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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모단 Oct 09. 2020

사랑과 광기의 사진부


사진업계는 이미 디지털로 넘어간 상태였다. 일본으로 유학을 떠난 당시, 카메라의 대세는 DSLR로 자리매김한 지 오래였고 필름은 판매하는 곳조차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래서였을까? 외국인 유학생인 나를 일본의 사진부 친구들은 서먹해하기보다 먼 나라에서 찾아온, 자기들과 똑같이 시대에 뒤떨어진 취향을 가진 오타쿠 동지를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으로 맞아줬다. 니이가타대학 게시판에 붙은 <사진부원 모집공고>를 보고 무작정 암실로 찾아가자 동아리 출범 이래 최초로 외국인이 입부했다며 당황하면서도 반기던 친구들의 모습이 어찌나 귀엽던지.


흑백 필름을 이용해 사진을 찍고 암실에서 직접 현상/인화를 하는 사진부 활동.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약간씩 다른 부분도 있었다. 한국에서 주로 KODAK Tmax 필름을 쓰던 나와는 달리 여기선 자국 브랜드인 FUJI NeoPAN  위주로 촬영한다는 점이나, 플라스틱 현상 릴만 사용해온 나에게 일본 친구들이 사용하는 스테인리스 릴은 분명 낯설었다. 하지만 이런 게 문제가 되진 않았다. 사진을 사랑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모인 아이들. 매주 한 번씩 동아리실에 모여 서로가 찍은 사진 돌려보고 도란도란 맥주 한 잔 하며 일상을 공유하는 즐거운 나날이었다.



출사도 함께 다니고 부활동도 열심히 하며 한껏 친해진 그해 여름, 일본에서는 '합숙(合宿)' 이라 부르는 동아리 MT의 시기가 찾아왔다. 한국 대학의 MT야 지겨울 만큼 다녀봤지만 일본 대학생들의 MT는 어떨지 궁금해 동참해보기로 했다. 참가자는 12명, 1박 2일의 단출한 일정이었다. 출발할 때 사진부장인 오토와키에게 MT 계획표를 한 장 받았다. 그런데 여기 적힌 시간표가 정말 무서우리만치 디테일했다. 어렴풋이 기억한 둘째 날 아침의 스케줄은 대략 다음과 같았다.


07:00  전원 기상 & 세면 (남학생 : 1층 세면실 / 여학생 : 2층 세면실)

07:26  아침 체조 (체조 인솔: 2학년 다이스케군)

07:41  A조 - 식사 준비 / B조 - 방 청소 (청소 완료 후 A조 식사 준비에 합류)

08:03  식사 개시 (일식 - 1번 테이블 / 양식 - 2번 테이블)

08:43  B조 남학생 - 설거지와 식당 정리 / A조 전체와 B조 여학생 - 휴식

09:08  B조 남학생 - 20분간 휴식 / A, B조 여학생 - 오전 출사 준비물 세팅 / A조 남학생 - 오후 바비큐용 장작 준비


농담이 아니라 정말 이랬다. 분 단위까지 엄격하게 나뉜 타임테이블은 물론 인력을 어떻게 배치할지 유닛 구성, 합체, 서포트 등 어마어마하게 세부적인 계획표였다. 당황스러웠다. 이게 둘째 날 아침이라고? 첫날밤에 술은 안 마시나? 오랜만에 학교를 떠나 바닷가로 놀러 온 대학생들인데?! 믿기지가 않았다. 일단은 흐름을 따라가 보기로 했다.


금요일 수업이 끝나고 출발하는 일정이라 목적지인 바닷가 마을 숙소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한밤중이었다. 혈기왕성한 청춘남녀들답게 늦게 시작한 술자리임에도 금세 불타올랐고 주지육림의 향연은 새벽 3~4시까지 이어졌다. ‘그럼 그렇지. 너희들도 피가 끓는 스무 살인데 마냥 계획표대로만 진행할 수는 없는 게 당연하지!’ 동녘 하늘이 어슴푸레 밝아올 때쯤 술자리는 끝났고 다다미방 구석으로 한두 명씩 널브러졌다. 대한민국 국가대표라는 숭고한 경쟁심을 발휘하며 마시다 보니 나 또한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그래도 일본 친구들을 거의 다 쓰러트리긴 했다. 다시는 한국을 얕보지 마라… zzz



