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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모단 Sep 05. 2020

산소통 메고 바다에서 우는 남자


북태평양 바다 한가운데 엔진을 끄고 둥실둥실 떠있는 작은 보트 한 척. 7월의 햇살은 싱그럽게 쏟아지고 소금기 듬뿍 머금은 바닷바람은 생각보다 시원했다. 평소보다 물결이 잔잔해 스쿠버다이빙 초보자들에게 이보다 더 좋은 날씨는 없을 거라 호들갑스럽던 강사는 바다로 들어가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나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지금이라도 괜찮으니 들어오세요!’ 애처로운 강사의 눈빛을 외면한 나는 결국 바다에 들어가지 않고 배에 남았다.


같은 날 같은 회사에 입사해 우여곡절을 함께 헤쳐 온 동기들. 각자 업무가 바쁘다 보니 그동안 셋이서 밥 한 번 먹기조차 쉽지 않았는데 여름 휴가철을 맞아 근무 일정을 요리조리 조정한 끝에 그동안 해보고 싶던 스쿠버다이빙을 하러 셋이 함께 동남아시아로 떠나게 됐다. 부서라고는 남자 투성이에 상명하복이 강한 조직이다 보니 입대 동기 이등병들이 첫 백일 휴가를 맞아 신나면서도 잔뜩 긴장한 채 부대 밖으로 향하는 기분이었다.


재난지역 출장이 아닌 순수 여행으로 비행기를 타는 것에 신난 세 사람은 그간 회사에서 있었던 일, 현장에서 억울했던 사연, 꼬투리만 잡는 선배들, 고생스런 경험을 주거니 받거니 하며 비행기, 버스, 통통배를 갈아탄 끝에 다이버의 천국이라는 필리핀의 작은 해변 마을에 도착했다. 예약해놓은 스쿠버다이빙 샵에는 인상 좋고 풍채 좋은 한국 아저씨가 강사로 있었다. 다이빙업체, 리조트, 풀장, 구멍가게 등 오만가지가 짬뽕된 듯한 이 신기한 영업장의 한 구석에서 기본 교육을 받은 다음날, 아침 일찍 배를 타고 바닷속이 예쁘기로 유명하다는 다이빙 포인트로 향했다.



보트를 운전하는 필리핀 사람 호세 아저씨와 다이빙 강사, 그리고 우리 셋. 아침 햇살에 에메랄드빛으로 반짝이는 바다를 가르며 장쾌하게 질주하는 와중에도 서로 뭐가 그리 좋은지 낄낄대기 바빴다. 그런데 문득 떠오르는 생각. ‘아 맞다, 나는 물을 무서워하잖아?’ 잠시 잊고 있었다. 내가 물 공포증이 있다는 사실. 인생을 살아오며 염라대왕 사무실 노크하고 문 열기 직전까지 간 적이 네댓 번 있었는데 모두 물에 빠져서 생긴 사고였다. 5살 때 대중탕을 시작으로 초딩 때 동네 수영장, 고딩 때 바닷가, 대딩 때 가평… 물에 빠져 꼬르륵거렸던 경험들이 떠오르자 마음속 깊은 심해 어딘가에서 잊고 있던 두려움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배가 목적지에 도착했다. 유명한 포인트인데도 오전 일찍 나왔더니 다른 배나 다이버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망망대해에 오직 우리뿐. 강사의 도움을 받아 슈트와 장비를 착용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물에 들어갈 수 있을 줄 알았다. ‘트라우마라는 건 원래 극복하라고 있는 거 아니겠어?’ 호기롭게 물안경을 쓰고 호흡기를 입에 물었다. 그러나 기세와는 달리 점점 옥죄여오는 심장. 눈앞이 어두워지고 호흡은 가빠졌다. 동기들은 그런 내 마음도 몰라주고 성큼성큼 배 난간에 걸터앉더니 뒤로 텀블링을 돌며 시원스런 백롤 자세로 입수했다.


바다에 동동 뜬 상태로 내가 들어오길 기다리고 있는 세 사람. 가까스로 강사를 향해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몸이 안 좋아서 저는 좀 쉴게요" 그러나 강사는 쉽게 포기하지 않았다. "여기까지 와서 이러면 안 된다, 오늘 수온이랑 시야가 좋아서 위험하지 않다, 내가 지켜준다, 지금 취소하셔도 환불은 안 된다" 아이고 강사 선생님, 지금 돈 몇 푼이 문제입니까, 공황장애 오기 일보 직전인데. 허탈하게 웃으며 재밌게 다녀오라고 인사했다.


