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팔 국내선은 연착이 기본이다. 운 좋게 30분 정도 가볍게 기다린 후, 경비행기에 오른다. 지정 좌석제가 아니니 포카라로 갈 때에는 반드시 오른쪽에 앉으라고 눈 따갑게 읽은 터라 잽싸게 오른쪽 창가에 앉고 보니 과연 정보통 대한민국 만세다. 오른쪽 좌석은 거의 한국 사람 차지다. 승무원이 조그만 솜뭉치를 주더니 귀마개란다. 승무원이 제자리에 앉기 전에 프로펠러 소리 요란한 경비행기가 이륙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드디어 구름 위로 설산들이 꿈처럼 펼쳐진다.
구름은 마치 바다 같다. 바다 위에 우뚝 솟아 햇빛을 받아 더욱 눈부신 설산들은 이미 이 세상 풍경이 아니다. 비행기 아래쪽 구름 사이로 살짝살짝 내려다 보이는 아찔한 협곡들과 기묘한 조화를 이루며 천상의 풍경을 선사한다. 왼쪽 좌석의 중국 젊은이들에게 양보해 주었던 5분을 제외하고 30분 내내 90도로 목을 꺾은 채 창밖으로 튀어 나가 구름과 설산 위를 날아다니다가 착륙했을 때에는 머리가 제자리로 돌아오지 않아 한참 애를 먹는다. 목 근육은 뻣뻣하고 벌어진 입도 다물어지지 않아 반쯤 얼빠진 표정으로 포카라에 도착한다.
공항에는 포터 겸 가이드, 서른네 살 눈이 예쁜 청년, 코글이 기다리고 있다. 대부분의 트레커가 나야풀에서 산행을 시작하는데 우리는 그곳을 지나 차로 갈 수 있는 제일 높은 곳, 시와이까지 지프를 타고 가기로 한다. 나이가 조금 많다고 빠득빠득 우기면서.
나야풀까지 한 시간. 그래도 이 구간은 포장도로가 더 많다. 나야풀을 지나고 나니 바위산을 깎아 만든 절벽길과 거친 산길이 이어진다. 마주 오는 차가 있음 어떻게 비껴갈까 걱정될 정도로 좁은 길은 어마무시한 비포장 도로다. 지프는 산사태로 아무렇게나 나뒹군 커다란 바위돌 위를 거침없이 달린다. 아래는 까마득한 절벽, 타이어 밑으로 우르르 흙이 쏟아져내리는 길도 개의치 않고, 20cm 깊이는 됨직한 물길도 물보라 하얗게 일으키며 덜컹덜컹 잘도 달린다.
만약 우기에 온다면 산사태로 길이 끊어지고 며칠씩 기다려야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단다. 10월, 11월에 트레킹을 해야 하는 이유다. 롤러코스터 타는 길보다 더 무서운 길을 한 시간 정도 달린 후, 이제부터 걸어야 한다. 드디어 본격적인 트레킹이다.
점심 먹고 세 시간 반 가량 천천히 걸어 해발 1340m, 뉴 브리지가 오늘의 목적지다. 조그만 마을을 벗어나니 깊은 계곡을 끼고 산의 무릎에서 허리께를 오르내리는 호젓한 길이 계속된다. 날씨는 솜털처럼 포근하고 하늘은 깨질 듯 파랗다. 히말라야 빙하가 녹아 내려오는 물살은 격하지만 더없이 맑다. 길에서 가끔 만나는 소와 염소의 눈은 그곳 사람들의 그것처럼 까맣고 순하다.
무시무시한 비포장 길에서 탈탈 흔들리며 무지막지한 먼지 때문에 마음까지 툴툴거렸는데 불과 몇 십분 후에 맞닥뜨린 단 공기와 대책 없이 안기고 싶은 히말라야의 넉넉한 품 속에서 완전한 벌거숭이가 되어버린다. 이곳에서라면 아무도 미워하지 않고 누구 손이라도 따뜻이 잡아 줄 수 있을 것 같다.
"이 거대하고 맑은 자연 속에서~~ 한갓 좁쌀만 한 인간들이~얼쑤" 병태가 갑자기 타령을 읊조린다. '으음 느끼는 게 있긴 있나 보군' 같은 마음이 되어준 것이 새삼 고맙다.
저절로 순한 양이 되어 놀며 쉬며 두 시간쯤 걸었는데 뉴브리지에 도착했단다. 코글이 우리의 등반실력을 기어가는 수준으로 얕잡아 봤나 보다. 어쨌든 한 시간 반이나 덜 걷게 되어 일단 기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