다음 날, 쨍한 햇살에 눈이 부셔 정신을 차렸다. 주위를 둘러보니 아무도 없다. 모두 어디 간 거지? 나 홀로 방 한가운데 大자로 누워있다. 사람만 없는 게 아니라 술병도 그릇도 과자 부스러기 하나 없다. 가방이나 옷, 이불도 없고 그야말로 텅 빈 다다미방에 나 홀로 덩그러니 놓여 있는 거다. 분명 여기서 밤새 부어라 마셔라 했는데? 심지어 테츠야는 구석에서 토하기까지 했는데 왜 이렇게 깨끗하지? 일본 괴담의 주인공이라도 된 기분이었다. MT가 혹시 나 혼자 온 거였나? 외로운 유학 생활에 몸부림치던 아싸의 망상이었나? 일본 귀신한테 홀리기라도 한 건가? 그때 창밖에서 꺄르르 웃음소리가 났다. 밖에는 나를 제외한 11명이 술래잡기 비슷한 놀이를 하며 즐거워하고 있었다. 시계를 보니 낮 12시였다.


“와… 너네 너무한 거 아니냐? 나 왜 안 깨웠어? 이지메 아니냐 이거?ㅋㅋ”

“오, 형 지금 일어났어요? 뭔 소리래, 안 그래도 오늘 아침에 형 때문에 사진부 전체 회의했다구요.”


사연인즉슨 나를 제외한 11명은 모두 7시에 일어났다. 술 때문에 힘들어하는 친구들도 억지로 깨웠다고 한다. 그렇게 하기로 정한 규칙이니까. 그런데 나에 대한 처분에서 이견이 발생한 것이다. 모단상도 엄연히 사진부의 일원이니 지금 깨워서 함께 아침 스케줄을 소화해야 한다 vs 유학생 신분이고 나이도 우리보다 훨씬 많은 26살 아재다. 피곤할 테니 이대로 재우는 게 맞다. 이렇게 두 그룹으로 나뉘어 예송논쟁을 방불케 하는 첨예한 대립 끝에 더 재우는 쪽으로 의견이 기운 것이다. 일종의 외교사절 특권인가?


술독에 빠져 드르렁거리는 나를 한가운데 눕혀두고 일본인 11명이 빙 둘러앉아 눈 비벼가며 회의하는 모습을 상상하니 어딘가 좀 초현실적인 기분이었다. 귀여운 소심쟁이들 같으니라구. 한국이었으면 적당히 발로 툭툭 쳐서 깨웠을 텐데. 아니 그전에 아침 7시에 전원이 기상하지도 않겠지. 배려랍시고 점심때까지 마냥 방치해둔 얘네를 고마워해야 하는 건지 언짢아해야 되는 건지 아리송했던 MT의 추억.



이렇게 일본 친구들의 ‘한국과 조금은 다른’ 행태는 평소 술자리에서도 여러 번 있었다. 어느 날은 꽤 많은 인원이 참석하는 회식이었다. 졸업한 사진부 선배들까지 오는 자리라서 거의 30명에 달하는 모임이었다. 예약해둔 이자카야에 입장할 때 부장 오토와키가 박스에서 종이를 하나 뽑으라고 했다. 경품인가 싶어 뽑았는데 종이에는 이렇게 적혀있었다. 六番テーブルの二番席 6번 테이블의 2번석? 이게 뭐냐고 묻자 오늘 회식 시간 동안 내가 앉을 자리라는 거다. 술자리인데 자리를 추첨해서 정한다고?!

 

궁금한 마음에 6번 테이블 1번 자리에 앉은 나오부미에게 물었다. 도대체 왜 자리를 추첨해서 정하는지. 이런 게 자주 있냐고. 나오부미는 대수롭지 않아 했다. “친한 사람들끼리만 앉으려 하다 보면 거기에 못 어울리는 외톨이가 나올 수도 있으니 그런 걸 방지하려고 그러는 거죠 뭐.” 그렇다면 이 자리는 오늘 밤 내내 불변인가? 술자리 끝날 때까지 절대 지켜야 하는 건가? “그렇지는 않지요. 술 마시다 보면 이리저리 옮기기도 하고 얘기하고 싶은 사람한테 가기도 하고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죠.” 그렇다면 이 뽑기에 무슨 의미가 있는가? “그… 그렇기도 한데 뭐… 일단 시작만큼은 공평하게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다했다는 느낌으로…” 본질은 바꿀 수 없지만 겉보기만큼은 평등해 보이려고 노력은 한다? 냄새나고 지저분한 게 있어도 근본적인 처리보다는 일단 뚜껑이나 덮어서 감춘다(臭い物に蓋をする)는 일본 속담 그대로잖아 이건. 이 나라의 처절한 속살을 있는 그대로 마주하는 순간이었다.



