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에세이, 근데 이제 감성과 위트를 곁들인]
-
마치 지하철의 종점에 도착해 어쩔 수 없이 내리 듯
내가 존재하지 않았던 그때로
다시 돌아간다 하더라도 너무 슬퍼 말기를
난 언제나 거기 있었고 충분히 아름다웠으니.
-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날
망가지지도, 그렇다고 멀쩡하지도 않은 오래된 우산을 여매고
지하철 입구로 들어선다.
하염없이 하염없이
밑으로 밑으로 내려간다.
코끝이 시려지는 지하철 특유의 쿰쿰한 냄새가 날 감싼다.
한 계단을 내려왔다.
어렸을 때의 추억이 떠오르는 공간이 있다.
앞에 나서서 춤을 추기 좋아하던 그 아이는
행사가 있을 때면 매일 같이 이 지하철 홀에서
거울 속 그의 모습을 가득하게 즐겼던 그런 시절이 있었다.
아련한 기억 저 너머에 그때의 내가 있었다.
-
두 계단을 내려왔다.
아무도 찾지 않는 바래진 토큰기계를 멍하니 바라본다.
다시 나가기 위해
잃어버리지 않도록 손에 토큰을 꼭 쥐던 날들이 지나간다.
그 색의 변화를, 내 손에 이 토큰이 흐려짐을,
그 시간의 흐름을, 미처 깨닫지 못한 채
개찰구를 지나가는 나를 본다.
-
세 계단을 내려왔다.
‘어렸을 땐, 어디로 가야 하는지 몰라 한참 헤맸는데’
이제는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안다.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안다.
그리고 멀지만 가까운 이 틈사이로
사람들 속에 날 싣고 간다.
-
지하철은 ‘삶’이다.
첫차도, 막차도 그 누구도 차별 않고 싣고 가는 이곳은
삶이다.
핸드폰에서 눈을 떼어 죽- 주위를 둘러본다.
엎어지면 코 닿을 곳에 맞은편 사람.
누군가와 조잘조잘 한껏 기대에 부푼사람.
세월에 지쳐 기대어 앉은 사람.
...
그리고 한 곳에 시선은 멈춘다.
‘쿠궁- 쿠궁-’
빠르게 지나간다. 저 검은 바깥말이다.
계속 나는, 어디선가 멈추고 다시 어디론가 가고 있고
누군가는 들어오고 나간다.
누군가는 내 인생에 점을 찍고 나가고,
기다란 선을 그어나가고,
때론 비에 젖은 우산처럼 내 발목을 적시고 나간다.
그렇게 나의 일부가 되어간다.
그들은 알까.
그들은 나에게
저 빠르게 지나가는 검은 바깥처럼 무심하지만,
난 그들로 인해 멈추게 되고, 그 사이를 둘러보고,
하나의 일부가 되고 싶어 한다는 것을.
-
이제 내린다.
우리는 언젠간 종점에 도착하겠지.
시작과 끝이 있듯, 이 험한 세상도 끝이 있겠지.
끝난 뒤엔 지겨울 만큼 오래도록 쉬는 날이 오겠지.
그게 조금 앞당겨지든,
그게 조금 느려지든,
꼭 다시 만나기를.
오고 가는 저 많은 사람들 속에 잠겨
어쩌면 지나쳐도 좋으니
당신에게 남은 내 일부를 오래도록 간직해 주길.
난 언제나 거기 있었고
충분히 아름다웠을 테니.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