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갑이 넘었거나, 혹은 낼모레로 다가온 일곱 명의 할머니들이 렌터카로 프랑스를 일주하겠다는 생각부터 어쩌면 너무 무모했는지 모른다.
그 무리의 중심엔 남편과 이런 여행 경험이 많다고 엄청 설쳐 댄 내가 있었다. 몇 달 전부터 항공편을 예약하고, 일정을 조율하고, 렌터카를 알아보면서, ‘역시 난 타고났어. 젊었을 때부터 이런 일을 파고들었다면 지금쯤
떼 부자가 되어 있을 텐데..’ 세상에서 제일 잘난 듯 신이 났었다.
9박 11일로는 프랑스 남부만 헐렁헐렁 훑어보기에 적당하다고 경험 많은 내가 강조했지만 이왕 어렵게 갔으니 파리에서부터 주~욱 남부로 내려갔다가 다시 파리로 돌아오자는 친구들의 주장도 만만치 않아, 숫자에 밀리고 말았던 게 제일 큰 실수였다. 준비하는 삼 개월 동안은 무슨 삼일 만세운동이라도 도모하는 양 내내 상기되어 있다가 막상 출발하기 이틀 전부터 잠이 안 올 정도로 긴장이 되었다.
우리말이 나오는 네비를 미리 빌려, 목적지들을 입력시켜 놓는 일은 현숙이에게 맡기고,
유람선, 미술관 입장권 예매까지 내가 도맡아 했고, 프랑스 전역의 호텔들을 제법 꼼꼼히 따져보고 예약을 마친 상태였기에 어디 한 곳에서라도 삐끗하면 모든 일정에 차질이 생길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다른 여행 때보다는 사뭇 비장한 각오와 많이 들뜬상태로, 아무도 알아주지 않지만 7인의 무법자라고 키득거리며 기세 좋게 파리로 향했다.
첫 번째 난관은 너무 빨리 닥친다.
공항 주차장에서, 예약해 놓았던 렌터카를 보니 기가 막힌다. 렌터 카 업체 상담원은 분명히 7인승 풀사이즈 오토카로, 뒷 트렁크에 큰 캐리어가 4개 들어간다고 했다. 동영상으로 확인해 본 우리 렌터카 렌시아는 그런대로 일곱 명이 탈 만한 것 같았는데 동급이라며 빌려준 씨트로엥의 트렁크엔 작은 캐리어 두 개가 겨우 들어갈 정도이다. 최대한 짐을 줄여 작은 가방을 가져오라고 했지만 10일간의 부식만 큰 가방 두 개로 총 9개의 캐리어만으로도 차가 비좁을 지경이다.
두 대의 차로 다니는 것은 엄두가 나지 않고 난감하기 짝이 없는 상황에 웃음만 나온다
형편없이 버벅거리는 영어와 봉주르, 멜씨밖에 모르는 불어, 다운로드하여 간 번역 앱이 통화 수단의 전부인지라 자기네가 보유한 차로는 제일 큰 차라는 직원 말에 뭐라 할 말이 없다.
경극 배우처럼 짙은 눈 화장을 한 여직원은 니들한테 설명한 들 알아듣기나 하겠어?라는듯 한껏 거만한 태도로 자동차 내부구조나 프랑스 교통 법규 등에 대한 설명 한마디 없이 차 키만 넘겨주고 잽싸게 가 버린다.
일단 첫날 묵을 호텔로 가서 캐리어는 맡기고 다시 짐을 꾸리기로 한다.
자꾸만 열리는 차 문을 겨우 닫고, 자기 캐리어는 각자 머리 위에 얹은 상태로 출발. 담엔 똬리를 필수로 준비해야겠다는 누군가의 농담에 모두 킬킬대며 3km 거리의 호텔로 향한다.
공항 근처에선 네비가 불통되는 경험을 여러 번 했었기에 호텔까지 가는 길을 깨알같이 노트에 적어 왔다. 역시 네비는 작동하지 않고
프랑스 이정표는 그다지 친절하지 않다.
우리나라보다 더 헷갈리는 이정표를 번번이 놓치는 바람에 차는 자꾸만 목적지와 반대로 가고 있다. 하염없이 시골길을 달리다가 살짝 지쳐 갈 무렵, 그래도 우리가 불쌍했던지 갑자기 네비가 반응하기 시작. 15km는 돌고 돌아 겨우 찾아온 호텔은 환호성을 지를 만큼 반갑다.
방에 들어와 처음 한 일은 짐 다시 꾸리기. 이 상황을 미리 예견이라도 했는지 각자 여러 개 챙겨 온 헝겊 가방이 빛을 발하기 시작한다. 꽃무늬 보따리에 분홍보자기, 고기 선물용 부직포 포장백은 내 차지가 되어 찍찍이로 열고 닫히는 것이 그저 기특하기만 하다. 전기밥솥에 전기냄비까지 가져갔던지라 그 와중에도 김치와 먹는 따끈따끈한 밥은 어찌 그리 맛있던지.
요란스러운 밤이 지나고.
7개의 빈 캐리어는 호텔에 보관하고 꼭 필요한 짐만 바리바리 보자기에 나누어 자동차 바닥과 좌석옆까지 구석구석 구겨 넣었다.
보자기짐들이 좌석보다 훨씬 높아져 보따리에 에워 쌓여 구겨 앉은상태지만 키득키득 신나게 다음 예정지를 향해 출발한다.
이날은 남동쪽으로 6시간가량 떨어진 안시까지 간다.
파리 외곽순환도로를 지나 남쪽으로 향하는 고속도로를 달려야 한다. 출발지는 공항 근처였기 때문에 네비가 안 되겠지 생각했었는데 한참을 달려 파리 외곽도로에 진입했는데도 네비아가씨는 지나치게 과묵하시다. 10차선쯤 되는 길은 정신 못 차리게 가지를 치며 쉴 새 없이 갈라지는데 완전히 먹통이 돼 버린 것이다.
깨알 노트를 다시 꺼내 들고 A6, N21등을 외치며 겨우 프랑스 남북을 관통하는 고속도로에 접어들 수 있었다.
휴게소에서 현지 네비를 사려고 했으나 종업원도 작동할 줄 몰라서 포기하고 지나가던 프랑스 남자의 도움을 받아 차 안의 네비를 이용해 보기로 한다.
정 안되면 가는 목적지마다 도움을 청해서 입력하자. 차 안에서 김치 냄새가 요란한 게 좀 걸리긴 하지만 할 수 없지. 외국인에게 친절하라고 교육받았겠지 뭐. 우히히히 우리는 무어든 할 수 있는 대한민국 아줌마니까.
그렇게 다시 길을 나섰고 다행히 구글 네비도 아쉬운 대로 제 몫을 하기 시작한다. 예정보다 서너 시간 늦게 도착했기에 호텔에 짐 풀어놓기 무섭게 뛰쳐나가 안긴 도시, 안시는 그동안 마음 졸였던 것을 다 잊을 만큼 충분히 예쁘다. 알프스의 빙하가 녹으며 흘러내려 커다란 호수를 이루고 있었고 작은 도심은 운하로 이어져 슬슬 걷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평안해진다.
마트에서 와인과 과일, 빵등을 사 온 후 아파트형 호텔서 느긋하게 나눠 먹고 이게 바로 자유여행의 묘미라며 깔깔깔 즐겁다. 안시의 야경을 즐긴다며 다시 거리에 나가 여유 작작 놀다가 그날 밤은 포근하고 행복하게 잠자리에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