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기로 영자 컨디션이 좋지 않으니 병태는 집에서 낮잠이나 자며 푹 쉬자고 한다. 영자도 조금 걱정이 되긴 하지만 이 맑은 날 여기까지 와서 낮잠을 자는 건 용납할 수 없다. 오래 걷는 건 무리니까 일단 맛보기 트레킹이라도 가자고 꼬드긴다. 조금이라도 힘들면 바로 돌아오겠다고 졸졸 따라다니며 병태가 제일 좋아하는 호칭 '옵빠'를 질리도록 속삭여준다.
그리하여 오늘의 목표는 제일 편하게 갈 수 있는 국경, 발므 Balme고개이다.
샤모니 슈드에서 Le tour행 버스 타고 종점까지 간다. 버스는 게스트카드만 있으면 샤모니 전역이 무료다. 그래서인지 기사님은 아무에게도 카드 제시를 요구하지 않는다. 시간표는 샤모니 앱에 자세히 나와있다.
버스 종점에서 케이블카와 스키리프트 타고 발므에서 내리니 어지러울 정도의 노란 야생화가 깔린 꿈같은 길이다.
그래 이 맛이야.
이런 걸 보려고 그 고생을 하면서 여기까지 온 거야.
목적지도 모르고 따라다닐 정도로 여행에 관심 없다는 병태니까 여행 기획은 백퍼 영자 몫이다. 언젠가 자기는 한 번을 가더라도 나이에 맞는 럭셔리 숙소와 맛집 투어를 해보고 싶다고 한다. 그럼 온전히 주관해 보라는 소리에 깨갱 꼬리 내리고 그냥 묵묵히 따라다니는 쪽을 택한다. 그러므로 병태가 좋아하는 번잡한 도시와 우아한 식당 따위는 애당초 여행목록에 없다.
10여분 걸으면 발므 산장이다. 프랑스와 스위스가 돌멩이 하나로 나누어진다.
참 쉽지요? 국경까지 가는 길. 요쪽은 프랑스 조쪽은 스위스.
빙하 녹은 물
이런 식수대가 트레커들을 위해 준비되어 있다.
에비앙보다 더 좋다는 이런 물을 만나면 벌컥벌컥 마셔준다.
몽블랑 트레킹은 참 쉽다.
오기 전에 했던 걱정이 무색하다.
이정표가 잘 되어 있어 길 잃을 염려가 거의 없다. 자기 수준에 맞게 케이블카나, 리프트등 탈 것을 타고 올라가서 걸어 내려오거나 체력이 된다면 처음부터 걸어 올라가면 된다.
물론 정통 TMB 코스는 가이드 동행해서 걷는 것이 안전하겠지만 우리처럼 설렁족들은 탈 것을 이용해 적당히 올라간 후 능선 따라 천상의 설산들을 바라보며 걷는 꿈같은 코스들이 너무 많다. 헷갈리는 갈림길을 만나면 구글맵의 도움을 받으면 된다.
우리가 갔던 6월 말에도 열리지 않은 트레일이 있으니 샤모니앱에서 미리 알아보고 가는 것이 좋겠다. 만약 폐쇄된 트레일을 만난다 해도 몽블랑 멀티패스가 있으니 도로 내려오면 그만이다.
날것의 노란 들판에 퍼질러 앉아 비상식 도시락인 뜨끈뜨끈한 쇠고기 비빔밥과 커피, 간식, 과일까지 느긋하게 즐긴다. 애들처럼 지칠 때까지 폴짝거리다가 케이블카 타고 내려와 마트에서 저녁거리를 사들고 숙소로 돌아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