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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다시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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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경희 Apr 16. 2024

다시 여행

마이산 귀곡산장

영자에게 여행이란 주로 트레킹이다

그중에도 섬 산행을  정말 좋아한다

섬 산행은 대부분 처음엔 가파르게 오르지만  꼭대기에 올라  올망졸망한 우리 섬들을 보며 걷는 능선길은  

언제나 천국이었다


21년 봄  코비드 시국이었지만

산속을 걷는 건  비교적  

안전하다고 생각했다.  

통영의 수많은 섬들을 걷기로 한다.

양평에서 통영까지 운전시간이

만만치 않으므로 오고 가는 길 중간쯤,

그동안 가보고 싶었던 곳에서 일박하며 이젠 장거리 운전을 좀 힘들어하는 병태를 배려한 여행을 기획한다.


하지만

떠나기 사흘 전 병태가 확진판정을 받아  포기해야 했다. 사흘 뒤 영자도

확진자가 되어  

누구라도 그러하듯

2주일을  집에 틀어박혀 지냈다.

두 번째 시도에는 갑자기 손주 녀석들과 동행하게 되어 산행은 포기했고.

그다음엔 떠나기 열흘 전쯤

발목 인대 파열로 포기.

무려 네 번의 도전 끝에


드디어 통영이다



몇 년 전.

죽기 전에 가 봐야 할 대한민국 10대 명소

라는 소개   중에  못 가 본 곳이 딱 한 군데 있다.

쫑긋한 말 귀 모양의 마이산.


그렇다면 안 가볼  수 없지.

너무나 별렀던 열흘 간의

통영 여행 가는 길에  

마이산에서

일 박하기로 한다.



떠나는 날.

전국적으로 종일 비가 온단다.

마이산 지역은 ~1mm라

그 정도 비라면  두세 시간

정도는 걸을 수 있겠다.

커다란 우비도  준비했지만  

주차장에서는 안개 정도

였기에 우산만 가지고 출발.


풍 검색 후 찾아갔던

등갈비+ 목심+ 도토리묵

+비빔밥의 한 상차림이

환상이라는  식당은  

단체 전용 식당이다.

비 오는 평일이라 식당 문

다 닫아 굶을까 봐 걱정했는데  

웬걸 버스 몇 대의

단체  여행객들로 가득하다. 

어쩐지 화려한 조합에 비해

저렴하다 싶더니 상차림은

허술하기  그지없다.

분명히  블로거들이 '내돈내산'이라 했는데..

배고프니까  그냥 먹는다.


빗줄기는 점점 굵어진다

방수 겉옷도  바지도  신발도  

뭉근하젖는다.

1mm라며? 좋아하네  100mm는 되겠다.

다시  병태의 구시렁 발동.


구름이  가득하니 말 귀 전망은

 아무리 둘러봐도  

못 찾겠다 꾀꼬리다

우중 산행도 나름 운치 있지 않아?

비 오는 것이  내 탓인 듯 지저귀지만

네 탓  맞다는 듯 묵묵부답.


하지만

산행 후에 들어간 홍삼스파는
평소엔 너무 사람 많아 북적거리는

곳인데    평일, 비 오는 날이라
거의 모든 종류의 스파탕을 전세 낸 듯

너~~~ 무 좋다.
스파 쥔장한테는 미안했지만ᆢ

우리 꼬맹이들  데리고

찾아다녔던

어떤 스파들과 견줄 수 없다.

특히 사운드 플로팅이란 곳은

몽환적으로 바뀌는 조명  아래

튜뷰를 목과  두 다리에 끼고

뜨뜻한 물에 누워  

둥둥 떠 다니니

여기가 천국이다.

요즘 유행하는 말로

힐링 그 잡채다.


그리고 오늘 숙소ᆢ
마이산 근처 숙소가 너무 비싸서 저렴하면서 후기도  아주 나쁘지 않은 숙소를 예약했는데
완죤 귀곡산장이다
방이 30개쯤 있는 폐가 수준

숙소에 손님이  

우리만 달랑  ㅋㅋ

일층은 식당이라 해서 남편  혼자 내려가 저녁 먹으면 십상이겠다 좋아했는데
종일 손님  한 명도 없었던 것 같아  도저히 못 먹을 수준이다.
분명 부엌 딸린 방이라 만원 더 지불했는데 부엌 없는 춥고 퀴퀴한 골방이다. 

이불에서 나는  요상한 냄새는 참을 수 있으려나?


이년 전에 다녀간 어떤 후기에 시골 외할머니 댁 같다더니

뵌 적 없는 외할머니를 소환하며 견뎌야 할라나?

그  이년 전의 후기가 마지막이라 좀 찜찜 하긴 했었다.

오직 전화로 예약 가능하고 송금으로 마무리되는 예약제도도 살짝 걱정했었다.


먹을 것  잔뜩 싸 갖고 왔지만   간편 조리도 불가능하니 병태의 불쾌지수는  슬슬 올라가기 시작한다.

장애가 있는 할머니가 식당과 숙소 혼자 관리하시는 것 같다.

어떤 질문도  모르쇠로 일관하신다.


빗줄기가 점점 거세지니까 운전하고 혼자 나가 밥 먹기  싫다고 병태는 굶기를 선택한다

굶기면 헐크 되는  병태에게 시달린다 
이런 고난은 두 눈 꽉 감고   꾹 다물고 묵상 모드를 해야 견딜 수 있다

그런데 슬슬 엉덩이가 따땃해진다.

다행히 전기패널이 제 몫을 하기 시작한다


누룽지와 우유, 과일로 대충  허기를 채운 병태도 어느덧 궁시렁을  그치고 슬그머니 방바닥으로 내려온다

바닥은 끈적거렸지만    찜질방처럼 뜨끈뜨끈하다.  이불마저 향기롭게 느껴진다
안나푸르나에서 먼지 솜이불

덮고  새벽에 똥이 넘치는

공중 화장실 변기 청소하며

봤던 귀한 경험을 떠올리자

어느새 이 방은  

두 번째 천국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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