥을 하고 있는 이 시국에 말이다. 나는 뉴스를 보며 사람들의 나약한 마음을 위해서, 그렇기에 더 강한 믿음이 필요한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했다.


우리는 7일 토요일 저녁에 사우스 멜버른에 있는 성당 미사를 보러 갔었다. 호주에서도 확진자가 다시 하나둘 나오던 시점이었고, 성당 입구에 성수가 담긴 그릇은 텅 비어있었다. 그래도 그때까지 멜버른은 2월 초 이후 확진자가 나오지 않았고, (사실 그날 오후 첫 확진자 케이스가 뉴스 속보로 나왔다.) 우리는 신부님이 나눠주신 성체를 모시고, 아이는 이마에 신부님께 축성을 받았다.


그다음 주에 멜버른에도 확진자가 속출하기 시작하면서 공개된 확진자 동선에 6일 오전 우리가 다니는 성당 바로 뒤편 마켓이 있었다. 우리 주임 신부님이 그 마켓 주변을 매일 운동 겸 산책을 다니신다던 말씀이 떠올랐다. 그리고 다음 주 우리는 미사를 가지 않았다. 나는 우리의 나약한 믿음을 위해서 또 기도한다.



아직 백신이 없는 이 바이러스로부터 우리를 보호하고 지켜줄 수 있는 것은 정치일까 믿음일까 운일까 운명일까. 정치라면 두 눈 부릅뜨고 지금 살아있는 우리가 똑똑히 지켜보고 판단해야 할 것이요, 눈에 보이지 않는 믿음이라면 그래도 인간인 우리는 믿는 수밖에 없지 않을까.

엄마로서 우리 아이와 우리 가족을 보호하고 지키려면 이럴 때일수록 더 잘 챙겨먹고 운동도 해야겠다. 몸 튼튼 마음 튼튼! 그리고 또 마음 튼튼 믿음 튼튼! 더 강하고 튼튼한 마음으로 우리 모두 더 잘 믿을 수 있기를. 신이 우리를 축복하기를. 부디 행운의 여신이 우리와 함께 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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