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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모단 Sep 15. 2020

‘결혼 언제 하냐’는 질문에 대처하는 법


“근데 너 결혼은 언제 하냐?”

오늘도 듣고 말았다. 잊을만하면 한 번씩 듣게 되는 바로 그 질문. 시간과 장소와 상대를 가리지도 않는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에게도 듣고 1년에 한 번 보는 먼 친척에게도 듣는다. 가끔은 동네 세탁소나 미용실에서도 듣게 된다. 관심이라는 탈을 쓴 오지랖이요 애정이라는 포장지를 두른 폭력이지만 묻는 사람들은 전혀 인식하지 못한다.


저렇게 굳이 강요하지 않더라도 본인들이 알콩달콩 서로 위하며 사랑으로 살아가는 예쁜 모습들을 보여줬다면 제발 하지 말라해도 어떻게든 바득바득 했겠지. 자기들도 난장판 속에서 근근이 살아가면서 뭐가 그리 좋아서 강추하는지 아직도 미스터리가 아닐 수 없다.


한 번은 회사에서 오랜만에 입사동기 형을 만났다. 반가운 마음에 커피 한 잔 하며 근황 토크를 나눴는데 그는 연년생으로 아이 셋을 낳고 났더니 자기와 와이프의 청춘시대가 송두리째 사라졌다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아가들을 보면서 표현이 안 될 정도의 감동과 행복을 느끼는 건 맞지만 그런 충만함과 자기의 인생이 고스란히 등가교환되었다며 쓴웃음 지었다.


그러면서 물었다. 너는 어떻게 지내니. 요즘은 글 쓰는 취미가 생겨서 회사 끝나면 동네 카페에 들러 두세 시간쯤 시답잖은 잡문을 끄적이다 집에 와서는 음악을 듣거나 영화를 보며 쉰다. 주말에는 유화를 그리기도 하고 서점에서 책을 뒤적이거나 다양한 소셜 모임에 참석해 도란도란 얘기 나누며 위스키도 한 잔 기울인다. 두어 달에 한 번쯤은 일본에 가서 친구 녀석들을 만나 밥 먹거나 좀 더 열의가 생기면 먼 나라에 가기도 한다. 아주 가끔은 연애도 하고 그러다가 이별도 하고 그러는 거지 뭐.


이런 무미건조한 나의 일상을 듣던 형은 인상을 찌푸리며 고개를 저었다. “안 돼, 너 그러면 안 돼…” 그럼 그렇지. 또 비슷한 패턴의 연계기가 들어오겠거니 싶었다. “너만 그렇게 행복하기 있어? 질투 나잖아. 애아빠들의 기분을 너도 느껴봐야지. 얼른 결혼해 너도” 어라? 이건 아주 색다른 접근법의 권유인걸?


사람들은 저마다의 다양한 근거와 이유를 들어 결혼에 대한 강요와 추천을 이어갔다. 그중에 역대급으로 솔직했던 사람을 꼽자면 우리 회사의 N국장이 원탑이었다. 주말에는 근무자가 많지 않기에 멀리 수도권 지국에서 일하는 어르신들이 서울로 올라왔다. 그날은 N국장이 본사로 와 오랜만에 후배들 보니 반갑다며 다 같이 점심을 하게 됐다.


이런저런 담소를 나누다 나에게도 넌지시 말을 건넸다. “모단씨, 뭐 좋은 소식 없나? 나 퇴직하기 전에 국수는 먹게 해 줘야지” 자주 보는 사람도 아니고 시골에서 올라온 어르신이니 그냥 허허실실 넘겨도 되는 거였는데 그날따라 뭐가 좀 꼬였는지 의전이 아닌 찐 리액션이 나오고 말았다.


“네, 그냥 안 할 생각입니다. 혼자가 편하네요 국장님.”

“아니 그러면 쓰나. 부모님 생각해서라도 해야지.”

“그래서 이미 잘 말씀드려 놓았어요.”

“에이, 그래도 결혼하고 아이 낳고 할 건 다 해봐야지.”

“그거 말고도 할 게 너무 많아서요 하하. 아니 뭐 좋은 사람 만나면 결혼까지는 어떻게 할 수도 있을 것 같긴 한데 아이는 정말 키우기 어려울 것 같아요. 다들 너무 힘들어하더라구요. 육아에 어린이집에 뭐에 순서 대기만 1년째인 선배들도 수두룩하고…”


나름 무던하게 토크를 이어간다고 생각했는데 N국장이 갑자기 얼굴을 붉히며 역정을 냈다.

