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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알라맘 Mar 04. 2020

코로나로 인해 세워진 ‘우리’라는 장벽

코로나로 인해 무너진 우리네 마음과 신념들

국민학교에 입학을 하고 ‘우리들은 1학년’ 교과서를 통해 제일 먼저 배운 것은 ‘나, 너, 우리’였다. 그중에서도 ‘우리’가 가장 중요하다고 배웠다. 우리 학교, 우리 선생님, 우리 동네, 우리나라, 특히 ‘우리나라’는 절대 저희 나라라고 낮춰 쓰면 안 된다고도 배웠다. 국민학교 1학년 때 일이었다.


그러나 나는 머리가 굵어지면서 ‘우리’라는 이름으로 정당한 것처럼 행해지는 세상의 폭력들이 참 싫었다. 전쟁의 잔인함, 정치의 공권력, 집단 이기주의, 사회 차별주의 등 인간들이 서로 편을 묶고 가르고 하면서 인지상정 혹은 최소한의 인간의 도리마저 저버리는 우리네 인간이 참 미웠다. 그런 우리라면 차라리 나와 너로 돌아가는 게 낫겠다 싶었다.


그러던 내가 아이를 낳고 나도 모르게 우리 아이, 우리 남편, 우리 가족, ‘우리’라는 말을 자꾸 쓰기 시작했다. 결혼을 하고도 남편이 외국인이다 보니 내가 남편을 부를 때도, 누군가에게 소개할 때도 주로 남편 이름을 사용했는데, 아이를 낳고는 남편을 지칭하는 말을 하거나 글을 쓸 때 자꾸 우리 남편, 우리 애 아빠 같은 표현이 튀어나왔다. 이제야 마치 나와 너가 우리가 된 것처럼. 그리고 한편으로 그런 내가 가끔 무서웠다.


전쟁기념관에 견학을 온 아이들을 보고 예전에 썼던 글






우리 가족은 우리나라에 살지 않는다. 나는 한국 국적을 가지고 있고, 남편은 이란 국적을 가지고 있다. 호주에서 태어난 우리 아이는 한국과 이란, 이중국적을 가지고 있고 호주 국민은 아니다. 우리 가족은 앞으로도 계속 호주에서 살기를 희망하고 그러기 위해 지금 노력 중이다. 하지만 아직은 우리 셋 중 누구도 호주 국민이 아니고, 따라서 우리 가족은 현재 아무도 우리나라에 살지 않는다.


지난 음력 설날을 전후로 시작된 코로나 사태에 전 세계에 비상이 걸렸다. 힘이 있는 나라들은 자국민을 구해오기 위해 서둘러 중국 우한에 전세기를 띄웠다. 그중에 당당히 대한민국 전세기도 있었고 뉴스를 보며 나는 괜스레 뿌듯했다. 그 과정까지 쭉 지켜보며 역시 한국인다운 빨리빨리 신속성과, 그래도 국민을 국민으로 생각하는 현 정부에도 믿음이 갔다.


2월 1일 세계에서 가장 힘이 센 나라 미국은 중국발 비행기를 모두 막겠다고 선전 포고했다. 그리고 다음날 호주도 같은 발표를 했다. 단, 호주 시민권자, 영주권자, 시민권자나 영주권자의 직계 가족, 법적인 배우자나 보호자에 한해서만 예외였다. 나는 호주 뉴스를 보고 깜짝 놀랐다. 바로 구글에 호주에 살고 있는 중국인 수와 인구 비율을 검색해보았다.






ABS(Australian Bureau of Statics) 2016년 통계에 따르면 호주 내 중국인 수는 120만여 명 인구 비율은 5.6%이다. 물론 미국 내 중국인 인구수가 훨씬 많기는 하지만 전체 인구수를 고려해보면 미국 내 중국인 비율은 1.5%에 지나지 않는다. 더욱이 호주에서 중국인은 영국인 다음으로 높은 이민자 수를 가지고 있으며, 1970년대 후반에야 백호주의(백인 이외의 인종, 특히 아시아인의 이민을 배척하였던 호주의 인종 차별주의) 정책이 폐지된 것을 고려하면 이는 엄청난 숫자였다.


멜버른 시내 한가운데는 당당하게 차이나 타운이 들어서 있고, 멜버른 어디에서도 트램을 타면 중국어를 쉽게 들을 수 있다. 우리의 음력 설날을 호주에서는 Chinese New Year라고 부르는데, 해마다 시내 곳곳에 홍등을 매달고 드래곤 댄스부터 시작하여 온갖 축제와 불꽃놀이를 한다. 덕분에 나도 매해 한국식은 아니지만 설날의 들뜬 기분을 중국인들과 같이 느끼기도 하였다.


멜버른은 교육의 도시로 유명하다. 어느 해 대학 졸업 시즌에 멜버른 대학 캠퍼스를 산책한 적이 있었는데, 학사모를 쓰고 졸업 사진을 찍고 있는 아이들 대부분이 동양인 얼굴을 하고 있었다. 호주에서 외국인이 대학 학사나 석사를 하기 위해서는 학비만 최소 억 단 위이다. 호주 자국민들은 거의 무료로 대학을 다닌다. 그래서 여기에 사는 이민자들은 호주에서 공부를 하고 싶으면 우선 영주권부터 따고, 자식 대학 보내고 싶으면 시민권을 꼭 따라고 말한다.


