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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경희 Feb 19. 2024

희귀 심장병 돌쟁이 1.

어느 날 갑자기 세상이 무너져버렸다.

  

 

엄마 어린이 집에서 연락이 왔는데 겸이가 기운이 너무 없다네

둘째 딸의 전화다. 집짓기 시작하면 자주 못 간다고 그만큼 얘기했는데. 또 호출이다.

15개월 터울의 연년생을 아침 7시 40분쯤 직장 어린이 집에 보낸다.  퇴근 후, 7시가 다 되어야  아이 둘을 데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딸은 복직한 지 한 달 남짓 된 워킹 맘이다.


 내일은 아빠가 출근하셔서 나 혼자 겸이 못 봐. 공사 현장에서 오라고 연락 오면 가 봐야 하고.

8개월짜리를 어린이집에 보내니 예상대로 자주 아파  거의 매일 식 후엔 약을 먹이는 것 같았다.  

 ‘기운도 없고 기침도 하고 그렇게 크는 거지 그놈의 약 좀 안 먹여보면 안 되나?

출근도장 찍 듯 가는 병원도 좀 그만 가고'


친정 엄마는 싱크대에서 죽는다지만  왕복 서너 시간 거리를 일주일 두세 번 불러댄다.

에라 모르겠다. 오늘은 안 갈란다.

잠시 후  딸은 시어른들이 오시기로 했다며 신경 쓰시지 말라했다.

 '그래 친할아버지 할머니하고도 자꾸 낯 익혀야지. 제가 편하니까 친정 부모만 불러대지 말고.'    

 


폭염이 이어지는 날이지만 이른 아침 남한강변 자전거길은 적당한 그늘이 드리워져 쾌적했다.

한 시간 반가량 걷고 집에 돌아와 땀에 젖은 몸으로 청소를 하고 있었다.

 

겸이가 탈수가 심해서 수액을 맞으러 종합병원으로 간대요.

오랜 기관지염 증상으로 기운이 없다더니 수액 좀 맞으면 좀 나아지겠지?

 

겸이가 심장 CT를 찍었더니 심장이 커져있대. 중환자실로 갈지 모른대


응? 이건  또 무슨 소리야? 감기로 병원 간 아이에게 갑자기 왜 심장을 들먹여?


수세미를 쥐고 있던 손이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집짓기 현장에서 전화가 온다.

그냥 소장님이 알아서 해주세요.

씻는 둥 마는 둥 운전대를 잡았다. 그동안 겸이는 강남세브란스에서 삼성의료원으로 이동한다고 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허둥지둥 양평을 떠나 서하남쯤 왔을 때 전화벨이 울렸다.

 “엄마 빨리 와, 빨리 와 엄마”

딸이 울부짖고 있었다.

 “겸이 CPR(심폐 소생술)하고 있어. 엄마, 엄마”


이게 무슨 소린가 무슨 일이 벌어졌단 말인가 그저께 돌잔치를 했던 우리 아기가, 어제도 천사같이 웃던 아기가 심정지라니. 귀가 윙윙거리며 손발이 주체할 수 없이 떨리기 시작했다.


다행히 도로가 꽉 막혀 20km 속도를 유지하고 있었다.  먼저 삼성의료원에 가 있던 큰 딸이 겸이가 이동할 수 없는 상태라 그냥 강남세브란스에 있다며 그쪽으로 가야 된다고 했다.  내 상태로 시내운전은 무리라며 내 쪽으로 와 주어서 근처 주차장에 차를 놓고 큰 딸 차를 타고 응급실로 향했다.

 

아기의 심장이 전혀 작동하지 않는다고 했다.

심폐소생술로 겨우 살아난 겸이에게 심장 보조 장치를 달기 위해 신촌세브란스의 의료진이 구급차로 달려와서 시술 중이었다. 보조 장치 에크모를 시술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심혈관계 전문의였다. 시술 후 아기를 신촌세브란스로 이송한다 했다.     

 


특발성 확장성 심근염.     


돌쟁이 우리 아기 겸이의 병명이다. 유전적 요인이 강하다는데 양쪽 집안에 그런 병 가졌던 이는 전혀 없어 원인은 모른다. 심장병이 무섭다 해도 이렇게 무서운 줄은 정말 몰랐다. 심장의 질병은 전혀 증상이 없어 기능이 밑바닥까지 왔을 때 그냥 생명을 놓아버린단다.


십만 명중에  0.7명도 걸릴까 말까 한다는 희귀병.  아기인 경우 말을 못 하니까 그냥 집에서 놀다가 하늘나라로 가버린다는 무서운 병. 다행히 우리 겸이는 응급실에서 심정지가 왔고 마침 전문 선생님이 달려오실 수 있어서 살려낸 천운의 케이스란다.      

 

이틀 동안은 그냥 눈물만 나왔다. 아무 생각도 나지 않고 자꾸 울기만 했다.

겸이를 다시 안아볼 수 없을지 모른다고 생각하면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그 어린것이 조그만 몸에 수많은 튜브를 꽂고 중환자실 침대에 혼자 누워 사투를 벌이고 있는데 해 줄 일이 없어 몸이 자꾸만 가라앉았다.

전화벨 소리도 무섭고  침묵도 무서웠다.


사흘동안 겸이는 기특하게 잘 버텨주었다. 제 오빠가 가진 장난감을 야무지게 빼앗고, 귀찮게 하는 오빠의 팔뚝을 꼬집을 정도의 당찬 아이니까 믿고 기도했다.


힘들 때만 기도하는 어리석은 인간의 기도도 들어주시리라 믿으며 줄기차게 기도했다.

그리고 나부터 정신을 차려야 했다. 제법 또렷하게 버티고 있는 딸아이와 반은 정신이 나간 상태로 흐느적거리는 사위. 그리고 며칠 새 3kg이 빠질 정도로 밥을 못 먹고 잠을 못 자는 내 남편, 자기를 대신 데려가라고 기도하고 있는 겸이 외할아버지의 버팀목이 되어야 했다.

 

현실적으로도  인공심장(VAD)을 몸 밖에 달아야 하는 수술비가 일억, 중환자실 입원비가 하루 40만 원이라 했다. 거기에다  보험 적용이 전혀 안 된다는 VAD 대여료 일억과 매달 사용료가 천만 원.  평범한 가정에서 천문학적 숫자인 어마어마한 돈을 어떻게든 마련해야 했다.



이제부터 기약 없이 길고 힘든 싸움이 시작되리라. 겸이가 잘 버텨주고 있는 한,

밖의 어른들은 힘을 뭉쳐 겸이에게 보내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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