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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경희 Feb 29. 2024

희귀 심장병 돌쟁이 2   

나는 먼지다

 거실 앞 작은 꽃밭에 해마다 나팔꽃씨를  심는다.

가을에 씨를 받아두었다 심기도 하지만 홀로 떨어져 저 혼자 싹을 틔우는 기특한 녀석들도  제법 눈에 띄었다.


혹독한 추위를 이겨내고 여린 잎이 나올 때 대견하고 예뻐서 오랫동안 쭈그려 앉아 바라보곤 했다.

작은 잎은 쑥쑥 자라 덩굴을 뻗고 앙징맞은 보랏빛 꽃을 피워냈다.


겨미는 나팔꽃씨처럼  싹을 틔울 준비를 하고 있었다.  작고 여리지만 강한  우리 아기  잠든 상태로  중환자실  공기를  잘 버텨주고 있었다. 너무나 깜깜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던 어둠 속에  작은 빛이 스며들기 시작했다.


불빛은 조금씩 범위를 넓히더니 점점 밝아진다.   

겸이 싹이  다시 움트고  있었다.


겸이 상태가 조금씩 안정되면서 보조 장치를 떼고 VAD (심장 이식형 펌프)를 연결하는 수술 날짜가 잡혔다. 흔히 말하는 인공심장이다.

어른들은 몸 안에 장치를 삽입하지만

8kg 아기의 몸 안에는 장치를 넣을 수 있는 공간이 없으므로

커다란 기계를 몸 밖에 달아야  한다.

 

관문인  인공심장 VAD를 연결하는 날.

8~9시간 걸린다는 힘든 수술. 아기가 열흘 동안 잠을 잔 상태여서 근육이 다 풀려 있다 했다.

이틀 전에는 커진 심장이 폐를 눌러 폐를 복원시키기 위해 기관지를 통한 시술을 했었다.


그 조그만 몸에 수없이 많은 관이 꽂히고 약물이 투여되며 시달릴 생각을 하면 가슴이 무너진다.  

그동안 애써 다독였던 마음이 두덕두덕 이리저리 어지럽게 뛰기 시작한다.


며칠 동안 데리고 있던 겸이 오래비  차니를 어린이 집에 데려다주고 허둥지둥 병원으로 향한다.

27개월 된 차니는 가끔 제 동생 겸이를 부르며 집안을 돌아다녀 어른들 마음을 짠하게 했다.

차니와 있는 동안  눌렀던 감정이 어린이집 문을 나서는 순간 요동친다.

 

‘8시 겸이 수술실에 잘 들어갔어요’

카톡에 쓰여 있는 짧은 문장에 훅 눈물이 솟는다.

 


수술실 앞에서 붉어진 눈으로 역시 충혈된 눈의 안사돈 손을 부여잡고 말없는 위로를 나누며 주저앉는다.

전광판엔 겸이가 수술 중이라 쓰여 있다. 두꺼운 성경책을 가져온 큰 딸과 함께 기도하고 성경 읽으며,

아니 큰 의 설명을 들으며 7,8시간 안에 수술이 무사히 끝나기만 간절히 빈다.

겸이 어미는 붉게 충혈된 눈으로 간간이 웃고 떠들며 애써 태연한 척하고 있다.

큰 딸은  내 손을 잡고 뭐라 뭐라 성경 말씀을 전하지만 귀에 들어오진 않는다.


어린것이 사경을 헤매는 동안 밖의 어른들은 밥 한 그릇을 다 비웠고, 커피까지 나눠 마셨다.

 분명 겸이보다는 더 나이가 들었을 많은 분들의 이름이  ‘수술 중’에서 ‘회복실로 이동’ 할 동안 아기의 수술은 계속된다.  저녁 무렵에 드디어  ‘X X겸.  중환자실로 이동’ 기다리던 자막이 깜박인다.


수술은 성공적이라 한다.

어른들은 환호했고 감사의 기도를 드린다.

우리 꼬맹이가 참 장하구나. 자랑스럽고 고맙다.

우리 아기를 가슴 가득 안고 토실한 엉덩이를 토닥이고 싶구나.   



 고개를  넘으니 현실이 닥쳤다.

워낙 희귀한 케이스라 국내에 몇 개 없는 VAD의 사용료는 보험에 등재되지 않았다고 했다.


아기심장이 자력으로 튼튼해지거나,

 비슷한 크기의 DNA가 같은 심장공여자가 나타날 때까지 기약 없는 세월을 기다리며 

지불해야 할 병원비는 어마어마했다.


딸의 친구가 VAD의 보험 등재를 청와대 청원에 올렸고 서명 동의가 시작되었다.

 20만 명이 넘어야 청와대에서 답변한다니 지인들에게 퍼뜨려주길  간곡하게 부탁드렸다.


하루에 2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서명해 주시며 동의 숫자는 빠르게 늘어갔다.

얼굴 모르는 분들도 우리 아기를 위해 기도하며 동참해 주셨다.

친구들은 자기 손주의 일처럼 안타까워하며 손가락 관절이 심한 친구까지 기꺼이 청원동의를 퍼 르며

힘을 불어넣어 주었다.

고맙고 고마웠다. 친구, 지인, 가족들의 격려 덕에 우리 가족은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겸이 어미, 내 둘째 딸은 생각보다 더 강했다. 방송국, 청와대, 보험평가심사원까지 손 편지를 보내는 등, 할 수 있는 데까지 최선을 다 하겠다며 밤을 새웠다.


유독 잠이 많은 큰 딸, 겸이 이모는 철야기도를 마다하지 않고 기도를 드리며 겸이 오빠 찬이를 돌봐주었다.