그런 호주가 중국인들을 하루아침에 막아버렸다. 더욱이 호주 내 학교들은 크리스마스부터 시작하여 1월 말까지 여름방학이었고, 중국에서 춘절을 쇠고 호주로 돌아오려던 유학생들이 무려 십오만 명 이상이나 되었는데 말이다. 중국 공항에서 마스크를 쓰고 호주 가는 비행기를 기다리는 중국인 유학생들의 사진이 연일 뉴스에 보도되었다. 그러나 호주 정부는 중국 우한에 전세기를 띄워 호주 시민권자만 안전하게 싣고 왔다. 그리고 호주 본토보다 인도네시아에 더 가까운 크리스마스 섬에 그들을 2주간 격리시켰다.


예전에 아시는 분이 호주로 신혼여행을 갔는데 공항에서 신발에 묻은 흙까지 털고 나서 입국을 할 수 있었다고 했다. 그래, 호주는 전염병에 취약하고 생태계 변화에 민감한 섬나라이다. 또한 최근에 호주 산불과 기후 변화로 환경 단체들의 시위가 끊이지 않고, 호주 총리 이하 정치권들도 그로 인해 큰 압박을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중국에 빗장을 건 후로 나도 모르게 내 마음속 빗장이 걸렸다. 호주인들의 마냥 순수해 보이는 프랜들리(friendly)한 미소가 더는 순수하고 친절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호주에서는 2월 6일 15번째 확진자를 마지막으로 (다이아몬드 프린세스 크루즈선을 제외하고) 2월 말까지 더는 코로나 바이러스 피해가 없었다. 한국에서 하루 수백 명씩 확진자가 늘어나던 지난주 비상시국에도 호주는 마냥 평화롭기만 하였다. 아, 이런 나라가 강대국인가, 이런 나라가 선진국인가, 하다못해 중국 일부 지역에서도 한국인 입국을 막고 있다는데, 우리나라는 왜 아직도 중국인을 막지 못하는 것일까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때마침 2월 27일 호주 아침 뉴스에 영국 왕실 자녀들이 다니는 영국 학교에 이탈리아 북부로 스키 여행을 다녀온 학생들이 있어서 학교가 문을 닫았다며 걱정하는 기사가 나왔다. 당시 코로나 확진자가 천명을 육박해가는 한국과, 그보다 실제 상황은 더 심각할 것이 분명한데도 정부가 진실을 말하지 않는 이란과, 호주에서 4년을 넘게 친하게 지내다 임신을 하고 얼마 전 자기 나라로 돌아간 엘레나가 살고 있는 이탈리아까지, 우리나라와 내 주변의 나라들은 이 난리통인데 영연방 호주는 영국 왕실을 먼저 걱정하고 있었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는 옛 속담에 나도 모르게 화가 났다.


같은 날 미국 대통령은 크루즈선을 제외하고 미국 본토에서 15명밖에 확진자가 나오지 않았다며 고개를 빳빳이 들고 연설을 했다. 공교롭게도 호주와 같은 숫자 15명이었다. 그리고 그전날 전 세계 주식 시장이 폭락을 하자 트럼프는 트위터에 자신에게 잘된 일이라며, Stock Market starting to look very good to me!라고 썼다. 취임식 연설부터 아메리칸 퍼스트!(American First)를 외치던 트럼프에게는 놀라운 일도 아니었다. 문제는 나도 모르게 그런 대통령이 좋은 대통령이고 그런 나라가 좋은 나라인가 하는 생각이 문득 드는 것이었다.







오늘 아침 아이의 아침 식사를 준비하는데 똥파리 한 마리가 식탁 위를 날아다니고 있었다. 아이를 낳기 전에는 파리가 집에 들어오면 좀 귀찮아도 창문을 열어 날아가도록 두었다. 하지만 오늘 아침에도 전 세계 뉴스는 무겁고 무서웠으며, 아이는 뭐를 달라는지 아기의자에 앉아 계속 보채는 와중에, 나는 바로 손에 잡히는 편지 봉투로 있는 힘껏 파리를 때려잡았다. 그것을 보고 아직 말을 하지 못하는 아이가 나를 향해 웃었다.

우리 아이를 위해 나는 어떤 엄마가 되어야 할까. 우리 가족의 건강과 안전을 위해 집에 들어온 똥파리는 살생해도 된다고 가르쳐야 할까. 그럼 밖에서 개미떼 행렬을 관찰하며 신기해하는 아이에게는 자연 관찰과 과학 탐구를 장려하는 엄마가 되어야 할까. 우리나라에 살지 않는 우리 가족은 우리가 아닌 이 나라 사람들을 계속 경계하고 조심하며 살아야 할까. 나는 지금 이 바이러스보다 이것으로 인해 내 마음속에 세워진 ‘우리’라는 장벽과, 동시에 무너지고 있는 우리네 마음과 신념이 더 두렵고 불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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