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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모단 Sep 10. 2020

못 먹는 음식이 있나요?


태어날 때부터 그랬다면 억울하지라도 않았을 거다. 나이깨나 먹고 뒤늦게, 이미 그 맛을 알 만큼 알아버렸는데, 그래서 도저히 잊지 못하는데도 이제는 먹을 수 없는 음식이 두 가지 있다. 천국과 지옥을 함께 알려준 애증의 두 친구. ‘우유’와 ‘새우’다.


어릴 때부터 물 대신 흰 우유만 주구장창 마셔댔다. 동물성 단백질의 비릿한 향기, 눈꽃송이 같은 순백의 비주얼, 물과는 다른 걸쭉하고 농후한 질감, 고소하면서도 밀도가 느껴지는 깊은 맛. 초등학교에서 우유급식을 할 때면 맛없다고 뜯지도 않고 버리는 친구들이 많았다. ‘쵸코, 딸기우유 같은 유사품들만 좋아하니 정통 흰 우유 본연의 맛을 모르는 게 당연하지! 정말 어리다 어려’ 라면서 반에 버려지는 우유를 모두 모아 쉬는 시간마다 꼴깍꼴깍 마시던 초딩 시절.


중고등학교 때는 하루에 2리터 정도 마셨다. 냉장고에는 물 대신 1000ml 우유팩이 몇 개씩 채워져 있었다. 밖에서 뛰놀다 들어와 시뻘게진 얼굴로 냉장고 문을 벌컥 열어둔 채 시원한 냉기를 맞으며 들이키는 흰 우유의 맛! 냉장고 문 닫으라고 어머니께 등짝을 후드려 맞기는 했지만 그 고소하고 담백한 맛은 잊을 수 없다. 그렇게 대학, 군대 시절까지 흰 우유 사랑은 계속됐고 회사원이 되었을 무렵이었다.


선배들과 밤샘 근무를 하고 아침을 먹으러 구내식당에 갔다. 자율배식대에 시리얼과 우유가 있기에 그릇에 시리얼을 듬뿍 담고 우유도 한가득 콸콸 담아 우적우적 씹어 먹는 내 모습을 본 선배가 신기해하며 말했다.

“와… 너는 아직 우유를 먹을 수가 있구나?”


무슨 소리지? 아직? 그러면서 자기는 이제 더 이상 우유를 먹을 수가 없는 몸이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당시에는 이해가 안 됐다. 우유를 왜 못 마셔? 그렇게 시간이 흘러 몇 년 후. 변함없이 구내식당에서 시리얼로 아침을 먹고 사무실에 올라왔을 때 뭔가 평소와는 좀 다른 느낌을 받았다. 속이… 좋지 않은 것이다. 뭔가 불편하다. 소화가 순탄하게 되지 않고 겉도는 느낌? 뱃속에서는 처음 듣는 기이한 효과음마저 새 나왔다. 몸이 우유를 거부한 그날 아침의 기억.


유당불내증의 첫 발현이었다. 유당분해효소라는 건 원래 나이가 들수록 자연스레 줄어드는 물질이라느니 동양인에게는 흔한 현상이라느니 ‘소화가 잘 되는 우유’ 같은 걸 마시라는 등의 말은 아무런 위로가 되지 않았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완전 밀크보이였던 나에게 이런 시련이 닥친다고? 슬펐다. 부정하고 싶지만 현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어쩌겠는가? 몸이 늙어서 우유를 받아들이질 못하는 걸.


이제는 모든 걸 체념하고 스타벅스에 가서도 우유 대신 두유를 넣어달라고 하지만 아직도 그럴 때마다 괜히 점원이나 주변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한다. ‘뭐, 두유? 이 친구 라떼의 참맛을 모르는구만!’ 마치 주변에서 이렇게 빈정대는 것만 같은 느낌적인 느낌?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인 건 다른 유제품은 괜찮다는 것이다. 치즈, 버터는 물론이고 바나나우유 등의 가공유도 마실 수 있다. 아쉽지만 꿩 대신 닭. 이거라도 감지덕지.