이렇게 1년간의 사진부 생활을 마치며 마지막에는 다 함께 전시회를 열었다. 부족하지만 나 또한 대형 인화한 사진을 몇 장 출품했다. 사진부원 모두가 1년간 열심히 준비한 작품들로 꽉 채운 전시회장을 보니 뿌듯했다. 공강 시간 위주로 순번을 정해 우리 중 한 두 명 정도는 전시장에 상주하며 손님 응대를 하기로 했다. 나는 둘째 날 6교시에 투입됐다.


“고토! 수고했어 지금부터 두 시간은 내가 지킬게.”

“형 왔어요? 그럼 부탁해요. 그리고 이것도 빠짐없이 잘 써줘요.”

“…?”


고토 녀석이 내민 건 공책이었다. 관람객들이 감상과 소감을 남기는 방명록인가 싶었는데 아니었다. 거기에 빽빽이 적혀있는 건 사진전을 찾은 관객들의 정보였다. 전시회장에 들어온 시간, 성별, 일행의 수, 옷차림, 인상착의, 특이사항 같은 항목들이 빼곡했다. 이건 뭐지? 이런 걸 왜 이렇게 디테일하게 적고 있는 거지?


11:50 니이가타대학 미술과 여학생 1명 (큐트한 타입), 남학생 1명 (투박한 느낌)

13:19 40대 샐러리맨 아빠 (대기업 과장 느낌) 와 딸로 보이는 엄청 귀여운 꼬마 (자기가 예쁜 걸 아는지 굉장히 도도하다)

13:52 내성적인 성격의 미녀 (지켜주고 싶은 타입)

14:35 연령미상의 인도인 남성. 잠깐 졸고 있는 사이 어느 틈엔가 들어와 있었고 가장 구석에 있는 마츠이군의 풍경사진을 10분 동안 바라보다 감 (사진 속 장소에 어떤 사연이 있나?)



…이렇게까지 치밀하게 쓴다고? 고토에게 네가 원해서 개인적으로 적는 건지 아니면 사진부 차원에서 지시를 받아 쓰는 건지 묻자 원래 사진전을 할 때마다 항상 이런 방식으로 기록을 남겨왔다고 한다. 왜 쓰는 거냐 묻자 그도 갸웃거리기만 할 뿐. ‘그냥 옛날부터 항상 이래 왔어요’ 역시 일본은 기록의 민족이다. 디테일에 대한 광적인 집착. 좋게 말하면 섬세하고 치밀한 거고 나쁘게 말하면 강박적이고 편집증스럽다. 일본의 현미경 야구가 괜히 탄생한 게 아니었구나.


위치는 제일 가까운데 너무 다르다. 한국과 일본이라는 두 나라는 어쩜 이리 다를까. 내가 겪었던 일들은 학생 레벨의 가벼운 맛보기였을 뿐이고 어른이 돼 사회생활을 하면서 ‘회사 대 회사’ 일로 만난 경우에는 그 ‘다름의 크기’가 정말 어마어마했다. 어찌 보면 안 싸우는 게 오히려 이상한 두 나라. 서로를 이해하고 양보하며 화해하는 그런 날은… 100년 안으로는 오지 않을 게 분명하다.


그래도 우리 주위에는 종종 패션에서부터 성격, 취향, 식성 그 어느 것 하나 어울리지 않는데도 무슨 연유에서인지 서로를 끔찍하게 사랑하는 커플들이 존재하기는 한다. ‘걔는 나랑 안 맞아’ 하면서도 한 번 꽂히면 헤어 나올 수 없는 그런 사이. 그런 기적 같은 일이 가끔씩은 실제로 벌어지기도 하니 일말의 기대가 남아있긴 하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일본 총리와 관방장관이 함께 천안 독립기념관을 찾아 숙연하게 전시장을 둘러보고, 독립운동가 유해 앞에서 깊게 묵념하고, 유엔인권위원회에서 눈물로 증언하신 김복동 할머님 묘소 앞에서 고개 숙여 헌화한 다음, 서대문형무소 지하감옥 앞에 서서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지난 과오에 대해 진심 어린 사과를 한다면야 우리도 너희 옛 선조들의 잘잘못 이제는 다 용서하고 이해한다며 토닥여줄 수 있을 텐데… 2120년이 온다 해도 불가능하겠지 아마. 절대 안 될 거야. 절레절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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