“아니 지금 무슨 소리 하는 거야! 자네 같은 사람들이 빨리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야 그 아이들이 커서 회사를 다니고 세금도 내고, 그래야 그 세금으로 내 국민연금도 나오는 거지. 이렇게 해야 나라가 돌아가는 건데 결혼도 안 하고 아이도 안 낳겠다고? 그건 매국노지 매국노. 나 참 기분 나빠서 정말… 화가 나서 자네한테는 점심 못 사주겠네. 자네만 따로 계산하게나!”


와, 진짜 솔직한 사람이다. 존경스럽기까지 했다. 자기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타인의 결혼과 출산까지도 종용할 수 있는 저 패기! 김치찌개 값 7000원이 아까웠던 건 절대 아니다. 그저 더 큰 분란을 일으키고 싶지 않아서 '생각해보니 요즘 들어 아가들이 예뻐 보이더라구요, 이러면 결혼할 때가 된 거라던데 저도 혹시 모르죠 허허’ 이렇게 씁쓸한 전향 선언을 함으로 점심값은 N국장이 기분좋게 지불했고 오후 근무도 평온하게 마무리할 수 있었다.


나이가 들수록 이러한 무례함에 맹폭당하는 일이 잦아졌다. 일일이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곤혹스러운 요즘, 며칠 전 친구와의 통화에서 작은 실마리를 발견했다. 꼬맹이 때부터 친구라 워낙 스스럼없다 보니 서로 간에 예의는 갖다 버려서 할 말 못 할 말 구분 없이 막 내뱉는 편한 사이다. 다둥이 아빠인 이 녀석은 1년 만의 안부 통화에서 익숙한 레퍼토리를 꺼내 들었다.


“그건 그렇고, 너는 결혼 언제 하냐? 안 하냐?”

가만히 듣고 있다가 나도 한 가지 물어보기로 했다.

“응 그거야 뭐… 그런데 너 이혼은 언제 하냐?”

“뭐? 이혼? 갑자기 그게 무슨 실례되는 소리야 임마. 아이 넷 키우는 아빠한테 이게 막말하네?ㅋㅋ”

“무슨 소리지? ‘결혼 언제 하냐’랑 ‘이혼 언제 하냐’는 완전히 같은 레벨의 질문이잖아.”

“그게 어떻게 같냐?”

“그럼 뭐가 다르냐?”

“…”


이혼 언제 하냐고 묻는 게 무례라면 결혼 언제 하냐고 묻는 것도 완전히 똑같은 크기의 무례함이다. 한쪽만 실례이고 다른 쪽은 아무에게나 편하게 막 물을 수 있는 가벼운 질문이 절대 아니다.

입학은 언제예요? = 졸업은 언제예요?

입사한 지 얼마나 되셨나요? = 퇴사한 지 얼마나 되셨나요?

남자친구랑 만난 지 얼마나 됐어? = 여자친구랑 헤어진 지 얼마나 됐어?

아기 둘은 낳을 거지? 신혼집에 둘만 살면 외로워 = 시부모님 둘 다 모실 거죠? 부부만 살면 외롭잖아요

모두 한 세트다. 똑같은 질량의 질문이다. 이런 물음을 상대에게 건넬 때는 같은 크기의 질문이 자기에게 돌아올 수도 있다는 각오 정도는 해야 하는 것이다.


친구는 기분이 좀 상한 듯했지만 어쩔 수 없다. 무례함이 넘쳐 나는 세상을 견뎌내기 위해 이 정도의 충격요법은 써야 하는 시대가 온 거니까. 그리고 생각보다 효과도 좋았다. 친구는 이제 누군가에게 관심이랍시고 결혼 운운하려는 순간 아주 잠시나마 고민을 하고 나서 말을 걸게 되겠지 (안 걸진 않을 거다) 그래, 그 정도면 충분해. 그것도 감지덕지다.


전국의 비혼 미혼 졸혼 파혼 여러분. 말꼬리 흐리며 ‘그냥 뭐, 좋은 사람 생기면 언젠가 하겠지’ 라며 대강 얼버무리지 맙시다. 과감하게 핀잔도 주고 비아냥대세요. 더 이상 당하고만 살지 맙시다. 여러분의 반짝이는 싱글 라이프를 뜨겁게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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