이처럼 대체품이라도 있는 우유에 비해 더 크리티컬 한 건 바로 ‘새우’였다. 해산물의 왕자, 바다의 제왕, 갑각류의 에이스 새우! 그 탱글탱글한 식감과 달콤한 육질이 좋아 참 많이도 먹었더랬다. 그런데 30대에 접어든 언제부턴가 새우로 만든 요리를 먹고 나면 어딘가 간질간질한 느낌이 들었다. 팔이나 얼굴에 모기에 물린 것 같은 흔적이 발견되기도 했다. 처음에는 ‘밥 먹다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모기 물렸나 보지 뭐’ 정도로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넘겼다.


그러던 하루는 친구가 청첩장을 나눠주는 자리라며 고급 중식당을 예약했다. 다양한 중식 요리가 코스로 나왔고 그중에 범인이 있었다. 달달하면서도 상큼한 소스를 듬뿍 끼얹은 흰다리새우 튀김의 감칠맛, ‘레몬크림새우’ 였다. 하필이면 그날따라 입맛이 돌아 크림새우(大) 한 접시를 혼자서 거의 다 흡입했고 30분쯤 지났을 무렵 얼굴에 울긋불긋 열꽃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여드름 같기도 하고, 열도 나고, 호흡도 살짝 가빠지고, 손가락 끝이나 발가락 끝 같은 신체 말단 부위까지 땡땡 부어오르는 총체적 난국이었다.


결국 응급실에 가서 항히스타민 주사와 수액을 맞고 살아났다. 그 이후, 보다 정확한 임상 테스트를 위해 다양한 새우 요리에 도전했다. 한식의 간장새우장, 스페인의 새우감바스, 중식 멘보샤, 일식 백미새우초밥, 멕시코 새우파이타… 새우의 종류나 조리법에 따른 증상의 변화를 조심조심 연구한 끝에 나온 결론, 모든 새우에 몸이 무조건 반응하는 게 아니라는 것! 신선한 고급 새우일수록 증상이 발현됐고 오래돼 맛이 좀 간 새우나 냉동새우, 싸구려 가공 처리한 새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즉 먹고 나서 몸에 이상이 좀 있어야 고급 재료를 써서 정성껏 요리한 좋은 가게로 판명되는 것이다.


이 정도면 ‘세상에 이런 일이’ 에 출연해도 될 신묘한 능력 아닌가? 알레르기의 경중으로 재료의 신선도와 셰프의 실력을 알 수 있다니. 미슐렝이 뭐 대수냐, 가게 문 앞에 ‘모단씨가 쓰러진 집’ 이라는 스티커가 붙어 있으면 믿고 들어가도 되는 새우 맛집의 증명이라구. 지금까지 중에서 역대급은 합정역에 있는 2층짜리 이자카야였다. 셰프가 그날그날 구한 신선한 재료로 만든 코스 요리가 2시간에 걸쳐서 나오는 집이었는데 검지 손가락만 한 작은 생새우 2마리가 나왔기에 크기로 보나 양으로 보나 이 정도면 무난하겠다 싶어 먹었다가 사상 최대 레벨로 알레르기 대폭발! 역대급이라 증상도 사흘간 이어졌다.


물론 음식의 맛도 역대급이었다. 정말 모든 게 다 맛있어서 주변 지인들에게 이 가게를 소개하며 극찬을 날렸다. 고작 새우 두 마리로 날 이렇게 만들다니, 도대체 얼마나 좋은 재료로 얼마나 신선하게 조리했다는 건지 놀라울 따름이다. 그러나 정작 나는 먹을 수 없다는 슬픔. 맛있는 가게를 발견해내는 초능력은 있지만 동시에 엄청난 리스크를 감수해야 하고, 발견까지는 가능해도 먹을 순 없다는 허탈함. 없던 알레르기가 생길 순 있어도 있던 알레르기가 사라지긴 힘들다니 이번 생은 글렀다.


우유와 새우. 너희 이럴 거면 처음부터 아예 찾아오지를 말지. 내 곁에서 천국의 맛을 보여줄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항원항체 면역과민반응을 일으켜 오장육부를 뒤집고 온몸을 퉁퉁 붓게 만드니. 난 아직도 너희의 맛을 잊지 못하는데. 목넘김과 뒷맛까지 전부 기억하고 있는데. 내 인생을 망치러 온 나의 구원자들 같으니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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