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던 신은 꼰대의 착각

“Dad, you look like an old teenager. Stop trying so hard.”


올 여름 뉴욕의 한 신발 가게에서 산 레트로 에어 조던 1을 꺼내 신고 현관을 나서려다 중학생 작은아들에게 격추당했다.

이 한 문장에 40대의 딜레마가 응축되어 있다. 나는 나의 찬란했던 추억을 신은 것인데 아들의 눈에는 그저 젊어 보이려 발버둥 치는 아재로 보였던 것이다. 의도와 해석의 비극이다.

40대는 뒤에서는 '꼰대'라는 화살이 날아오고, 앞에서는 '철없다'는 돌팔매가 쏟아지는 나이다. 양쪽의 포화를 피하며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해야 하는 것, 그것이 ‘영 포티(Young Forty)’의 현주소다.


며칠 전에는 고등학생 큰아들도 내가 오랫동안 입어온 핑크색 quarter zip 스웨터를 보더니 묻는다.

“Dad, are you wearing that quarter zip because they are trendy now?”


꾸준히 클래식한 스타일을 고수해온 내가 입은 옷이 우연히 지금의 트렌드와 겹쳤을 뿐이다. 그런데 이제 내 존재 자체가 유행을 좇는 중년으로 읽히는 것이다.


어제 친구 부부와의 저녁 식사 자리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친구의 아내가 테이블 위에 올려놓은 휴대폰들을 보며 말했다.

“어머, 우리 모두 아이폰 쓰고 있네요. 요즘 힙한 한국 Z세대들은 다시 폴더폰을 쓴다던데요?”

아이폰이 나온 이래 쭉 써온 나에게 그것은 혁신의 상징이었는데 어느새 ‘아재 템’이 되어버렸다는 자조 섞인 농담이 오갔다. 기계는 최신인데 사용자는 구형인 묘한 부조화다.


흥미로운 사실은 내가 신은 조던이 1985년에 나왔다는 것이다. 나는 어릴 때부터 동경했던 신발을 신은 것뿐인데 트렌드를 쫓는다는 오해를 받는다. 시간은 돌고 돌아 제자리로 왔는데 나만 그 위에서 엇박자를 탄다.

우리는 삐삐와 아이폰, LP와 스트리밍을 모두 거친 세대다. 아날로그와 디지털 사이, 과거와 현재의 틈새에 낀 세대. 입는 옷은 트렌디해 보이고 싶은 클래식이고, 쓰는 말투는 쿨해 보이고 싶은 꼰대어다. 모든 선택이 이중적으로 해석되고 모든 의도가 비틀려 읽힌다.


한국의 40대는 가난과 풍요, 독재와 민주화, 아날로그와 디지털을 한 생애에 압축적으로 겪어냈다. 서로 다른 시대의 파편을 조합해 살아가는 것, 그것이 우리의 방식이다. 물론 에어 조던을 신고 최신 폰을 쓸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어떤 여유의 증거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여유 속에서도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묘한 부유감은 남는다. 그런데 이 부유감이 꼭 나쁜 것일까?


그러니 영 포티여, 우리의 애매함을 굳이 변명하지 말자. 낀 세대면 어떤가. 아날로그의 낭만과 디지털의 편리함을 모두 누리는 특등석에 앉았다고 생각하면 그만이다.


나는 내일도 레트로 조던 끈을 꽉 묶고 나갈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old teenager로 누군가에게는 철없는 아재로 보이겠지만 상관없다. 적어도 내 발걸음만큼은 가벼울 테니까. 그거면 충분하지 않은가.

작가의 이전글쓰리피스 정장을 입은 파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