그중 제일 유약한 남편은 이번 기회에 하나님을 섬기겠다며 교회에 나가기 시작했다.

우리 가족의 간절한 기도가 시작되었다.

아니 셀 수 없이 많은 분들의 진심 어린 기도가 시작되었다.     

 


  수술 후 20일이 지났다.

수술은 성공적이라 했으나 어느 날은 커진 심장이 폐를 눌러 무슨 시술을 한다 했다.

또 어느 날은 폐에 피가 고였다고 했다.

그다음 날은 뇌에 혈전이 생겨 마비 증상이 있을지도 모른다 했다.

아기 상태에 따라 지옥과 천국을 오가는 날들이 계속됐다.


면회는 20분씩 하루 두 번. 점심에는 비가, 저녁에는 어미가 아기를 보고 나왔다.  

열흘 동안 진정제를 서서히 끊었기 때문에 아빠 엄마가 돌아갈 때 멀뚱히 바라만 본다 했다.

제일 걱정했던 시간이 어미가 우는 아이를 떼 놓고 나올 때였는데,

언젠가부턴 아이가  앙칼지게 울어주길 바라고 있었다.


어느새 우리 아기는 많이 아픈 어른들 사이의 11번 침대에 누워,

끊임없이 돌아가는 각종 기계음, 신음, 돌보는 의료진의 바쁜 발걸음과

수시로 받아야 하는 검사와 아무도 안아줄 수 없는 현실을 홀로 이겨내며 적응하고 있었다.



어두운 터널을 지나면서  장하고 예쁜 내 손녀는 온몸에 연결 돼 있던 관들을 하나씩 떼어내고 있었다.

입과 코에 이어진 관을 떼어내고 밥을 먹기 시작했을 때 하나님 감사 합니다 소리가 저절로 나왔다.


우리 아기를 걱정하며 기도해 주셨던 모든 분들께 무릎이라도 꿇고 절 올리고 싶었다.

 어제는 밥을 잘 먹어 한 시간 동안 먹였다고 했다. 좋아하는 간식도 손가락질까지 하며 먹고 싶어 했다 한다. 아직  몸 왼쪽의 기능이 많이 떨어진 상태지만 그것도 하루가 다르게 회복 중이란다. 


담당 교수님은 물론 의료진의 성의도 대단했다. 특히  처음부터 강남세브란스에  달려오셔서  시술해 주시고 그 어려운 수술을 모두 성공적으로 이끌어 주신 담당 교수님께는 어떤 감사도 부족했다.

자식  돌보듯  정성으로 돌봐주신 교수님은 하늘이  우리에게 보내주신 천사임이 분명하다

 

그 밖에도 너무 많은 분들의 도움을 받았다.

세상의 모든 분들이 겸이를 사랑해 주시는 것 같았고 아기는 보답하듯 회복되었다.


일 인실로 옮길 수 있겠다는 이야기를 들은 날은 눈물이 자꾸 나왔다.

차가운 중환자실에 아기 혼자 두어야 할 날이 몇 달은 될 줄 알았는데

한 달 남짓 지난 후  아기를 안을 수 있다니 꿈만 같다.  


급할 때만 찾았던 그분은 나 같은 인간의 기도도 다 들어주시는 너그러우신 분이 분명하다.  

모든 일이 기적 같았다.


어린이 집 선생님이 아이가 기운 없어한 것을 발견해 주신 일.

 대수롭지 않다고 외면했던 나와 달리 그날 사돈 댁에서 와 주신 것,  

찾아갔던 동네 병원에서  종합병원 응급실까지 보낸 준 것  

종합병원이었기에 가능했던 위급한 상황에서의 처치들.  

끊임없이 밀려드는 환자와  수술 스케줄로   항상 바쁘신 명의 교수님이 마침 그 시간에 신촌에서  강남까지 달려와 주신 것.

참으로  어렵다는 수술의 성공과 순조로운 회복..


이제 그분 기적의 정점 -자력으로 우리 겸이의 심장이 팡팡 뛰는 은혜로운 일-만 남았다.

지금까지 기적은 우리 아기 심장을 되돌리기 위한 연습에 불과했다.

라고 쓰게 될 날이 반드시 올 것이다.      

 

병원 안에서는 꼬맹이와 의료진이 힘겨운 싸움을 하는 동안 밖에서도  기적 같은 일들이 일어나고 있었다. VAD 대여와 유지비를 보험에 등재해 달라는 청와대 청원에 수많은 분들이 모든 인맥을 동원해 동참해 주셨고 각종 매스컴에서 겸이의 기사를 다루어 주었다.


최선을 다하겠다고 한 겸이 어미는 놀랄 정도의 집요함을 보였고,  보험등재는 아주 긍정적인 답변을 들을 수 있었다. 이미 겸이는 VAD를 대여한 후라 소급적용은 안되지만 다른 희귀병 환자들을 위해서라도 꼭 필요한 일이었다. 그리고 정말 고마운 분들도 많았다.


이름도 밝히지 않고 큰 성금을 보내주신 분들, 아기 돌 기념으로 감사헌금을 준비했는데 겸이에게 보내주겠다는 겸이 어미 친구. 아침마다 겸이를 위한 기도를 카톡으로 보내주는 내 친구들.

세상의 모든 분들이 겸이를 위해 기도해 주시는 것 같았다.     


나는 먼지였다.

신의 작은  날숨 한 번에 단숨에 나락으로 떨어지는 티끌이었다.

주님은  나락 끝에서 티끌을 받아 끌어내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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