그렇게 셋은 해저도시 아틀란티스라도 정복하려는 듯 씩씩하게 바닷속으로 진입했고 나는 슈트와 산소통 풀착장 상태 그대로 덩그러니 보트에 남겨졌다. 잘 다녀오라며 억지웃음 지으며 높이 흔들던 오른손이 부끄러워 슬그머니 내렸다. 주변은 한없이 고요했다. 배 가장자리에 주저앉아 먼 바다를 바라보고 있자니 뭔가 패배자가 된 느낌이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행복하고 즐거운 수상 레포츠이자 놀이일 뿐인데 이게 그렇게 안 되나? 이렇게까지 용기 없고 겁 많은 사람이었을 줄이야. 실망스럽다. 잔뜩 침울해졌다.


“너는 왜 안 가니?”

운전석 쪽에 있던 호세 아저씨가 불쑥 말을 건넸다. 아침 첫만남에 인사를 했을 때도 씨익 사람 좋은 미소로만 화답하기에 말씀을 못 하는 사람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따갈로그 억양 가득한 영어로 내게 물었다. 다시 볼일 없을 사람이라 생각해서인지 아니면 거대한 바다 앞에서 겸허해져서인지 모르겠지만 지금만큼은 아무것도 감추지 않고 솔직하게 얘기하고 싶었다. 중학교 2학년 레벨의 부끄러운 영어 실력으로 더듬더듬 입을 열었다.


“나는 물이 무서워.”

“물이 무서운데 여기는 왜 왔어?”

“친구들이 좋아하거든. 친구들은 다이빙 좋아해.”

“걔들은 좋은 친구를 가졌구나.”

“…”


그렇게 대화가 시작됐다. 호세는 아이 다섯 명을 키우고 있는데 생활 형편은 썩 좋지 못했다. 하루 벌어먹고사는데 이 바닥도 경쟁이 심해졌단다. 늦잠 자고 점심부터 일하는 경쟁자들에 비해 자기는 부지런하게 아침 일찍부터 일하는 편이고 낚시, 다이빙, 서핑 등 돈 되는 건 다 하고 있다. 어렸을 때부터 동네 아이들과 발가벗고 바다에서 헤엄치며 놀다 보니 자연스럽게 이 일을 하게 됐다. 블라블라…



다이버들이 바다로 들어간 후에도 호세 아저씨는 할 일이 많았다. 각종 다이빙 장비 정리, 유지 보수, 바닥 청소, 다이버들이 올라왔을 때 쓸 타월이나 물건들을 꺼내 놓으면서도 연신 내게 말을 걸었다. 필리핀은 처음이니, 마음에 드니, 음식은 어떠니, 어느 나라에서 왔니, 서울은 집값이 얼마나 하니, 직업은 뭐니, 그 일은 벌이가 좀 어떠니… 이건 뭐 추석 때 큰집에 갔다가 만난 초면의 당숙 어르신에게 호구조사당하는 느낌.


필 받았는지 호세는 운전석 옆 아이스박스에서 산미구엘 맥주를 두 병 꺼내 나에게 하나를 건넸다. 그러면서 여자 친구 얘기, 결혼 얘기, 필리핀 여자들의 성격 같은 얘기들로 화제가 넘어가자 농담도 조금씩 주고받게 됐다. 며칠 전에는 미모의 한국 여자 다이버들과 찍은 기념사진을 부인에게 발각당해 등짝 스매싱을 수도 없이 맞았다는 얘기는 좀 재밌었다.


이제야 웃는구나. 그래 괜찮아. 정말 괜찮아. 바다? 다이빙? 전혀 중요하지 않아. 우리 삶에  중요하고 행복한  얼마나 많은데. 오늘 바다에  들어가고 이렇게 나랑 맥주   하면서 얘기 나눈  진짜 추억이지. 그러니까 울지마.


(발끈!) 저 울지는 않았는데요… 라고 자존심 세우고 싶었지만 사실 그게 뭐 대수랴. 호세 아저씨 눈에는 자책감에 휩싸여 괴로워하는 내 모습이 당장이라도 울 것처럼 보였나 보지 뭐. 그래서 그렇게 끊임없이 말 걸어주고 마실 것도 주고 그랬구나. 동남아시아 사람의 나이를 가늠하기가 어려워 형님인지 또래인지 아니면 동생인지도 모를 호세의 마음 씀씀이가 참 고마웠다.


30분 후 보트로 돌아온 동기들과는 다시 왁자지껄 모드로 돌아가 맛난 거 잘 먹으러 다니고 발마사지도 받으며 여행을 마무리했다. 시간이 지난 지금 돌이켜봐도 즐거운 여행이었던 건 분명한데 신기하게도 가장 기억에 남는 건 그날 흔들리는 배 위에서 내 마음이 더 흔들리지 않도록 옆에 가만히 앉아 말벗이 되어줬던 호세 아저씨의 옆모습이다. 자기는 태생부터가 본투비 바다 사나이면서도 물이 무서워 벌벌 떨고 있는 이방인을 놀리거나 비난하지 않고 어깨 토닥이며 위로해주던 그의 자글자글 주름 가득 웃는 얼굴이 이따금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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